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나사 하나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것이 떨어진 곳을 알고 있다. 예전에도 떨어져서 죈 기억이 있다. 다시 떨어질 거라는 걸 예상하면서 돌이키기 어렵게 망가진 자리에 임시변통으로 죄었던 나사였다. 처음같이 변함없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은 게 많다. 사물만이 아니다. 사랑 특히 모든 사랑의 전사(前史)가 되는 평생의 사랑에서라면 냉정한 판단은 더욱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이 가장 큰 장애인데 기억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 나사는 짐작하지 못한 데서 회전하고 멈추기도 하니까. 줄리언 반스는 그걸 내내 의식하면서 연애의 기억을 써나갔다.

 

내가 꼭 일이 일어난 순서대로 적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 기억에는 다른 종류의 진정성이 있고, 이것이 열등한 것은 아니다. 기억은 기억하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정리되고 걸러진다. 우리가 기억이 우선순위를 정하는 알고리즘에 접근할 수 있을까? 아마 못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짐작으로는, 기억은 무엇이 되었든 그 기억을 갖고 사는 사람이 계속 살아가도록 돕는 데 가장 유용한 것을 우선시하는 듯하다. 따라서 행복한 축에 속하는 기억이 먼저 표면에 떠오르게 하는 것은 자기 이익을 따르는 작용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단지 추측일 뿐이다.”(하나)

 

케이시 폴이 수십 년간 공책에 사랑에 관한 문장을 채우고 지우길 반복하며 사랑의 진실을 찾으려 애썼듯이 이 소설에서도 그렇다/아니다를 오가는 저울 같은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기억과의 사투일까, 진실과의 사투일까. 아니면 기억과 진실 간의 사투일까.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하나)

그는 가끔 자신에게 인생에 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행복한 기억과 불행한 기억 가운데 어느 게 더 진실할까? 그는, 결국, 이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너는 공감과 반감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인간의 마음에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감정들이 나란히 번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너는 그간 읽은 책에 화가 난다. 단 한 권도 이런 것에는 대비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엉뚱한 책들을 읽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아니면 엉뚱한 방식으로 읽었거나.”()

삶의 슬픔. 그것은 그가 가끔 생각에 잠기게 되는 또 다른 난제였다. 어느 것이 올바른또는 더 올바른공식이었을까. ‘인생은 아름답지만 슬프다’, 아니면 인생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둘 가운데 하나는 분명히 진실이지만, 어느 것이라고는 결코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최종 평가는 사후에 가능하다. 정확한 사후가 언제인지 우리는 알고 있나삶의 문제에서 더 하고 덜 하고를 현명하게 선택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한다. 무신경 혹은 무책임하게 판단하고 행동할 때도 있다. 어쩌면 더 많이. 그에 따른 결과가 행복이나 불행, 진실이라고도 재단할 수 없다. 어떤 문제는 고통, 시간의 경과, 기억과 사실의 부재나 혼동으로 인해 깊이 고찰하기도 어렵다. 가능하다 해도 올바른 판단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일흔이 넘어서야 폴은 수전을, 수전과의 사랑을, 진실을 알기 위해 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모든 연인이 자신들의 관계를 두고 하는 착각ㅡ“자신들은 범주와 묘사를 다 벗어나 있다는 것”(특수성)ㅡ을 제일 먼저 경계하면서. 폴은 자신이 일기 같은 기록을 남긴 적이 없고 시간, 장소 같은 걸 순서대로 나열해 쓰고 있는 게 아니라고 재차 강조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써 나가며 그는 깨닫는다.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연인들은 시간의 밖에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는 걸. 그럼에도 그가 남기는 이 연애의 기록은 그가 사랑했던 첫 사람—단 한 사람—의 지워지고 잃어버린 모습을 되찾고 그녀의 순수를 기억하고 유지하고자 하는데 의미가 있다. 또한 ‘그들 둘 다를 위한 마지막 의무’이다.
줄리언 반스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가 내게 진부한 사랑, 19년 연상연하 커플의 사랑과 삶의 파국, 신파로 읽히지 않는 건 그가 인간 삶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결합ㅡ우리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다는 것ㅡ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든 사랑이 시작되는 첫 공모의 순간(“어떤 음모나 계획은 물론, 접촉, 키스, 말은 없었다. 그러나 이미,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몇 마디 던지고 진입로를 따라 걸어가기 전, 그냥 그렇게 함께 차 안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공모를 하는 관계가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뭔가를 하자는 공모는 아니었다. 그냥 나를 조금 더 나로 만들어주고, 그녀를 조금 더 그녀로 만들어주는 공모일 뿐이었다”),

독특하게 고지식한 첫사랑의 특징(“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우리 둘이, 그리고 우리가 이르러야만 하는 곳이 있다, 다른 것은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서 결국 내가 꿈꾸던 곳에 가까운 어딘가에 실제로 이르렀지만, 나는 대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청춘 시기에 사람의 습성, 관습, 기성세대에 대해 가지는 불만과 혐오 그것이 사랑에 미치는 영향(“내가 어른의 무엇을 싫어하고 불신했을까? 글쎄, 간단히 이야기해보자. 자격을 가졌다는 느낌, 우월하다는 느낌, 가장 잘 알지는 못해도 더 잘 안다는 가정, 어른이 지닌 의견들의 엄청난 진부함, 여자들이 콤팩트를 꺼내 코에 분을 바르는 모습, 남자들이 두 다리를 벌려 음부의 묵직한 윤곽을 바지에 그린 채 팔걸이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 정원과 정원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말투, 그들이 쓰는 안경spectacles과 그들이 자신들을 재료로 만들어내는 광경spectacles, 음주와 흡연, 기침을 할 때 가래가 끓는 끔찍한 소리, 자신의 짐승 냄새를 감추려고 바르는 인공적인 냄새, 남자들이 대머리가 되고 여자들이 풀 분무기로 머리 모양을 만드는 모습, 그들이 여전히 섹스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쾌한 생각, 사회적 규범에 대한 유순한 복종, 풍자나 의문을 드러내는 모든 것에 대해 짜증을 내며 못마땅해하는 모습, 자식의 성공은 부모를 얼마나 잘 모방했느냐로 잴 수 있다는 가정, 서로 맞장구를 치며 내는 숨 막힐 듯 시끄러운 소리, 조리한 음식과 먹는 음식에 관한 논평, 내가 역겨워하는 것(특히 올리브, 절인 양파, 처트니, 야채 겨자 절임, 고추냉이 소스, , 샌드위치 스프레드, 악취가 나는 치즈, 마마이트 이스트)에 대한 그들의 사랑, 감정적 자기만족, 인종적 우월감, 잔돈을 세는 방법, 잇새에 낀 음식을 추적하는 방법, 나에게 충분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원치 않을 때 나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것. 이건 짧은 목록일 뿐인데, 수전은 당연히 또 이런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 한 가지 더. 진짜 감정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유전적 공포 때문이 틀림없지만, 그들이 감정생활을 비꼬고, 양성 간의 관계를 반복해서 멍청한 농담거리로 삼는 태도. 여자들이 실제로 모든 일을 좌지우지한다는 남자들의 암시, 남자들은 사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여자들의 암시. 자신이 강하기 때문에 여자는 귀여워해주고 응석을 받아주고 돌봐줘야 한다는 남자들의 허세, 축적된 성적 민간전승에도 불구하고, 상식과 실용성을 갖춘 사람은 자신들이라는 여자들의 허세. 양성 모두, 상대의 모든 흠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흐느끼며 인정하는 것. 그들하고는 살 수 없어, 그들 없이는 살 수 없어.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과 결혼해 살았으며, 어떤 재사(才士)가 표현했듯이, 결혼은 정신적 제도*라는 의미에서 제도였다. 누가 그 말을 먼저 했을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어느 시대든 자식의 불길한 사랑에 부모들이 겪는 혼란(“부모가 당황하고, 이웃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해하고, 잠시 잠적하고, 문을 닫아놓고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내 앞길에 놓인 곤경에 대한 가설을 세우는, 결국 자신들의 혼란스러운 감정의 투사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그런 가설을 세우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시대가 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을 수용하는 자신들의 능력에서 약간의 침착한 영웅적 자질을 찾아내고, 어머니는 페드로가 계속 자신의 머리를 자르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적절한지 궁금해하고, 그러다최악의 단계로자신이 새로 발견한 관용에 명예의 훈장을 수여하고, 그러는 동안에도 내내 자신의 아버지가 살아서 이런 날을 보지 않은 것을, 믿지도 않는 하느님에게 감사할 것이다…….”),

사랑 뒤에 우리가 괜찮은 척하는 연기들(그건 연기야. 우리 모두 연기를 하지. 너도 언젠가는 연기를 하게 될 거야, 오 하고말고.”, 그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지. 우리 모두 그저 안전한 장소를 찾고 있을 뿐이야. 만일 그런 곳을 찾지 못하면, 그때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워야만 해.”),

나이가 들고 사랑의 파국을 겪어본 이들이 연인들을 보게 되는 시선(“젊은이들이 내가 그들을 부러워한다고 믿도록 놓아두는 것. 글쎄, 먼저 죽는다는 잔인한 일과 관련해서는 분명히 부러워하지만, 그 외에는 아니다(중략)나는 세상이 아마도 그들에게 하게 될 일로부터, 그들이 아마도 서로에게 하게 될 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싶다. 하지만 물론, 이건 가능하지 않다. 나의 돌봄은 요구되지 않고, 그들의 자신감은 제정신이 아닐 정도니까”),

결국은 모두에게 진짜로 남는 사랑-이야기가 있다는 것(“어쨌든 절대 잊지 마세요, 폴 도련님.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대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그래서 더욱더 진짜가 되지. 때로는 어떤 쌍을 보면 서로 지독하게 따분해하는 것 같아.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을 거라고는, 그들이 아직도 함께 사는 확실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어. 하지만 그들이 함께 사는 건 단지 습관이나 자기만족이나 관습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한때, 그들에게 사랑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야. 모두에게 있어. 그게 단 하나의 이야기야”).

 

그리고 이 과정은 인간의 기억 작용을 짐작게 한다.

 

행복, 기쁨, 웃음으로 이루어진 오랜 기간들은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다. 이미 내가 묘사하기도 했으니까. 기억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그것은…… , 이런 식으로 표현해보자. 통나무를 쪼개는 기계가 작동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아주 인상적이다. 통나무를 일정한 길이로 잘라, 기계의 대에 올려놓고, 발로 단추를 밟으면, 통나무가 도끼날처럼 생긴 날 쪽으로 밀려간다. 거기에서 통나무는 결을 따라 쪼개진다.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말이 그것이다. 인생은 단면이고, 기억은 결을 따라 쪼개지는 것이며, 기억은 그것을 끝까지 쭉 따라간다.
따라서 나는 계속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기억하기 가장 힘든 부분이라 해도. 아니, 기억이 아니라묘사하기에. 그것은 나의 순수함의 일부를 잃어버린 순간이었다.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성장이란 순수를 잃는 필연적 과정 아닌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삶에서 문제는, 그런 상실이 언제 일어날지 아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안 그런가? 그리고 어떻게 될지, 그 뒤에.”(하나)

너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공적 개입은 원하지만 너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건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너의 진실성이라는 것이 위태로울 정도로 유연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잃어버린 기억 하나는 순수 하나를 잃는 것과 같다. 상대에 대한 순수 하나를 잃어버리면 내 순수 하나도 잃어버리는 게 된다. 폴은, 우리는 얼마나 추적해나갈 수 있을까. 진실과 마찬가지로 그 순수는 정확히 거기 있으며 하나일까. 폴과 수전은 세상의 눈총과 족쇄에서 달아나 둘만의 새로운 세상을 바랐지만 그곳에 순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수전은 남편의 알코올 중독과 폭력을 혐오했으면서 자신도 알코올 중독과 정신 이상으로 폐인이 되어 갔다. “알코올중독자의 파트너는 그 습관에 혐오감을 느끼기는커녕아니, 그 습관에 혐오감을 느낌에도 불구하고스스로 그 습관에 굴복하는 경우가 많듯이 수전도 그리되었다. 그러나 원인은 더 복잡하고 복합적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망, 친척 아저씨의 집요한 성폭력, 전쟁과 시대적 상황, 연인의 사망 그리고 얼마나 더 많은 개인적 이유들이 있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수전과 다른 듯 비슷하게 폴도 무력하고 수동적이었다. 그녀를 돌보느라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었고 전도 유망한 변호사가 되기보다 시원찮은 일을 하며 삶을 꾸려나갔다. 거기서 또 보람을 느끼면서. 그가 이리 된 걸 수전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자신이 말짱하게 남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바라며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속이면서도 그들은 상호의존적이었다. 안타깝게도 삶을 채우는 사랑, 가식, 의무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내면화되는 인간성이다.

 

젊은 시절, 수전을 사랑한다는 자부심으로 뜨거웠던 그는 경쟁심이 강했다, 모든 젊은 남자가 그렇듯이. 내 좆이 네 좆보다 크다, 내 심장이 네 심장보다 크다. 젊은 수컷들은 또 여자친구에게 딸린 것들을 자랑하기도 했고. 반면 그의 자랑은 달랐다. 나의 관계가 너희의 관계보다 얼마나 더 위반적인지 봐라. 그리고 또,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 또 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의 강도를 봐라. 그게 중요한 것이었다, 당연히. 감정의 강도가 행복의 수준을 지배한다, 그렇지 않은가? 당시에 그에게는 그것이 지극히 논리적으로 보였다.”()

그에게는 그녀가 과거에 어땠는지 돌아보고, 그녀를 탈환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의무도 있었다. 돌아보고…… 자신을 탈환하는? 무엇으로부터? ‘그 이후 그의 삶의 난파로부터? 아니, 그것은 멍청할 정도로 신파적이었다. 그의 삶은 난파한 적이 없었다. 그의 심장, 그래, 그의 심장은 불로 지져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살 방도를 찾아냈으며, 그 삶을 계속했고, 그것이 그를 여기로 데려왔다. 여기에서, 그는 그 자신을 한때 그랬던 모습으로 볼 의무가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젊었을 때는 미래에 아무런 의무가 없는데, 나이가 들면 과거에 의무가 생긴다. 하필이면 자신이 바꿀 수도 없는 것에.”()

낡은 교조로부터의 이런 해방은 그 나름의 복잡한 상황을 초래했다. 의무감은 내면화되었다. ‘사랑은 그것 자체로 의무였다. 너는 사랑할 의무가 있었고, 이제 그것이 너의 중심적인 믿음 체계이기 때문에 의무감은 더욱 강해졌다. 사랑자체가 많은 의무를 수반했다. 그래서, ‘사랑은 겉으로는 무게가 없어 보여도 아주 무거울 수 있었고, 강하게 속박할 수 있었으며, ‘의무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큰 재앙을 일으킬 수 있었다.”()

 

 

나이 열아홉에 느끼려 한 사랑의 진실과 일흔이 넘은 뒤 돌이켜보는 사랑의 진실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 반스는 그 비교도 썼다.

 

당신은 나이 열아홉에 사랑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었겠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법정에서라면 그런 이해가 책 몇 권과 영화 몇 편, 친구들과의 대화, 어찔한 꿈, 자전거를 탄 어떤 소녀들에 관한 가슴 아린 환상, 내가 잠자리를 함께한 첫 여자와의 사분의 일 쪽짜리 관계에 기초하고 있었다고 평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열아홉 살짜리 자아는 법정의 평결을 바로잡을 것이다.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나중에 오는 것이고,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현실성에 근접한 것이고,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심장이 식었을 때 오는 것이다. 무아지경에 빠진 애인은 사랑을 이해하고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고 싶어 하고, 그 강렬함, 사물의 초점이 또렷이 잡히는 느낌, 삶이 가속화하는 느낌,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는 이기주의, 욕정에 찬 자만심, 즐거운 호언, 차분한 진지함, 뜨거운 갈망, 확실성, 단순성, 복잡성, 진실, 진실, 사랑의 진실을 느끼고 싶어 한다.
사랑과 진실, 그것이 나의 신조였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나는 진실을 본다. 그렇게 간단해야 한다.”(하나)

몇 번의 검열에서도 살아남은 그의 공책의 한 기록. “사랑에서는 모든 것이 진실인 동시에 거짓이다. 사랑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한 가지 주제다.” 그는 처음 이 말을 발견한 이후로 계속 이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이 더 넓은 생각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즉 사랑 자체가 절대 터무니없지 않다는 것, 그 참가자들 누구도 그렇지 않다는 것. 한 사회가 강요하려 하는 감정과 행동의 모든 엄격한 정통성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그것을 미끄러져 지나쳐버린다.” ()

 

열아홉의 폴은 사랑과 진실이 단순한 실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흔이 넘은 폴은 진실은 항상 변하고 있었으며, 양립할 수 없을 때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며 여러 관점에서 해석해본다. 자신과 수전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여러 상황을 가정해본다. 수전의 남편 매클라우드 입장에서 상황을 재해석해보기도 한다. 자신의 사랑이 사라진 시점도 파악한다(“가장 열렬하고 가장 진지한 사랑이라도, 정확한 공격을 받으면, 연민과 분노의 혼합물로 응고해버릴 수 있다는 깨달음”, 죄책감과 가책, 불가피하다는 도덕적 판단을 내렸지만 결국 그녀보다 자신을 구원하기로 한 선택, 연민과 분노와 함께 자기혐오를 감당해야 하는 수치에서 벗어나기). “우리 모두 그저 안전한 장소를 찾고 있을 뿐이야. 만일 그런 곳을 찾지 못하면, 그때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워야만 해.”라는 말을 청년 시절에는 절망의 권고처럼 들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정상적이고, 감정적으로 실용적이라고 생각한다. 수전의 순수를 찾는 이 과정은 자기 보호이자 용기이자 비겁인 모순적인 양면성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단 한 번의 사랑을 평생 전사로서 간직하며 사는 폴은 사랑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을 연기하며 독신으로 생을 마감할 듯하다. 수전의 삶이 그랬듯 그의 이유도 복합적이다. ‘그의 부모, 그들의 성격과 상호작용, 다른 결혼에 대한 그의 관점, 그의 눈에 보인 가족이 주는 피해, 그것에서 탈출해 수전 매클라우드에게 간 일, 어떤 마법의 세계에 빠져들었다는 짧은 착각, 관계 속 환멸과 소심의 왕복, 거듭되는 상심, 그의 생각을 바꿀 대상의 부재등등. 그는 인간이 너무 불완전해서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으며 그것은 또한 영화에서 파생된 환상(브롬화물)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주는 것은 더욱 터무니없다고도 말한다. 어느 시대 어느 세대나 ‘사랑’이 온 세상을 바꿀 혁명적 힘이자 만병통치약인 듯 말한다. 줄리언 반스의 이 소설은 어떤 형태로 있든 사랑의 민낯, 사랑에 대한 불가피한 통찰과 현실성을 말했다. 공감할 수 없어 반스에게, 나에게 사랑에 대해 이것이 정녕 최선이라고 생각하는가 묻는다면 우리가 알고 겪었던 많은 사랑이 대개 이렇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거 같다한계와 때늦음을 곱씹으며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이런 사랑의 통찰을 통해 우리는 계속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사랑은 어떤 이에겐 외면하고 덮고 싶은 상처이고, 어떤 이에겐 삶의 의지와 위안을 주는 행복이며, 어떤 이에겐 가질 수도 누릴 수도 없는 평생의 숙제이지만, 우리는 승자도 패자도 아니고 저마다 이야기를 간직하며 살아간다.

 

그래, 사랑은 그에게는 완전한 재난이었다. 그리고 수전에게. 또 조운에게. 그리고그의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당연히 매클라우드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줄을 그어 지운 기록 몇 개를 훑어보다가, 공책을 다시 서랍에 집어넣었다. 어쩌면 늘 시간을 낭비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사랑은 결코 정의로 포착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오로지 딱 이야기로만 포착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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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10-16 2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정의하는 것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내가 사랑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아닌 듯 하고. 나의 기준에 따른다면 다른 이들의 사랑은 저와는 또 다른 것도 같은. 그래서, 사랑은 아마 그 때 그 장소에서 당시의 나에게 일어났었던 박제된 감정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뭔 소리를 하는건지...ㅜㅜ)

AgalmA 2018-10-16 22:44   좋아요 2 | URL
백 가지 사랑이 있다면 백 가지 정의가 있겠죠. 일반화로 모으려 하지만 예외와 불가해를 우린 늘 직면하잖습니까.

겨울호랑이님 그 감정, 뭔 소린지 저는 좀 알 거 같은데요ㅎ; 이심전심도 아니고 이건 뭐람;; 공부가 부족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