사람들이 ‘과학과 사이비 과학’, ‘역사와 사이비 역사’,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이유에 대해
회의주의자들과 과학자들의 답변은 대략 이렇다. “교육을 받지 못함, 잘못된 교육을 받음, 비판적 사고가 부족함, 종교의 흥기, 종교의 쇠락,
전통 종교를 컬트가 대신함, 과학에 대한 두려움, 뉴에이지, 암흑시대의 재도래,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봄, 독서를 별로 하지 않음, 잘못된
책들을 읽음, 가정교육을 못 받음, 저질 교사들에게 교육받음, 그냥 무지와 어리석음 때문.” 셔머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현상이 일종의
‘문화’라고 평가하며 몇 가지 바탕을 짚는다.
①‘크레도 콘솔란스(내 마음을 달래 주기 때문에 믿는다)’게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다. 내가
생각해도 사람의 사고는 감정과 이성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명확하기보다 교란되기 쉽다.
②‘즉석 만족’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의 운세를 생각해보라!
③“‘단순성’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세상살이를 단순하게 설명해 주면, 그 믿음에 대해서 아주 쉽게 즉석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착한 사람에게나 나쁜 사람에게나 사람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것 같다. 게다가 과학적 설명은 십중팔구 복잡하고, 알아들으려면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운명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미신과 믿음은 삶의 복잡한 미로를 시원하게 관통하는 단순한 길을 제공한다.”
④“‘도덕과 의미’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덕과 의미에 대한 과학 체계와 비종교적 체계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보다 높은 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뭔가? 윤리의 기초는 무엇인가? 삶의 궁극적 의미는
무엇인가? 대체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런 좋은 물음들에 대해서 과학자들과 비종교적 인본주의자들은 훌륭한 대답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다가가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이 무한하고, 보살핌이 없고, 무목적적인 우주를 제시하면서 오직
차갑고 잔인한 논리만 내놓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사이비 과학, 미신, 신화, 마술, 종교는 도덕과 의미에 대해 단순하고 즉각적이고 위안이 되는
규범을 제공한다. 한때 거듭난 기독교 신자였기에, 나는 과학에 대해서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⑤“‘영원히 마르지 않는 희망’ 이상한 것들을 믿는 이 모든 이유를 한데 묶어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으로 삼았다. 이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언제나 더 나은 수준의 행복과 만족을 찾아 앞날을 내다보는 종이라는 나의 확신을 담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 결과는,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비현실적인 약속을 붙들려 하거나, 오로지 불관용과 무지를 고집함으로써, 오로지 타인의 삶을 가벼이 생각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다가올 미래의 삶에만 집착한 나머지, 지금의 삶에서 우리가 가진 것을 놓쳐 버린다는
것이다. 희망의 다른 원천도 있다. 원천이 다르더라도 희망은 희망이다.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측은지심과 더불어서 무수히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각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희망, 역사의 진보가 계속 이어져 보다 큰 자유를 향해 나아갈 것이며, 모든 사람들을 보듬어 갈 것이라는
희망, 사랑과 공감과 아울러 이성과 과학도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우주를 탐사할 만큼 놀랍기도 하지만 이토록 암담한 딜레마도 가지고 있다. 과학적 회의주의로 생각의
노를 끝없이 젓는 길밖에 달리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