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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광신적 기독교 신자와 광신적 이슬람 신자, 광신적 민족주의자, 광신적 공산주의자, 광신적 나치가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광신적 성향은 서로 같아 보일뿐더러 서로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그들에게 팽창과 세계 지배 의지를 불어넣는 힘도 마찬가지다. 모든 유형의 헌신과 신념, 권력 의지, 단결과 자기희생에는 어떤 획일적인 속성이 있다. 숭고한 대의와 교조의 내용은 서로 크게 다르지만, 그것을 유효하게 만드는 것은 그러한 획일적인 요소들이다. 파스칼처럼 기독교 교리로부터 효과적이고 정확한 근거를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공산주의와 나치즘, 민족주의에서도 효과적인 근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운동이 목숨을 거는 숭고한 대의가 아무리 다를지라도 그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에 목숨을 건다. - p12, 서문
'좌절한 사람들의 자기 부정을 향한 갈망', 간단하게 표현하면 저자가 말하는 광신자들의 본질을 이리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자는 광신현상이 관찰되는 여러 대중 운동에 대해서 긍정적하거나 부정하는 식의 가치판단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독자들에게 자신은 여러 대중 운동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을 나누고 논의하자고 초대할 뿐입니다. 겸손한 자세이기는 하지만, 독자들에게는 상당한 도전감을 안겨주는 모양새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좌절한 사람들의 부류에 들어갈 수 있는, 사회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불평분자들을 가장 흔히 관찰할 수 있는 곳의 범주로 빈민, 부적응자, 부랑자, 소수자, 청소년, 야심가들, 일련의 악덕이나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들, 무능한 사람들, 과도하게 이기적인 사람들, 따분한 사람들, 죄인들을 들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저자가 말하는 여러 성공적인 대중운동과 그 지도자들, 열성적인 지지자들의 본질이 상당히 어두워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달갑지 않은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대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미국을 건설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오직 그들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저자가 말하는 '사회의 쓰레기 같은 존재와 불평분자'들은 순전히 기존의 구체제의 관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변화된 신체제의 관점에서는 위험을 무릎 쓴 선구자, 목숨을 바친 혁명가, 숭고한 대의에 자신을 희생한 운동가 등으로 충분히 표현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은 여러 대중 운동에 짙게 배여있는 광신현상에 대한 125개의 단상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광신의 본질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시작하여, 대중 운동의 처음 지도자와 지지자들의 본질에 대한 고찰,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중 운동이 싹트고, 단결과 희생이라는 동력을 통해 성장하고, 창조적으로 또는 파괴적으로 그 결말을 맺는 과정에 대해서까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아마도 책의 처음을 대하다 보면 저자가 대중운동에 대해서 일종의 혐오감마저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광신적인 대중운동의 본질이나 지지자들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단상들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그러한 대중운동이 결국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각성시키며 혁신하는 역할을 한다고 인정하는 것을 보면 그러한 이미지는 저자가 자신의 연구결과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저술해 나가는 과정의 산물일 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마지막장에서 언급하는 대중운동의 시작에서 성숙기까지를 각 단계를 책임지고 이끌어야 할 지도자 유형으로 지식인, 광신자, 실천적인 행동가 등을 들고 있는 것이나 좋은 지도자는 링컨이나 간디 같은 대중운동의 역동기를 언제 끝내줄 아는 지혜로운 이들 이었다고 표명하는 것을 보면, 결국 저자도 사회의 변화와 각성을 위한 대중운동의 가치에 대해서 숙고하고 긍정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의 내용 자체보다는 이 책이 현재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저자의 통찰이 지금의 나 자신과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많이 다를 수 있겠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인 FTA를 두고 대립하고 있는 두 진영을 들 수도 있겠습니다.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그리고 그 사이에는 칼끝같은 단절면만 있을 뿐, 서로를 인정하고 상대편의 말에 귀기울여 타협하지 못하고 결국 한쪽에서는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체루탄이라는 극단으로 기억되는 폭력(?)으로 반항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서로가 옳다고 국민을 팔면서 대립하는 모습을 보면, 말없이 지켜보는 국민의 반정도는 찬성하고 나머지 반정도는 반대한다는 것을 그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의아할 뿐입니다. 과거의 개방 사례들을 예로 들며 누군가는 FTA가 우리에게 또다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우리나라를 미국의 속국으로 만드는 지극히 불평등한 조약이며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 행위라고 말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디까지가 득이 되고 어디부터가 문제이고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정성 담긴 설명을 듣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두 무리의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진정으로 FTA 조항들에 대해서 낱낱이 뜯어보면서 그 내용들이 의미하는 바를 따져보고 숙고해 보았는지,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면 제대로 알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자문이라도 구하며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 보았는지에 대해서 냉정하게 물어본다면 그들은 무어라고 할는지..... 결국 한 쪽은 자유시장경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는 맹신에, 또 다른 한 쪽은 진보라는 자신들이 정파적 이념에 매몰된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닐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들이 간디나 링컨같은 좋은 지도자가 아니라 이러한 상황을 끝까지 지속시키며 자신들의 권력이나 영향력을 유지하고하 했던 나쁜 지도자들이었을뿐이라는 씁쓸함만 남기고 마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서로를 원수같이 대하며 모욕하기에 바쁜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