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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읽기 시작한 지는 좀 됐는데, 다른 거 읽다가 이제서야 다 읽었다. 이제 책을 여러 권 돌려가며 읽는 게 일상이 되었다.
한 마디로 자유시장경제는 이제 다시 생각해야 하고, 국가의 규제나 복지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복지를 해야 계층이동도 활발하고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희망을 품는다는 거다.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게으르게 만드는 게 아니고, 부자에게 증세를 하고 기업을 규제하는 게 결코 그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돈 놓고 돈 먹기 이제 그만하고 제조업과 같은 실물 경제를 되돌아 보자는 얘기고.
하기사 아이슬란드 망하는 거 보고도 금융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간 큰일 나겠지.
시장의 자유는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보는 이의 견해에 따라 달라진다. (21)
이기심은 대부분의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본성 중의 하나이지만, 유일한 본성도 아니고, 많은 경우 인간 행동의 가장 중요한 동기도 아니다. 사실 세상이 경제학 교과서에서 묘사하는 이기심 가득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중략) 세상이 지금처럼 돌아가는 이유는 인간이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믿듯이 전적으로 이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70)
사람들이 자유 시장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완전히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면 기업들, 더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76)
더 중요한 것은 이기적인 개인만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보상과 제재라는 장치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79)
일본과 독일의 문화는 경제 발전과 함께 크게 변했다. 더 규범을 잘 따르고, 계산이 더 치밀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 잘 협력하지 않으면 고도로 조직적인 산업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문화라는 것은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아프리카가 되었든 유럽이 되었든 문화를 경제 저성장의 원인으로 거론하는 것은 잘못이다. (168-169)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그런 세상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224)
한 나라의 번영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교육 수준이 아니라 생산성 높은 산업 활동에 개인들을 조직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사회 전체의 능력이다. (238)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원 개인의 교육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각 개인을 잘 아울러서 높은 생산성을 지닌 집단으로 조직화할 수 있느냐에 있다. (250)
많은 수의 규제들이 기업 모두가 사용하는 공유 자원을 보존하고, 장기적으로 산업 부문 전체의 집단적 생산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기업 활동을 장려하는 기능을 한다. (262)
우리가 시장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소금이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소금만 먹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275)
차를 빨리 몰 수 있는 것은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가 없다면 아무리 능숙한 운전자라도 심각한 사고를 낼까 두려워 시속 40~50킬로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실업이 자기 인생을 망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300)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어디든 재빨리 옮겨갈 수 있는 바로 이 효율성 때문에 금융이 경제의 다른 부문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314)
단기적인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전체 시스템을 파괴하게 될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332)
'물건 만들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334)
이런 글들을 보면 이 책은 단순히 경제 실용서라기보다는 경제 철학을 바탕으로 국제 정치학까지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업이나 무역에 대한 규제의 긍정과 그 순기능을 말하는 부분은 자유시장경제에 망조가 든 요즘 매우 적절한 주장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도 새겨들을 만하다. 특히 심각한 고용불안으로 인해 청년들이 직업적 안정이 보장된 의사나 법률가 같은 직업을 크게 선호한다는 분석은 아주 날카로웠다.
심심하고 조금 지루해지는 듯할 때마다 적절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비유들이 나와서 생소한 분야의 책이지만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