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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Feynman
짐 오타비아니 지음, 이상국 옮김, 릴런드 마이릭 그림 / 서해문집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양자역학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천재적인 물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 그리고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물리학 강의' 등의 책을 썼던 저명한 작가.... 실제로 이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런 몇 가지의 단편적인 지식에도 불구하고 괜시리 '파인만'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것은, 그나마 물리학에 대해서 조금 관심이 있다는 것과 그가 쓴 책들을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부터 보관함에 담아 놓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살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듯 합니다. 상대성 이론 자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인슈타인이라는 인물과 상대성 이론이라는 말이 생소하지 않고, 역학에 대한 이해가 조금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뉴튼이라는 사람과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용어가 전혀 거부감 없이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QED에 대해서는 텔리비젼 과학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기억이 전부이고 이해를 위한 기본지식도 노력도 없었지만, QED라는 용어가 양자역학에 대한 용어이고 파인만이 이 분야에 업적을 남겼고 일반인을 위한 책을 쓰기도 했다는 사실만은 내 머릿속에 또렷이 친근함으로 자리잡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대로 안다는 것과 알고 있다는 듯이 느끼는 것과의 괴리가 생각보다 훨씬 크겠지만, 어쨌든 파인만과 양자역학, 그리고 QED라는 말들이 낯설지만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인생을 만화로 다룬 이 책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만화라면 그가 심취했던 물리학에 조금 더 쉽게 다가설 수 있으려니 하는 기대도 있지만..... 결국 다 읽고 나서 느끼는 것은 이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는 조금 더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가 했던 물리학의 영역에 대해서는 여전히 하얀 백지 상태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고 고백해야 할까나 봅니다.   

 리처드 파인만은 1918년 5월 11일 뉴욕시 퀸즈의 파 락어웨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책에서도 티라노사우르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나오지만, 유대인이었던 그의 아버지 멜빌 파인만은 파인만이 어렸을 때부터 단편적인 대답보다는 많은 질문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왔던 훌륭한 선생님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실험실을 가지고 여러가지 실험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단순한 물리학자로서의 삶만이 아니라, 라디오를 수리하거나 금고와 자물쇠를 여는 일, 작가나 화가, 그리고 악기 연주자로서의 재능도 함께 지니고 있었고 유머와 재치도 출중하였습니다. 1939년 MIT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전쟁 후인 1945년에는 코넬대학교 이론물리학 조교수로, 1950년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코넬대학 시절부터 양자전기역학(QED)를 연구하였으며 이후 '재규격화이론'을 완성하였는데, 1965년에 이 업적을 인정받아 J.S. 슈윙거, 도모나가 신이치로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합니다. 이 책에서 파인만이 자신이 완성한 재규격화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이상한(?) 그림은 파인만이 직접 고안한 '파인만 다이어그램(Feynman diagram)'인데 이론 물리학에서 널리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업적 이외에도 그가 행했던 캘리포니아 공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물리학 강의로도 유명한데, 후에 '물리학 강의'라는 책으로도 출간되었고, 이 책에서도 파인만이 물리학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책들을 출판하여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합니다. 20세기에 거시적 세계를 다루는 물리학에서 아인슈타인이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미시적 세계를 다루는 분야에서는 파인만을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형식과 권위를 거부하고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를 끝까지 유지했던 그의 삶의 모습 또한 많은 이들에게 매력으로 남았습니다. 1988년 암으로 투병 중 69세의 나이로 사망하하였습니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한 사람의 인생을 깨알같은 글씨로 채워진 책으로 표현한다 해도 만만치 않은 일일텐데, 만화라는 형식으로 표현한다면 훨씬 단순화시키고 축약해서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림이라는 형식이 주는 장점이 있기는 하겠지만, 단순히 어린시절부터 나열하는 연대기적인 방식으로는 복잡스런 인생을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니까요. 또한 늘어나는 양도 문제가 되겠지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이야기 전개 방식이 궁금하였는데, 저자들은 파인만이라는 인물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굵은 주제에 중심을 두고 파인만이 화자로서 직접 현실에 등장하기도 하고 독백과 회상을 통해서 직접 화자로서 말한 내용과 연관된 사건이나 생각들을 곁들임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방식으로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한 것 같습니다. 파인만의 삶 자체가 아니라 형식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를 하면서 물리학의 영역을 헤쳐나가던 삶의 맥락에 더 포인트를 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필요하다면-실제 가장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물리학 자체에 대한 설명도 마다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들이밀고 있는데,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가만히 읽고 있노라면 물리는 역시나 어려워하고 물러서기 보다는 그가 했던 학문에 대한 궁금중이 훨씬 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쓴 가벼운 책들도 읽어보고 싶지만, QED 강의나 물리학 강의 같은 책들이 더 흥미를 일으키는 것을 보니, 이 책은 단순한 파인만의 일생을 그린 만화라기보다는 물리학의 매력에 흠뻑빠져 살았던 한 괴짜같은 천재 물리학자를 통해서 물리학이 가지는 오묘함과 끝없는 매력을 은근히 내 비춰주고 있다고도 하겠습니다. 이 책을 통해 대하게 된 파인만.... 이 사람이 살았던 삶도 흥미로웠지만, 그가 빠져살았던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더 궁금해지는 시간입니다....  독자로서 이리 궁금증이 부푸는 것은 파인만의 삶이 지닌 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삶의 맥락을 멋지게 풀어낸 저자들의 노력의 결실-또한 이 책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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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트인 과학자 - 데이터 조각 따위는 흥미롭지 않아요. 특히 숫자!
랜디 올슨 지음, 윤용아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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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과학'이라는 알맹이를 갖고 과학자가 대중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를 얘기하는 책이다. 과학이 진실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때 그것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p20  

 '제발 그런 과학자는 되지 마세요!' 내용중에서서 이 책에 대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장 적절한 구절 하나를 고르라면 '그런'이란 단어에 강조가 들어간 이 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때는 잘나가던 '그런 과학자'였던 저자가 도대체 무엇에 된통 얻어 맞았길래 이런 말을 하는 건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과학자의 신분으로.... 정부 지원금 신청하는 걸 빼면 연구도 즐거웠고, 과학 발표회에서 연설하는 것도 즐거웠으며, 과학 논문을 읽는 것도 즐거웠'으며, '연구논문을 작성하는 것도 즐거웠고, 무엇보다도 과학적 과정을 통해 자연의 모든 이치에 이성과 논리를 부여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는 저자에게 무슨 문제 의식이 생긴것일까? 저자가 자신의 인생사-결혼과 이혼-를 통해서 고백하는 '그런 과학자'로서의 문제는 그가 자신의 학문에 몰입해서 그 안에 집중하며 즐거워했을 때가 아닌, 그런 세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과학자로서 정보를 중시해야 하는 사고방식의 특성이 자신의 다른 삶 속에서도 그대로 투영되어, 남편으로서 살아야 할 일상에서도 '머리만 사용하고-춤추러 가기보다는 책을 읽고 상상력이 없었으며- 모든 것을 불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꾸며낼 줄 몰랐으며, 데이터들 자체가 재미있는 것인 줄 알고 연구에 대한 이야기만 반복했'던 저자를 향해 그의 아내가 했던 '제발 그런 과학자가 되지 마세요!'라는 말을 언급하며, 저자는 '그런 과학자'들이 일상의 삶에서 자신의 사고의 틀에 갇혀 대중과의 의사소통에 문제를 일으키지만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아예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소통(Communication)이야. 이 샌님들아!' 어떤 종류의 학술적인 모임이든 그런 모임에서의 발표내용 또는 형식과 '개그 콘서트'같은 개그 프로그램을 생각한다면 저자가 말하는 소통의 문제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개그 콘서트와 같은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아무런 준비가 없이도 웃으면서 즐길 수가 있지만, 학술모임에서는 발표내용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는 일반인이 흥미를 유지하며 편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그런 모임에는 그런 분야에 지식이 있고 관심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 참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바로 저자는 그런 모임 중의 하나인 과학자들의 모임이 일반인들과 소통할 때도 '그런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그룹안에서 소통하던 방식 그대로를 고집하고, 그 과정에서 대중과의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런 과학자'들은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과학적인 성과를 일반인들에게 알리고 더 광범위한 관심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과학자들끼리 모여서 하는 학술모임에서의 정보만을 중시하는 방식을 버리고 감정에 호소하거나 또는 감각적인 자극을 유도하는 매스컴(영화)의 방식을 배울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더 대중적인 지지를 이해와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이 흥미를 유지하게 가공하고 꾸밀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과학자가 대중과 소통하게 위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바로 이것이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주제입니다. 

  '이야기하는 내용-텍스트가 학문의 영역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대중과의 원할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스타일도 한 몫을 한다', 두뇌-머리도 중요하지만, 머리 아래쪽 기관들-가슴, 복부, 성기-이 제공하는 인간적인 것 즉 활력과 에너지도 중요하다. '대중과의 의사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가지 요소는 바로 자극과 충족이다. 처음엔 대중을 자극하여 흥미를 유발시켜야 하며, 그 다음엔 충족시켜줘야 한다.'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 속에 드라마의 굴곡을 잘 살리면서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다면, 자극과 충족을 동시에 제공하며 대중이 지속적으로 괸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의사소통에서 호감의 힘을 깨닫고, 똑똑한 척 나대지 말고 똑똑하게 처신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는 과학자가 대중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들입니다. 물론 저자는 이런 지식만으로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 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며, 자신이 이 책을 통해 바라는 것은 과학자들이 '고리타분하고 머리로만 생각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피하는 그런 과학자'로 남아 있지 말고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돌아보고 더 많은 대중들과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머리만 사용하지 말고, 무미건조한 마음은 갖다 버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호감가는 태도를 배우고 유지하라. 저자는 과학자들을 향해 대중들과 소통할 때는 이런 사실들을 유의하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 책이 말하는 의사소통의 방법이 필요한 사람들은 비단 과학자라는 그룹에 한정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의사소통을 위한 방법은, 차이는 있겠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필요한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과학자들을 향해 '그런 과학자는 되지 마세요!'라고 외쳤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틀에 갇혀 원활한 소통의 방식을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마세요!'라는 외침도 함께 듣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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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원자 -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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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원자와 물리적 원자 사이에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수소 원자는 탁자에 있든, 별 속에 있든, 물속에 있든 언제나 똑같은 수소 원자이다. 물리적 원자는 언제 어디서나 똑같다. 그러나 사회적 원자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변하고 적응하며 사회 조직을 알아채고 거기에 반응한다. 사회 물리학의 아이디어를 비판했던 위대한 철학자들은 인간 행동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예측하지 못한다고 말한 점에서 옳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 현상에 대한 물리학적 접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 현상이 물리 현상보다 더 풍부할 뿐이다. 물리적 원자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패턴을 따른다. -p61~62 

 서문에 소개된 토머스 셸링의 체스판 위의 흰 동전과 검은 동전을 통한 흑인과 백인 사회의 분리 경향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실험은 사람들이 인종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사는 사회의 환경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을 통해서 저절로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꼭 인종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자신이 단지 소수자가 되기 싫어하는 경향을 지녔다는 가정만으로도 결국은 사회가 흑백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이 실험은 보여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우리의 안목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흑백 사회의 분리에 대한 기존의 설명이 인종주의에 대한 비난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면, 분명 이 실험은 사회가 분리되는 경향은 그러한 극단적인 인종 차별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향이나 삶의 패턴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현상에 대한 이러한 극적인 설명을 가능하게 한 셸링의 분리 게임은 기존의 사회학이나 철학, 경제학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던 인간사의 영역에 대한 설명에 단순화한 과학적인 모형이 더 유용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다루는 사회 물리학은 그런 원대한 꿈을 지니고 세상에 첫 선을 보였을 것입니다.

 '세상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제 사람들에겐 진부한 진리가 되었고, 물리학은 그것 보다 더 작은 미시세계를 다루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이 현대에 이르게 된 것은 바로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분자들 이루고 또한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그 바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역자가 인용한 파인만의 '모든 물체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 이 작은 입자는 조금 떨어져 있으면 서로 끌어당기고, 밀착되면 반발하면서 영구히 운동한다.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이 한 문장에 세계에 대한 방대한 정보가 들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처럼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등의 과학은 '세상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상상력을 입히고 그것을 현실에서 확인하는 학문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학에서의 원자라는 아이디어를 사람이 사는 사회에 적용하고자 이 책에서 사용한 용어가 '사회적 원자'입니다. 세상을 이루는 물질의 기본 단위가 원자이듯이, 사람들이 사는 사회를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원자의 개념으로 이해하자는 의미인데, 물론 첫머리에 소개한 사회적 원자와 물리적 원자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일정한 패턴에 따라 움직이는 물리적 원자들처럼 사회적 원자도 결국은 일정한 원칙이나 패턴에 따라 사회를 구성하고 또한 변화를 일으키리라는 가정을 그 바탕에 둔 개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서문에 소개된 셸링의 분리실험은 사회적 원자라는 개념이 복잡한 인문학적인 이유와 인과관계에 대한 고찰보다 인간 사회를 더 잘 설명해 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회 물리학이 다양한 방면에서 과학적인 단순화와 패턴의 정립을 통해서, 기존의 인문학이나 철학, 경제학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던 복잡하게만 보였던 사회현상을 상당히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가 사회물리학의 설명에 이용한 주된 분야는 경제학으로 요즈음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기 시작한 행동경제학의 영역과 일맥상통하는 내용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과연 인간 세상도 물리적인 세계처럼 수학적인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을 원자로 보고, 전체 패턴에 크게 기여하는 핵심만 남겨두고 군더더기는 없애버리는 단순화를 통해서, 통계 물리학의 아이디어로 사회현상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러한 관점에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 같습니다. 각 나라의 소득분포, 인종분리, 집단학살, 주가의 예측, 루머의 확산 등과 같은 사회현상을 과학적인 방법론에 의거한 패턴이나 원리를 통해 간단명료하게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사회적인 원자라는 개념에 스스로 배우고 행동을 따라하기도 하고 교정할 수도 있다는 특징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사람이라는 존재를 집단적인 특징이 중시되는 집합체인 사회적인 원자로 다룬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까지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은 아닌 듯 합니다. 물론 이제 시작한 이 분야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 정교해지고, 더 설득력 있는 사회현상에 대한 설명을 내놓을수록 사람들에겐 단순한 관심분야가 아닌 실제적인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때에 이르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그리고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고, 종교적인 심성 또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되기는 하겠지만.....

 사람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정직한 노력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 사람의 힘을 늘리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진리 탐구이며, 이것을 통해서만 인간의 완성에 끝없이 다가갈 수 있다. -p255,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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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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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모두 수학을 경험해 보았을 겁니다. 수학이 싫은 사람은 수학을 고역으로 여길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마 게임쯤으로 생각하겠죠. 일리있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수학에는 또 다른 면이 있어서 그걸 느끼려면 무한을 생각해야 하죠. 어느 위대한 인물은 무한이 인류의 정신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관념이라고 했어요. 맞는 말이에요. 무한은 인류의 정신을 가장 강하게 압박해온 관념, 인간의 정신력을 절대 한계까지 몰아붙여온 관념이라는 점! 또 무한은 수학의 내면이 허약하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개념이기도 하죠. -p134, 러셀의 강연 장면 중에서  

 수학적으로 '무한'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한대를 나타내는 부호 -  -와 함께 뒤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끝없음으로 표현되는 '더 큰 무한' -예를 들면 자연수의 경우 한없이 커지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상태-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알고는 있지만 미처 의식으로 또렷하게 떠올리지 못했던 또 다른 개념의 무한이 있음을 이 책을 보면서 문득 깨닫게 됩니다. 자연수 3과 4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지만 실수 3과 4사이에는 역시 무한이 존재한다는 사실, 즉 '더 작은 무한'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 별 것이 아닌 자각이지만, 여태껏 무한의 개념을 대하면서 앞의 개념만을 생각하던 내 자신이 다시 한 번 깨이는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수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많은 인물들의 시작도 바로 이러한 깨임의 즐거움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들은 이러한 단순한 즐거움에 머물지 않고 희열을 넘어 광기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을 몰고 가고는 하였던 듯 하니, 위대한 성취의 이면에는 평범한 이들이 느끼는 첫자락의 작은 쾌락 이상의 무엇인가가 숨어있다고 하는 것이 진실일 것입니다.  

 만화로 표현된 수학 이야기, 수학의 토대 또는 논리에 대한 이야기. 엄격하게 말하면 이 책은 수학의 역사 -특히 논리적인 토대의 역사-에 대한 책이지, 수학 자체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끔씩 수학의 본 얼굴이 잠깐씩 보이기는 하지만, 주된 내용은 수학의 확고한 논리적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수학자들의 투쟁(?)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주의할 점은 현실적인 개연성을 토대로 하기는 했지만, 수학의 역사에서 있었던 사실 자체를 그대로 나타낸 이야기들이 아니라 작가들에 의해서 '수학의 토대를 찾아서'라는 주제에 맞게 어느 정도 각색되어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새기고, 책 속으로의 여행을 떠난다면 이 책을 통해서 정말로 흥미로운 개념들과 인물들을 만나는 즐거운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수학의 토대에 대한 치열한 공방, 무한, 자기언급, 실재와 지도의 관계, 러셀의 역설과 수학적 직관주의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기 어려웠던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대할 수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 라이프니츠, 칸토어, 프리게, 러셀, 비트겐슈타인, 힐베르트, 괴델, 푸앙카레, 폰 노이만, 그리고 튜링 등 수학의 역사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만났던 이들을 수학이라는 창을 통해서 대하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를 통해서 어려운 공식과 반복되는 계산으로 일그러진 수학이 아닌, 삶의 일부로서 살아 숨쉬는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 넓힐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있을 것 같습니다. 

 형식적인 면에서, 러셀의 어느 대학 강연 모습과 수학의 토대를 찾기 위해 일생을 불사른 사람들의 이야기, 저자들이 이 책을 구상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얽혀서 진행되는 이 책의 다층적인 구조는 이야기의 흥미로운 진행을 떠나 저자들이 숨겨놓은 나름의 의도가 있을 듯 한데, 옮긴이는 이를 '자기언급'의 개념을 들어 슬쩍 언급하고 넘어 갑니다. 러셀의 역설이나 에우불리데스의 거짓말쟁이 역설의 핵심이 '자기언급'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저자들이 책을 만드는 과정을 스스로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자기언급'의 형식에는 결국 자신들의 원대한 계획이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수학의 원리'라는 책의 집필을 통해 수학의 근본적인 토대에 도달하고자 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사실처럼, 시작만 한 채 마무리하지 못하였음을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마무리 될 수도 없음을 은연 중에 내비추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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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바로 뇌다 - 연쇄살인자, 사이코패스, 극렬 테러리스트를 위한 뇌과학의 변론
한스 J. 마르코비치.베르너 지퍼 지음, 김현정 옮김 / 알마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들은 <법을 위해 신경과학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현재의 법정이 범죄자가 이성적으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기본 원칙에서 출발한다고 비판했다. 그린과 코헨은 범죄자에게 이러한 기본 능력이 있음을 부인하고 사례를 충분히 들어 자신들의 견해를 입증했다. 이로부터 그들은 법체계의 합법성 역시 사회의 도덕관념에 좌우된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관념이 뇌 연구에서 확보한 인식을 바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판단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간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존재로 간주하는 양립적인 법 원칙의 오랜 결합과 자유와 관련된 도덕적 관념이 깨져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그의 사회화에 문제가 있는가?"  "그에게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그의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가?"  "그에게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그가 처한 환경에 문제가 있는가?" "그에게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그의 뇌에 문제가 있는가?" 와 같은 전통적인 법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회화나 유전자, 환경, 뇌 없이는 '그' 역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240-241, '법에 대한 신경과학의 도전' 중에서  

 현재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형법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능력'이라는 기본 원칙위에 세워졌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키는 범죄가 발행하고 범인이 검거될 때면, 신문 또는 방송을 통해 언급되는 사이코 패스니 정신 질환자라는 언어가 낯설지는 않지만, 결국 법정에서는 그들이 자란 환경이나 사회적 압박, 정신질환의 문제에 대한 배려보다는 범죄자가 저지른 범행에 대한 처벌이 우선일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범죄에 노출되고 두려움을 느끼는 많은 일반인들의 관점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그러한 범죄에 이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범죄자에게 책임을 지우고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 드물 것입니다. 이 책이 주장하는 '범죄자는 그가 처한 환경에서 달리 결정할 수 없는 심리 기제와 사회적 행동에 장애가 있는, 반사회적인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그러한 시각에 큰 변화가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범죄자를 만들어 내는 사회구조나 환경 등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다양한 범죄에 대한 책임의 일부도 우리 자신과 사회가 공유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각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많은 범죄의 원인은 뇌에 있다고, 그 사람이 자란 가정적, 사회적 환경과 뇌손상이나 질환 등에서 연유된다고 주장하며 범죄자 자신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 책의 내용은 읽는 이에게 상당히 도발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있습니다. 단순히 뇌과학 또는 신경과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에서는 호기심과 지적 탐구를 위한 즐거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가 지극히 현실적인 내 삶의 안위와 범죄를 연결시킨다고 생각한다면, 단순한 읽을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일테니까요.   

 각 개인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졌고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 또한 각 개인에게 속해 있다는 원칙 위에 세워진 것이 기존의 법체계이자 인간 사회에서 범죄에 대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식이었다면, 이 책에서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범죄를 저지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록 자유의지가 주어졌다고 가정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범죄의 발생은 어떤 상황에서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나 감정적인 변화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받게 만드는 양육환경과 뇌의 손상 등에서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이나 범죄의 근본 원인이 뇌에 있고, 선과 악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이 신경세포 회로에 암호화되어 있고, 신경회로망의 가벼운 오작동이 잘 유지되던 사회적 균형을 파괴하고 인간을 가볍게는 외톨이로, 최악의 경우에는 동정심을 모르는 짐승 같은 존재로 만들수 있다' 는 것이지요. 결국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에게는 뇌신경과학의 관점에서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단언할 수 없으며, 오히려 다른 식으로 결정할 수 있는 감정의 유연성이 몹시 제한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일까? 또한 책임을 묻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아니면 현재 법체계의 자유의지와 책임이라는 환상(?)에 수정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물음과 그에 대한 신경과학적인 탐구가 바로 이 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범인은 인간 자체가 아니라 여러가지 여건에 의해 손상되고 왜곡된 그 사람을 조정하는 뇌라는 것이 이 책이 말하는 일관된 주장입니다. 

 현실적으로 뇌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모든 범죄에서, 한 개인으로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저질러진 어쩔 수 없는 결정론적인 이유들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범죄의 책임을 범죄자 개인에게 묻기를 원하지, 사회와 환경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을 찬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자신의 공격적 감정을 깊게 생각하고, 이를 제어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학문적인 사실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법의 의미가 단순한 처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안정되고 풍요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현재와 같은 처벌 위주의 시스템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범죄자들이 흔히 정신 질환을 앓고 있고 뇌손상을 입었으며 하층 출신이라는' 사실에 입각하여 그러한 조건과 환경에 처한 사람들, 특히 청소년기 이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방적인 조치들을 활용하여 미래의 범죄를 미리 차단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고 -물론 여러 제한이 따르는, 그리고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정책은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미리 낙인을 찍는 일일 수도 있으므로 부드러운 접근책의 개발이 우선일 것입니다-, 이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단순한 격리와 처벌이라는 접근보다는 치료를 통한 재범의 방지 및 재활이라는 측면이 사회적으로 더 유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처벌 위주의 형집행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고 인정한다면 더욱이..... 물론 그러한 시각의 변화와 정책의 변화는 간단하게 뇌과학 또는 신경과학과 법학과의 관계에서만 해결될 수 없는 더 큰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문제이겠지만,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단호하면서 자비롭게 다루는' 지금보다는 더 합리적인 모습에 더 가까게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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