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아니 에르노와 그녀의 연인 마크 마리가 “욕망과 우연이 낳은, 결국 사라져 버릴 이 배열”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다 읽고 곱씹어 보자면 앞에 내세워진 ‘욕망’보다 ‘그때의 우연’과 ‘사라져버린 부재를 확인하는 배열’이 더 방점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흔적에서 성의 비현실성을 포착하는 것.” 이 사진과 글이 “기억 속에서 혹은 독자들의 상상 속에서 다른 장면으로 바뀌어야만, 현실 그 이상의 것에 도달”할 수 있다고 작가가 말하고 있듯이 그들의 사진은 현실을 모두 보여줄 수 없고 때론 어떤 초과를 보여준다.

“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에도, 그날 아침에 찍은 사진에도 더 이상 머물러 있지 않다. 사진을 읽는 것은 내 기억이 아니다. 나의 상상력이다.”(p24, 서문)

 

“그 원피스는 버클에 끈을 넣어서 묶는 리본이 여러 개 달려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몸을 비틀면서 벗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모든 것은 미화됐고 비현실적이다. 우리의 사랑에 현실성을 더하기 위해 찍은 이 사진의 역설은 그것이 사랑의 현실감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사진은 내 안의 어떤 것도 깨우지 않는다. 여기에는 더 이상 생명도 시간도 없다. 여기에서 나는 죽었다.”(p166, 「사진의 역설」) 

 

 

 

 

이 사진들을 찍을 당시 아니는 유방암 치료 중이었다. 욕망만큼이나 죽음에 근접해 있었던 그때의 아니는 지금의 아니가 아니다. 작업을 하는 당시에도 작가는 이 점을 숙지하고 있었다.

“정리에 대한 반감은 극단적이 됐다. 무언가를 정리하고 보관한다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죽음에 죽음을 더할 생각은 없었다.”(p27, 서문)

 

 

그러나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투병과 죽음의 압력 때문에 꿈틀대는 욕망, 기록할 수 있는 이 순간의 작업에 그들은 더 몰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과 사진은 그런 정리이자 보관이며 죽음에 죽음을 더하는 행위이다. 폄하할 일은 아닌 것이 모든 인간의 행위가 이미 그런 것 아닌가.

 

한 장의 사진을 두고 아니와 마크의 단상이 담긴 구조다. 지속적인 작업을 하다 보면 어떤 걸 깨닫게 되는데, ‘사물’에 대한 단상은 나도 자주 하는 생각이어서 특히 공감했다.

 

 

 

“섹스 후, 바닥에 버려진 모든 것들 중 신발이 가장 마음을 흔든다. 옆으로 엎어졌거나 반듯하게 서 있지만 반대 방향을 향한다. 혹은 속옷 더미 위에 부유하고 있지만, 항상 서로 떨어져 있다. 사진에서 두 신발 사이의 거리가 보이면, 그것을 벗으려던 거친 몸짓을 헤아릴 수 있다. 주차장이나 보도에서 발견하면 누가, 왜 벗었을까 궁금해지는 그런 신발들처럼 대부분은 따로 떨어져 있다. 추상적인 형태로 변하는 의복과 다르게, 신발은 유일하게 사진 속에서 신체 일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순간 가장 큰 존재감을 구현한다. 가장 인간적인 액세서리다.”(p48, 「비밀」)

 

“사람의 자세 그대로 떨어진 옷에서 나온 생명력은 무언가 위협적이다. 영화 프릭스의 괴물 같다. M의 육체가 빠져나간, 비어 있는 형체다.

어릴 적 전쟁에 관해 들었던 모든 이야기들 중에, 주유소 근처에서 폭격이 일어난 후, 한 사람에게 남은 것은 파손된 의자뿐이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끔찍했다.”(p99~100, 「내가 사진을 찍을 때는」)

 

“사진에는 항상 시선을 붙잡는 디테일이 있다. 다른 것들보다 마음을 더 동요시키는 디테일, 예를 들면 흰색 상표, 타일 위에 구불거리는 스타킹, 둥글게 말은 양말, 짝을 잃은 양말 한 짝, 쇼윈도에 진열한 것처럼 마룻바닥에 컵이 납작하게 놓인 브래지어. 여기서는 창문 앞에 있는 흰색 뮬이 그렇다. 이미 여름 더위는 시작됐다. 그것이 계속 이어져 ‘폭염’이 되고 폭염이 끝난 후에는 수천 명의 노인들이 죽어 나가 일요일에도 묻히게 되겠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저 아름다운 여름일 뿐이었다. 하얀 하늘 아래 세상은 비현실적으로 곳곳이 반짝일 것이고, 늘 그랬듯이 도덕성은 더위 속에 녹아 버릴 것이다.”(p112, 「노래 한두 곡」)

 

“오래된 음반 가게에서 에디트 피아프 45rpm 레코드판 재킷을 알아봤다. 내가 16살 때, ‘어느 날의 연인’이라는 노래 때문에 샀던 파란색 재킷이다. 나는 그 음반을 누군가에게 줬거나 팔았을 것이고, 그 후로 이 45rpm은 ‘음직이 좋은 노래’가 아니라고 무시를 받게 됐다. 거기, 브뤼셀의 가게에서 나는 그 레코드판이 갖고 싶어졌다. ‘어느 날의 연인’ 때문이 아니라ㅡ너무 많이 들어서 이 노래의 감정은 내게 고갈되었다ㅡ파란색 앨범 재킷과 완전히 잊고 있던 또 다른 노래, ‘갑자기 계곡’때문이었다. M은 내게 그것을 선물해줬다.(p134)……(중략)……나는 감정의 언어를 ‘믿으면서’ 사용할 줄을 모른다. 시도를 해봤지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것은 사물의 언어, 물질적인 흔적의 언어, 가시적인 언어다. (그 언어들을 단어로, 추상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을 멈추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사진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것이 그의 사랑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 아니라, 명백한 것들 앞에서, 사진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증거 앞에서, 내가 절대 답을 찾을 수 없는 ‘그는 나를 사랑할까?’라는 질문을 피하는 방법인 것 같다.(p136, 「그런데 그녀는 못생겼잖아!」)”

 

욕망에 초점을 두는 한 이 작업도 무한히 지속될 수 없다. 이 세계가 물질보다 암흑물질로 더 뒤덮여 있듯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불씨 같은 욕망이지만 우리를 둘러싼 것은 더 많은 부재와 상실이 아니던가.

 

 

 

 

“우리는 사진 촬영을 계속한다. 어떤 장면도 절대 서로 비슷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적으로 계속할 수 있는 행위다. 유일한 한계는 바로 욕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발견한 광경을 더는 같은 방식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장면을 응시하게 했던 그 고통도 더는 없는 듯하다. 사진을 찍는 것은 더 이상 마지막 몸짓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글쓰기 작업의 일부다. 순수한 형태는 사라졌다.”(p148, 「처음으로 한 남자와 함께」)

 

“어떤 사진도 지속성을 나타내진 않는다. 사진은 대상을 순간에 가두어 버린다. 과거 속에서 노래는 확장되어 나가고, 사진은 멈춘다. 노래는 시간의 행복한 감정이며, 사진은 시간의 비극이다. 나는 종종 우리가 한평생을 노래와 사진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p115, 「노래 한두 곡」)

 

나는 글이 현재를 담을 때 가장 충실할 거라 생각한다. 시간의 속성상 필연적으로 과거를 담을 수밖에 없지만 기억의 윤색이 가장 덜할 것이기에 그렇다. ‘글쓰기가 현재이자 미래’라고 말하는 작가에게 이 ‘사진들의 용도’는 그들의 과거 현재에 충분히 쓸모 있었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그들과 비슷한 삶에 있는 이들의 지금 현재에도 참고가 될 지도. 우리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현재를 담는 어떤 예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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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12-31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바쁘신 중에도 많은 좋은 의견 들려주셔서 감사한 2018년이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2019-01-01 0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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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0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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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0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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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16: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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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0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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