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1~18(완결) 세트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세주문화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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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만화광 친구의 추천으로 집어든 '몬스터'는 내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여태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만화에 대한 유아적 고정관념의 틀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한 사람의 작가가 '이야기꾼'이 아니라 천재로 아로새겨지는 계기였다.

<몬스터>는 만화라는 그 장르적 예술의 경지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그 어떤 모습으로도 재현될 수 없는 눈부신 '아우라'를 발산한다. 소설이나 영화속의 요한이 과연 만화속의 요한처럼 전율적일 수 있을까? 그건 순전히 우라사와의 힘이다. 일찌기 <마스터키튼>과 같은 우라사와의 만화를 접하며 내속에 갈무리 되온 만화가로서의 그의 모습은 장인의 모습이었다. 해박한 그의 지식과 경험들에서 우러나오는 다양한 연출속에서 그의 만화가 갖는 진정성은 그 어떤 리얼리티보다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오랜 기다림끝에 찾아온 몬스터 18권을 달음질쳐 내달리고 난 후, 한동안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황당한 결론과 도무지 해석되지 않는 마무리속에 '뭘 어쩌란 말인가'하는 의문만이 맴돌았다.(요한의 진짜 이름은 대체 뭐란 말인가?) 하지만, 뒤늦은 깨달음은 무척이나 반가운 것이었다. 어차피 상냥히 마련된 결론따위는 없었다. 이미 1~17권을 거치며 우라사와는 충분히 말해오지 않았던가? 인간이 인간을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았을 때, 그 인간성 상실의 댓가는 이처럼 끔직스러운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것은 순환되지 말아야 할 역사이며, 오늘 우리의 용서가 그 끔찍한 역사를 되돌릴 유일한 힘이란 걸. 그가 던져주는 소리없는 메시지가 내 가슴을 울리는 건 그 이야기들이 먼나라 혹은 가상공간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가까이도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소름끼치도록 묻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의 그 잔인한 만행이야 더이상 말할것도 없거니와 제 민족, 제 형제의 인간성을 소멸시켜간 배부른 돼지들의 만행을 우리가 어찌 눈감을 수 있을까?

만화를 읽고 난 친구는 마지막에 요한이 사라진 이유를 요한이 화장실에 간거라 했다. ㅎㅎ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요한은 만화속에서 나와 이미 우리 곁 어딘가에서 우릴 훔쳐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너희가 주목하지 않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일깨우기 위한 여정을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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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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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또 하나의 세계이다.. 그 신념으로 세계의 윤곽을 잡아내는 것이다. 그 속의 세세한 일면들이야 나의 상상력과 공상으로 메꿔가는 것이다. 그 모자란 공백들이 나의 상상력과 맞물려 빚어내는 세계의 '확장'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이고 즐거움이다. 하지만, 김훈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참 고역이다. 신나게 김훈의 문장을 내달리다 보면... 어느새 나는 이미 훑고 지나간 화려한 수사를 다시 더듬어 올라가는 나의 눈을 어쩔 수 없다.

그의 세찬 문장들속에 실려나오는 민초들의 격정은 실로 위험했다. 다시금 분노하게 하고 다시금 격분하게 하지 않는가? 진정 보듬어야 할 것은 버리지 못한 그들의 생명력이나 세월의 견딤이었음에도 그의 서릿발같은 문장들은 나를 흥분속에 가둬두고 있다. 나는 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나는 그들속의 나일 뿐이다. 우리가 진정 바래야 하는 것은 그속에 변치않는 믿음이다. 영웅이 영웅으로 설때 그속에 잠든 그치지 않는 울음들... 탄식들... 그와 같은 것들이다...

김훈의 문장이 갖는 힘과 유려함이야 이미 정평이 난 것이지만, 특히 이 작품에서는 그의 간결하고도 단호한 문체들이 이순신의 기개와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근래들어 흔치않게 대한 1인칭 소설이었지만, 마치 이순신을 직접 만난 것처럼 생생한 시간들이었다. 더불어 그 간결한 문체에 실려 크게 내놓아 보이지 않은 그의 심경들속에서 오히려 그의 심리를 더욱 이해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진영을 옮길 때마다 자신들을 데려가 달라며 매달려 울던 가련한 백성들을 바라보며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탐관에 할큄당하고, 적의 칼에 베이고, 다시 왜놈들의 인질로 배에 올라 아무런 토로없이 제 동포의 칼에 베이고 화살을 받아야 했던... 조선의 노와 적의 노를 번갈아가며 저어야 했던, 바다위에서건 땅위에서건 기가막힌 죽음만이 허락되었던 그 가련한 민초들을 누가 가엾어 해줄 건가? 이순신의 마음속에 번져갔을 우레, 그 깊은 속저림을 우리는 알리 없다.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김훈이 밝힌 이순신의 최후다. 정말 그랬다. 딱 그랬을 거 같다. 그 어투 그대로. 그에게 전사는 곧 자연사였다. 임금에 베이지 않고, 세월에 무릎꿇지 않고, 적에게 베인 것이다. 그로써 그는 비로서 눈을 감고 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왜 우리는 그토록 생에 철저할 수 없는가? 한 위인의 철저한 삶을 앞에 두고, 우리는 잠못자고 고뇌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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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통의 물
나희덕 지음 / 창비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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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최영미, 도종환, 김용택, 나희덕, 김수영, 류시화...

이들의 공통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들일뿐만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문가들이라는 점이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 쓰는 산문은 왠지 색다르다. 설령 차이가 없다해도 느껴지는 것은 다르다. 왠지 더 섬세하고 깊이있는 사유의 기록으로 다가온다. 그런 면에서 나희덕의 <반통의 물>은 기가 막히다. 어쩜 이렇게도 정갈한 문장들을 소박하게 나열할 수 있을까?

나희덕을 알게 된 건 물론 시집을 통해서다. <어두워지기전>이라는 베스트셀러 시집을 접하고 훑어올라간 그의 시들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달가운 작품들이었다. <그곳이 멀지 않다>에서 보이는 그의 세심한 관심이 그의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속리산에서'란 시를 참 좋아한다. 그런 그의 산문이라해서 기대가 많았다. 기대가 많으면 실망도 큰 법인데, 이책은 나의 그런 기대를 능히 충족시켜 주고 있었다.

산문의 미덕은 그 진실성과 주관의 서술에 있다. 나 스스로 느껴지는 산문의 마력이란 것은 때로 내가 어떤 형체없는 틀로 나를 심어가는 일인 듯도 하다. 그런 경험들속에 자꾸만 생경한 몸짓으로 구체화 되는 것은 그러한 시도들이 단순한 동어반복의 노동이 아니라, 쓸만한 시간적 공간적 사유의 어울림이란 것이다. 그래서 그런 모든 사적 견해들이 파열된 단어들로 다가올 땐 다시 생명을 얻어오는 수레가 되는 것이다. 그 펄떡이는 생명의 마디마디를 움켜쥐고 음미하다보면 우리의 생은 한없이 여유롭고 괜찮은 것이라는 안심이 된다. 아무리 가뿐 현실에 휩쓸려도 잊지 않고 하나하나 새겨가며 자신을 다스릴 호젓한 여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질 거라는 희망말이다. 설령 그것이 해답없는 물음이라도, 닿을 수 없는 꿈이라도 우리는 거기에 설레여 보는 것이다.

산골아이 영미를 광장목욕탕 아줌마들을 윤미를 남경이를... 그렇게 세심한 눈길로 다독일 수 있는 할머니손 같은 푸근함으로 이 한 권의 책은 온전히 나를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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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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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모든 것을 떠나 한사람이 그대로 마음에 와 닿는 경험이 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이성의 사유도 없고, 논리의 기복도 없다. 그저 설명되지 않는 커다란 끌림이 있을 뿐이다.

'전혜린'이란 이름이 내게는 그렇게 온다. 그녀는 내게 전적으로 매력적인 인간으로 각인된다. 그것은 그가 대단한(?) 친일파의 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서도 여전하다. 물론 이 막연한 동경의 대전제는 그가 여성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가 여성의 몸으로 그 시기 머나먼 타국 땅에서 치루어낸 그 가파른 삶의 격정과, 감내할 수 없어 터뜨려 버린 것 같은 때이른 삶의 맺음까지.. 그의 발걸음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꼬집어 생각해보면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리 쉽게 그녀를 내버려두기에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녀는 우리에게 의미가 되어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아버지의 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입학했으나, 돌연 독일로 유학을 하며 펼쳐진 그의 항로는 무척이나 이채롭다. 대개의 위인들이 그렇듯이 막상 살펴보면 무척이나 인간적인 일면들을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만으론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듯 했다. 난 그것이 뭔지 몰랐다. 그저 <생의한가운데> 니나의 말을 인용함으로 그녀는 말해주었던 게 아닐까? '... 산다는 건 그 당시의 나에게 있어서 아는 것, 무섭게 많이 아는 것과 모든 것에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녀는 생에의 비상 그 너머로 과연 무엇을 꿈꾼 것일까? 그녀는 설사 죽었다 하더라도 아무곳에도 머물지 않을 것 같다. 다시 그곳에서 탈출을 꿈꾸고 있지는 않을까? 끊임없는 긴장에의 욕망... 어쩌면 그것이 이제는 침묵속에 일관되는 그녀의 '영원한 생명'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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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생 다인이 작가정신 소설향 23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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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들... 그래서 조금은 싱거운 이야기들... <71년생 다인이>는 마치 동고동락하던 선배들 이야기처럼 내게 낯설지 않다. 불과 몇년전까지 나를 옭아매었던 그 생활의 모든 틀이 그대로 재현된다. 물론 나는 90학번도 수배자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생활들이 아직도 낯설지 않게 96학번의 세대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글쎄....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나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이 '연세대 사태'라 이르는 그 사건.. 그리고 01년도의 한총련출범식- 까지도 이 책은 묘사하고 있다. 그래..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이제까지 후일담 중 가장 신세대 축에 드는 소설이다. 하지만 정말 밥맛이다. 소설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마치 나의 치부를 들켜버린 것 같은 당혹스러움이다. 다시 이 이야기들이 소설로 말해지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옳거니 그르거니... 씹혀대는 게 나는 그저 울화로 치밀어오른다. 대체 그들은.. 우리는 그 시절 무얼 했단 말인가?

얼마전 절필을 선언한 '유시민'씨는 그런 말을 했다. '옛날에 유신시절에 유인물 만들고 을지로 뒷골목에가 화염병 제조하고 반입하고 던지고 할때.. 그거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정말 하기 싫었어요. 하지만 유신때 5공때 그거 조차 안하고 이 시대를 통과하면 너무나도 후회할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하기 싫어도 했거든요..'

글쎄.. 그저 이 이유만으론 부족한가? 더이상 구구절절한 사족을 달아서 무얼한단 말인가? 지금은 유신도 5공도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나는 도리어 묻고 싶어진다. '대체 무엇이 바뀌었단 말인가?' 싸우지 않는 자들은 싸우는 자들을 알 수 없다.

지금 이땅엔 이순간에도 수만의 다인이가 살아가고 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들은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불꽃만 보고도 들불을 상상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을 그들은 정녕 기억하는 걸까? 틀림없이 그들의 가슴 한자리에 덜어낼수 없는 열정으로 틀어박혔을 그 때를 꽃으로 피어내기 위해 역사는 아직도 질척이며 가고 있다. 그 화해를 위해 그대는 지금 어디있는가? 그저 후회하긴 싫어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가? 나는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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