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사는 신도시에는 온갖 대형마트들이 다 있는데, '마트를 끊겠다'는 결심을 거창하게 하지 않아도 1, 2년새 자연스럽게 마트에 발걸음을 잘 안하게 되었다. 공산품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사고, 식재료는 집앞 채소가게와 정육점, 5일장과 상설시장이 공존하는 일산시장 등지에서 해결한다. 집 근처 하나로마트는 그래도 자주 가는 편인데, 주로 유제품과 모두부를 사러 간다. (한포대에 300원밖에 안 한다는 중국산 콩가루가 아니라 국산 콩으로 만드는 정말 맛있는 두부가 그 안에 있다) 빵은 잘 먹지 않아서 살일이 별로 없는데, 필요하면 전철로 한 정거장 떨어져 있는 동네 빵집을 이용한다.
왜냐, 마트에서 파는 것들은 정말 맛이 없기 때문이다. (채소와 과일에서 하나로마트는 좀 예외. 평균 이상은 한다.)
철따라 나오는 과일 먹기를 즐기는 나는 단골 과일가게가 두 군데 있다. 가까워서 만만하게 다니는 곳은 성당 앞에 있는 '일번지청과'이고, 좀 비싸도 정말 맛있는 과일을 먹고 싶으면 라페스타 앞의 '무지개청과'에 간다.
일번지청과는 그야말로 '단골'이 되어서, 어디 과일바구니 선물을 해야 하거나 부모님 댁에 뭘 좀 사가야 할 때는 품목도 정하지 않고 그냥 주인 아저씨께 "제일 맛있는 거 주세요!" 하면 실패가 없었다. 냉해 때문에 과일 먹을 걱정이 태산 같았던 봄을 보내고 나서도, 일번지 청과에서 맛있다고 하는 건 다 달콤하니 좋았다. 좀 싸게 많이 먹고 싶으면 또 그런 종류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된다.
'무지개청과'는 좀 비싼 집이다. 마트 > 일번지청과 > 무지개청과 순이다. 마트보다는 20%쯤, 일번지청과보다는 10%쯤 비싼데, 먹어보면 그 이유를 안다.
그 무지개청과에 오디가 들어왔다. 앵두는 이제 들어갔고, 오디와 산딸기가 나오는 철인데, 정말로 반짝, 한순간만 나오는 과일들이라, 있을 때 먹어야 한다. 까맣게 잘 익은 뽕나무 열매 오디는 정말 달고 맛있다. 얼른 먹지 않으면 뭉크러지니까 보자마자 흡입해야 한다!!
그리고 산딸기란 녀석, 보면 볼수록 참 고혹적으로 생겼다. 보면 바로 입에 넣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나는 얘들을 요구르트에 넣어먹는 게 정말 좋다. 잘 익은 오디를 달지 않은 요구르트에 넣어서 먹는 맛이란!! (내가 좋아하는 건 덴마크 요구르트 플레인~)
조한혜정 선생님이 '마을'과 '단골'이 답이라고 하셨을 때, '그러게요. 하지만...' 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 동네 채소가게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걸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조그만 과일가게에 손님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서, 좀 비싸지만 맛있는 동네빵집이 오래도록 건재한 걸 보면서(나는 이 동네에 11년째 살고 있다) 그래도 세상이 아주 나빠지진 않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치사한 상술로 사람들을 유혹해도, 좋은 거 맛있는 거는 일차원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다. 장사에 꼼수를 부려서는 오래 가지 못하는 법. (대형마트는 꼼수 빼면 뭐가 남나 몰라...)
5천원 주고 산 오디 한 팩을 거의 다 먹었다. 입술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기분이 좋다. 바야흐로 오디의 계절이다. 더 즐겨야겠다.
우리 동네에 무슨 빵집이 맛있나 찾아 보려면 이 책을 참조하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가게도 물론 이 책에 나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