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평전
최하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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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고 싶다. 싶은 사람이 있다 김수영이 그렇다. 그는 정말 달나라의 장난같다. 나는 '풀'이란 시를 무척 좋아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는 별로 좋아하게 되지 않지만 '풀'만은 예외였다. 언젠가 '젊은이의 양지'라는 드라마에서 종희(전도연 분)가 제 집안에서 '풀'을 소리내어 읊조리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잠시 멍했던 적이 있다. 그 후로 난 '풀'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 시를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거다. '풀은 풀의 비애로서 인간을 헐겁게 한다' 난 이말이 참 맘에 든다.

고등학교때 동아리활동을 하며 김수영과 신동엽을 비교하는 프린트물을 엮은 적이 있다. 사실 그땐 사람으로서의 김수영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시인들을 연구하는 거라 하면서도 참 재미없었다. 그를 다시 알고 나서 그의 시들이 참 좋은 효과로 다가오면서 그가 나에게 무언갈 줄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책을 공교롭게도 '아름다운 집'이란 책과 같은 시기에 읽었다. 어찌보면 우연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나로서는 행운이 된 셈이다. 동시대를 살아간 두 사람... 가장 격정적인 반세기를 혁명적 지식인으로 살다간 두사람... 한명은 언론인으로 한명은 문학인으로 였지만 왠지 두사람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참 다르다는 것. 그건 충분히 흥미있는 비교거리였다.

이책은 크게 두분으로 나누어 보면 전반부는 역사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가는 김수영을 보여준다. 후반부에서는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다. 전반부에서는 주로 1921년 그의 탄생에서부터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그리고 이승만, 장면, 박정희 정권을 아우르는 그의 생애를 인간적인 세세함으로 따라간다. 서울에서 동경으로 다시 만주로 북으로 거제도로.... 이다지도 파란만장한 역사속 삶의 궤적을 인간 김수영으로 잘 응축해내고 있다. 실지로 해방이후 현대사에 대한 구체적 이해... 4.19에 대한 시각과 2공화국의 상황등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눈여겨볼 만한 시각들이 발견된다.

후반부에서는 그가 서울에 다시 안착하면서 등단을 하고, 그의 문학인으로서 그리고 지식인으로서의 활동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우리는 사실 그를 시인으로 알지만,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훌륭한 지식인이었고, 그의 사상들은 수많은 산문들을 통해 신랄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의 시세계또한 예외가 아닌데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는 그의 시와 삶에 대한 태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김수영의 변증법 또한 눈여겨볼만 한다.

이책은 김수영이란 인물에 대한 평전이지만, 그 시기를 가늠하는 좋은 역사서로서도, 김수영에 대한 전기문으로서도, 김수영 작품에 대한 비평서로도, 또는 문학입문서로서도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는 훌륭한 구성이다. 개인적으로는 최하림이라는 지은이의 공이 가장 크다고 본다. 문장자체도 쉽고 유쾌했으며, 상당히 공감가는 표현들, 인식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서 너무 기분이 좋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책에서 나오는 김수영의 작품들은 김수영전집1,2(민음사)에 거의 모두 실려있다. 비교해 가면서 읽었는데 정말 전집에서 그냥 작품으로 읽을때와는 또다른 감흥이 실려왔다. 꼭 같이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1968년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김수영은 갔지만, 그해는 전세계가 혁명의 불길에 사로잡힌 해였다. 이 공교로운 역사의 우연은 어쩌면 그에 대한 애달픔이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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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는 사람의 향기가 난다
노무현과 함께하는 사람들 엮음 / 열음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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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때, 선거운동 시기 나는 개탄을 한 적이 있다. 우리네 대통령선거가 이렇다면, 우리네 국회의원 선거가 이렇다면 학벌이니, 지역연고니, 돈이니, 금품이니, 귀에 떡지가 앉을 만큼 들어온 말들. 그런데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이 사람을 믿으니까, 이 사람들의 열정과 정성들을 믿으니까 이 사람들의 희망에 나도 동참하고 싶으니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로부터 발내딛었던 순간들. 단 한번이라도 이럴 수 있다면 그런데, 그 말도 안되는 희망이 내 눈앞에 보이고 있다.

경북 의성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김현권(39)씨는 서울대 운동권 출신이다. 10년 전 시골로 내려온 뒤로는 서울쪽으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묵묵히 땅만 팠다. 2000년 4월 총선에서 노무현씨가 부산에서 또 떨어지자, 그저 조용히 이름 석자를 가슴에 담아두었다. 그러다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면서 `열병'이 들었다. 국민선거인단 신청서를 받는다고 주변 사람들을 들쑤시더니, 마침내 농삿일은 팽개치고 의성군의 선거인단들을 찾아나섰다. 보름 동안 먼지나는 시골길을 발품팔며 돌아다닌 끝에 선거인단 130여명 중 100여명을 만났다. `노무현 바람'이 표로 굳어지는 순간들이었다. 그는 “`노풍'이 어디에서 불어오나 궁금해했는데, 미쳐서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보고는 `아하, 이게 노풍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번 경선을 통해 노무현 승리를 이끈 견인차는 김씨처럼 자발성과 헌신성으로 무장된 자원봉사자들이었다. 노 후보 진영에서 이들에게 해준 것이라고는 `선거대책위원'이라고 새겨진 명함 몇통 뿐이다. 그래도 고르고 골라 명함을 내준 사람이 300여명이라 한다. 감격스럽지 않은가? 사람이 좋아서 정말 그 사람을 믿어서 제발로 뛰어든 선거전이란다. 그저 그 이유란다. 아직 나는 이런 걸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나는 노무현이 좋다. 사실 나는 이전부터 노무현이 좋았다는 골수팬은 아니다. 오히려, 신선하지만, 결국은 안될거야... 설마 저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겠어? 회의적인 전망만 가득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바보같은 사람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대체 누가 이 사람을 내려주셨단 말인가? 노사모에 가입한 지 며칠 후 전화가 왔다. '내일 서울에서 마지막 경선이 있는데, 함께 가주실 수 있겠어요?'

야학때문에 안되겠다며 다음엔 꼭 참석하겠습니다. 라며 말하고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알 수 있었다. 오늘의 노무현을 있게 한 힘... 꾸준히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그들은 이미 하나였다. 안그래도 자꾸 좋아지는 그사람이. 언론의 한귀퉁이를 부단히 메꾸어갈때, 그 한줄이 한줄이가 또 나를 눈물겹게 설레게 한다.. 대통령 아들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그의 '서민적가족관계' 기사를 보았을 때, 나는 마침내 이 희망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과수원과 벼농사를 주로 하는 둘째 형 건평씨는 “동생이 대통령이 돼도 고향땅에서 소로 늙어 죽겠다”고 말했단다. 소로 늙어 죽겠단다... 하여, 나는 내 사유의 꼭대기에 하느님이고, 부처님이고, 알라신이고 할 것없이 죄다 모셔놓고 기도하는 것이다....'신이이여, 이제 이 희망을 인정하렵니다. 제발 이사람을 이나라의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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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열네 살 선영이에요
김기선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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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80년대 대학가에서 한번쯤 마주쳤을 만한 꼭 그만한 학우였다. '그래, 나는 비로소 살아있다. 투쟁속에서, 이 살아있음의 감격과 해방감을 지켜내기 위해, 나는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혼과 몸을 다해.' 그맘때쯤 누구나 한번 품었을 고민들, 번뇌들을 안고 그는 현장으로 뛰어든다.. 다만 그는 숨죽이지 않았고, 턱까지 숨이 차오르자, 자신의 목숨으로 항거했다.

눈물겨운 건 박선영의 숭고한 죽음이 아니었다. 이땅의 수많은 열사들. 그들과 어깨 겨루자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오히려 우리를 눈물겹게 하는 건 살아남은 자들, 아무런 준비없이 맨몸으로 감당해내야 했던 역사의 무게, 마스크와 치약을 들고 최루탄을 쫓아 다니는 그 어미의 호소력 짙은 삶이었다. 자식이 지 목숨보다 소중한 조국을 남겨두고 갔다고.. 그 약속을 잊지 않겠다고.. 민주화는 안방에서 오는 게 아니라 대가리 하나라도 모타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절규하는 그 어미를 위해 나는 울었다.

자신의 억지주장으로 서울교대에 입학해 그 험한 꼴을 당했다고, 그 완고하기만 하시던 아버지는 전교조 지역대표로, 한겨레신문 후원모임을 이끄는 원로로 곡절많은 세월을 보낸다. 큰언니 화진은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유가협 활동, 동생 추모제를 비롯한 집안 대소사를 치러내며, 큰오빠 종욱은 제대후 곧바로 발령을 받고 전교조활동을 시작하여, 전교조 중앙위원, 고흥지회내 문화 분과대표로 활동하는 중이면서 전남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부자간에 전교조 활동을 하는 최초의 가정이란다. 동생 의석은 미국 신시네티의 한 대학으로 유학을 가기전 남은 8개월 동안 제 누이의 안식을 기릴 '소의재' 건립에 앞장선다.

꽃다운 스물의 혈기로 쓰러져 간 박선영. 그의 죽음은 한 민중의 딸의 죽음이 어떻게 한 가족을 역사의 소용돌이로 휩쓸리게 하는지를 절실히 보여준다. (본문 中 '너는 이렇게 죽었어-아버지'편을 눈여겨 보라. 그리고 그들을 위해 맘껏 울어주길 바란다..) 온가족이 이제는 투사로 전사로 탈바꿈한 이 가정을 지켜보며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씁쓸한 현대사.. 그 비애의 단면을 실감하게 된다. 하여 박선영이란 개인의 투쟁의 일면들을 살펴보는 것보다 그 가족의 현재의 삶을 되짚어 보는 것으로 우린 더 큰 상처를 보듬게 된다.

1997년 가을. 전라남도 구례군 지리산 자락에 박선영 열사 기념관 '소의재'가 건립되었다. 허나 그녀는 거기 있지 않았다. 얼마전 다녀온 광주에서 나는 박선영을 보았다.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구묘역 민중민주열사묘역, 이한열 열사 바로 옆에 박선영은 누워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아무것도 아직은 끝난 게 없다고 그는 부릅뜬 눈으로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박선영처럼 살고자 했다. 정말 그랬다. 나도 그처럼.. '뛰면서', '바쁘게', '고달프게', '아프게' 살고 싶었다. 아직은 진행형이란 게 겨우 위안이 될 뿐 언제나 반성의 자리에선 자신을 힐책하게 된다.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닌데, 난 벌써 저만치서 팔짱끼고 서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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