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바로 뇌다 - 연쇄살인자, 사이코패스, 극렬 테러리스트를 위한 뇌과학의 변론
한스 J. 마르코비치.베르너 지퍼 지음, 김현정 옮김 / 알마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들은 <법을 위해 신경과학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현재의 법정이 범죄자가 이성적으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기본 원칙에서 출발한다고 비판했다. 그린과 코헨은 범죄자에게 이러한 기본 능력이 있음을 부인하고 사례를 충분히 들어 자신들의 견해를 입증했다. 이로부터 그들은 법체계의 합법성 역시 사회의 도덕관념에 좌우된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관념이 뇌 연구에서 확보한 인식을 바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판단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간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존재로 간주하는 양립적인 법 원칙의 오랜 결합과 자유와 관련된 도덕적 관념이 깨져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그의 사회화에 문제가 있는가?"  "그에게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그의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가?"  "그에게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그가 처한 환경에 문제가 있는가?" "그에게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그의 뇌에 문제가 있는가?" 와 같은 전통적인 법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회화나 유전자, 환경, 뇌 없이는 '그' 역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240-241, '법에 대한 신경과학의 도전' 중에서  

 현재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형법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능력'이라는 기본 원칙위에 세워졌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키는 범죄가 발행하고 범인이 검거될 때면, 신문 또는 방송을 통해 언급되는 사이코 패스니 정신 질환자라는 언어가 낯설지는 않지만, 결국 법정에서는 그들이 자란 환경이나 사회적 압박, 정신질환의 문제에 대한 배려보다는 범죄자가 저지른 범행에 대한 처벌이 우선일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범죄에 노출되고 두려움을 느끼는 많은 일반인들의 관점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그러한 범죄에 이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범죄자에게 책임을 지우고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 드물 것입니다. 이 책이 주장하는 '범죄자는 그가 처한 환경에서 달리 결정할 수 없는 심리 기제와 사회적 행동에 장애가 있는, 반사회적인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그러한 시각에 큰 변화가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범죄자를 만들어 내는 사회구조나 환경 등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다양한 범죄에 대한 책임의 일부도 우리 자신과 사회가 공유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각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많은 범죄의 원인은 뇌에 있다고, 그 사람이 자란 가정적, 사회적 환경과 뇌손상이나 질환 등에서 연유된다고 주장하며 범죄자 자신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 책의 내용은 읽는 이에게 상당히 도발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있습니다. 단순히 뇌과학 또는 신경과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에서는 호기심과 지적 탐구를 위한 즐거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가 지극히 현실적인 내 삶의 안위와 범죄를 연결시킨다고 생각한다면, 단순한 읽을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일테니까요.   

 각 개인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졌고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 또한 각 개인에게 속해 있다는 원칙 위에 세워진 것이 기존의 법체계이자 인간 사회에서 범죄에 대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식이었다면, 이 책에서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범죄를 저지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록 자유의지가 주어졌다고 가정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범죄의 발생은 어떤 상황에서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나 감정적인 변화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받게 만드는 양육환경과 뇌의 손상 등에서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이나 범죄의 근본 원인이 뇌에 있고, 선과 악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이 신경세포 회로에 암호화되어 있고, 신경회로망의 가벼운 오작동이 잘 유지되던 사회적 균형을 파괴하고 인간을 가볍게는 외톨이로, 최악의 경우에는 동정심을 모르는 짐승 같은 존재로 만들수 있다' 는 것이지요. 결국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에게는 뇌신경과학의 관점에서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단언할 수 없으며, 오히려 다른 식으로 결정할 수 있는 감정의 유연성이 몹시 제한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일까? 또한 책임을 묻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아니면 현재 법체계의 자유의지와 책임이라는 환상(?)에 수정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물음과 그에 대한 신경과학적인 탐구가 바로 이 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범인은 인간 자체가 아니라 여러가지 여건에 의해 손상되고 왜곡된 그 사람을 조정하는 뇌라는 것이 이 책이 말하는 일관된 주장입니다. 

 현실적으로 뇌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모든 범죄에서, 한 개인으로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저질러진 어쩔 수 없는 결정론적인 이유들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범죄의 책임을 범죄자 개인에게 묻기를 원하지, 사회와 환경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을 찬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자신의 공격적 감정을 깊게 생각하고, 이를 제어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학문적인 사실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법의 의미가 단순한 처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안정되고 풍요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현재와 같은 처벌 위주의 시스템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범죄자들이 흔히 정신 질환을 앓고 있고 뇌손상을 입었으며 하층 출신이라는' 사실에 입각하여 그러한 조건과 환경에 처한 사람들, 특히 청소년기 이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방적인 조치들을 활용하여 미래의 범죄를 미리 차단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고 -물론 여러 제한이 따르는, 그리고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정책은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미리 낙인을 찍는 일일 수도 있으므로 부드러운 접근책의 개발이 우선일 것입니다-, 이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단순한 격리와 처벌이라는 접근보다는 치료를 통한 재범의 방지 및 재활이라는 측면이 사회적으로 더 유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처벌 위주의 형집행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고 인정한다면 더욱이..... 물론 그러한 시각의 변화와 정책의 변화는 간단하게 뇌과학 또는 신경과학과 법학과의 관계에서만 해결될 수 없는 더 큰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문제이겠지만,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단호하면서 자비롭게 다루는' 지금보다는 더 합리적인 모습에 더 가까게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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