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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때로... 모든 것을 떠나 한사람이 그대로 마음에 와 닿는 경험이 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이성의 사유도 없고, 논리의 기복도 없다. 그저 설명되지 않는 커다란 끌림이 있을 뿐이다.
'전혜린'이란 이름이 내게는 그렇게 온다. 그녀는 내게 전적으로 매력적인 인간으로 각인된다. 그것은 그가 대단한(?) 친일파의 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서도 여전하다. 물론 이 막연한 동경의 대전제는 그가 여성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가 여성의 몸으로 그 시기 머나먼 타국 땅에서 치루어낸 그 가파른 삶의 격정과, 감내할 수 없어 터뜨려 버린 것 같은 때이른 삶의 맺음까지.. 그의 발걸음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꼬집어 생각해보면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리 쉽게 그녀를 내버려두기에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녀는 우리에게 의미가 되어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아버지의 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입학했으나, 돌연 독일로 유학을 하며 펼쳐진 그의 항로는 무척이나 이채롭다. 대개의 위인들이 그렇듯이 막상 살펴보면 무척이나 인간적인 일면들을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만으론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듯 했다. 난 그것이 뭔지 몰랐다. 그저 <생의한가운데> 니나의 말을 인용함으로 그녀는 말해주었던 게 아닐까? '... 산다는 건 그 당시의 나에게 있어서 아는 것, 무섭게 많이 아는 것과 모든 것에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녀는 생에의 비상 그 너머로 과연 무엇을 꿈꾼 것일까? 그녀는 설사 죽었다 하더라도 아무곳에도 머물지 않을 것 같다. 다시 그곳에서 탈출을 꿈꾸고 있지는 않을까? 끊임없는 긴장에의 욕망... 어쩌면 그것이 이제는 침묵속에 일관되는 그녀의 '영원한 생명'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