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 키스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3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노블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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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3번째 이야기를 드디어 만났다. 1권, 2권에 이어, 내심 학수고대했던 이야기 <섀도키스>였다. 최근 들어 뱀파이어 로맨스소설의 매력에 흠뻑 취했다. 사랑에 빠진 로즈와 디미트리처럼 거부할 수 없는 호기심이 압도당한 휴일, 솔직히 한가로운 주말에 순전히 재미 위주의 책에 빠져 정신없는 스스로를 나무라기도 하였다. 좀 더 생산적인 일로 주말을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다는 나름의 타산적 이성이, <섀도키스>가 주는 넘치는 활력, 유쾌한 마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하였다. 영혼을 잃고 악마 본성에 사로잡힌 스트리고이의 공격에 천방지축,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로즈의 이야기를 방패삼아 위로하며, <섀도키스>에 홀딱 빠졌다. 매순간 순간 나는 로즈가 되었고, 함께 울고, 아파하고 분노하고 사랑에 빠졌다.

 

<섀도키스>는 리사의 영적마법을 악용하려 했던 빅토르의 재판이 전개되고 스트리고이에게 붙잡혔던 사건 이후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로즈에게 유령이 된 메이슨이 나타나며 혼란과 불안에 빠뜨린다. 그리고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모로이 수호인으로서 마지막 관문인 실전 훈련 기간에 일련의 사건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마법 보호막에 의해 철옹성 같던 성 블라디미르 아카데미는 스트리고이의 공격이라는 전무후무한 일대 대사건이 벌어졌다.


훈련 기간 동안, 리사의 수호인이 아닌 리사의 연인 크리스티안의 수호를 맡게 된 불만과 여왕의 음흉한 계획, 마법 사용을 둘러싼 왕족 내 비밀 모임, 로즈를 둘러싼 우울하고 어두운 아우라의 실체 등 여러 사건들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서서히 변화의 움직임이 일면서 스트리고이와의 대반격은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쳤다. 여러 사건들이 서로 맞물려 이야기는 더욱 입체적이고 풍성해졌다. 복선과 복선이 더해지면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에 호기심을 키웠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씩 풀어가는 로즈의 이야기는 다시 떠올려 봐도 여전히 흥미롭다.

또한 두려움, 슬픔, 분노, 우울감, 무력감, 혼란 등의 감정에 휩쌓일 때, 마음을 열고 타인에게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그 안에 도사리는 분노 등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우정, 사랑의 힘이 시선을 끌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자제력을 발휘하는 놀라운 힘의 실체가 바로 사랑이었다.

 

여러 갈등들이 그 어느 때보다 인상적이었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갈등, 주어진 책무와 욕망 사이의 갈등, 마법 사용을 둘러싼 세대간, 계파간의 갈등, 전통 고수와 변화에의 갈망이 적절하게 융햡되어, 흥미진진한 뱀파이어 소설이면서, 뜨겁고 눈물겨운 로맨스소설이었다.
또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오늘을 읽는 매력이 다분한 책이었다.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왕족들은 기존의 우리 사회의 기득권들의 모습처럼 비춰졌고, 자신의 주어진 책무에 대해 아무런 의문이나 저항없이 운명처럼 받아드렸던 로즈가 겪게 된 내적 갈등은 나 마음에 있는 갈등과 모순 속으로 휩쓸리기에 충분하였다.

 

앞으로 전개될 로즈의 모험, 그리고 서서히 드러날 여왕의 음모와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갇힌 빅토르의 음모는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사뭇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감에 들뜨게 한다.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블러드 프롬이즈>,<스피릿 바운드>, <라스트 새크리피스>의 출간 소식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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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포네의 수상한 빨래방
제니퍼 촐덴코 지음, 김영욱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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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알 카포네가 알카트라즈에서 빨래를 해줬다는 상황이 일단 호기심을 부채질한다. 알 카포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아주아주 악명 높은 갱스터란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어느 책(<알 카포네> 루치아노 이오리초 , 2006) 소개를 보니, 알 카포네를 '공공의 적이자 대중의 영웅이었던 갱스터'라 소개하고 있다. 대중의 영웅이라~ 암흑가의 대부인 알 카포네, 1920년대 미국 하층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이었던 그가 빨래를 해 준다! 그리고 특별한 이웃을 소개하겠다는 당찬 소년의 성장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미국의 중범죄자가 수용되었던 바다 위의 작은 돌섬, 알 카포네가 수용된 알카트라즈로 온 가족과 함께 이사 온 한 소년 무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성장할 지 주인공의 모습이 일단 시선을 끌었다. 또한 ‘형무소’만으로 확대되었던 영화 속 여러 장면과 달리, 민간인(물론 형무소와 관련한 가족들이 대부분이겠지만)이 거주하고, 그 속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형무소 주변을 탐험(?)하는 상황이 아이들의 호기심과 더불어 커져갔다.

 

당돌하기 짝이 없는 소장의 딸 ‘파이퍼’와 무스의 신경전(때론 질투도 엿보이지만)이 다른 모든 상황들을 잊게 하며, 유쾌하게 그려진다. 알 카포네가 빨래를 해 준다며 죄수들이 세탁하는 빨랫감을 모우는 아이들, 아무래도 파이퍼의 전략에 나또한 맥없이 호기심에 눈이 멀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하다.

 

내심 책을 읽으며 저자의 내심을 궁금해진다. 알카트라즈를 배경으로 한 소년의 유쾌한 성장 과정엔 알 카포네는 등장하지 않았다. 공공의 적이지만 대중의 영웅으로서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뿐, 얼마 남지 않은 분량을 생각하면 제목이 낚인 것은 아닌지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허접한 상상은 금물이다.

이곳은 알카트라즈다!

회색빛 도시 삭막한 현실의 축소판 속에서 아이들이 유쾌함을 선사한다. 딱 고만한 나이에 있을 법한 고민과 갈등이 눈과 마음을 부드럽게, 포근하게 감싸준다. 때론 105 죄수로 인한 긴장, 불안에 마음이 조마조마하는 등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스릴과 즐거움이 만끽하였다.

또한 자폐를 앓는 누이 ‘나탈리’로 인해 엄마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무스와 나탈리의 입학 문제가 온 가족의 현안이 된 상황에서 가족의 사랑과 헌신이 절묘하게 녹아있다.

 

우여곡절 끝에 조금씩 성장하는 무스를 통해 가볍게만 여겨졌던 이야기가 의미 심장한 이야기를 품으며 시나브로 가슴을 촉촉하게 젖힌다. 누이를 향한 무스의 내적 갈등과 그에 비례하는 끝없는 애정이 일구어낸 놀라운 결과를 직접 확인해보시길~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서 반드시 뭐든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앗다.

그 순간, 엄마도 바로 이런 기분일 거라는, 아니, 항상 이런 기분으로 살아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해도 기꺼이 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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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정도전 1 - 하늘을 버리고 백성을 택하다 정도전 1
이수광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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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정도전>‘하늘을 버리고 백성을 택하다’라는 부제가 눈에 띄었다.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정도전’과는 사뭇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과연 역성혁명에 찬성했던 급진 개혁파인 그는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을지, 故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수백 년 내 최고의 업적자로 본다”라고 칭한 인물 정도전을 전혀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최근 새롭게 알게 된 ‘정도전’은 의문투성이었다. 단순히 소수파 신진 사대부로, 이성계를 도와 역성혁명을 이뤄낸 조선개국 일등공신, 그리고 이방원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인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고려 말, 왕조가 뒤바뀌는 혼란의 시기에 ‘조선’의 기틀을 다지고, 6백 년 도읍지 ‘한양’을 설계한 인물로서 ‘정도전’을 새로웠다. 특히, 국왕 중심의 나라 조선에서 ‘재상 중심’의 정치를 주장하였다는 것은 뭔가 의아했다. 가당키나 한 말인가! 왕은 모든 권력의 핵심이며 왕에게 집중된 시대, 강력한 왕의 필요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도전의 주장은 위험천만한 역심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혼란의 시대에 맞서 ‘정도전’이 품었던 생각, 어떤 연유로 그와 같은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 직접 엿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소설 <정도전>은 바로 내가 품었던 의문에서 출발하였다.「조선경국전」을 통해 재상 중심의 정치사상을 피력하고, 그것이 백성을 위한 민본정치라 여기며 그것을 조선이란 나라에서 실현하길 꿈꾸었던 인물, ‘정도전’과 이방원, 하륜과의 깊은 갈등으로 이야기는 시작하였다. 서로가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고려 말 ‘공민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탄에 빠진 백성과 호의호식하는 위정자들의 삶의 극명한 대립 속 ‘정도전’의 성장 과정을 이야기한다. 정몽주, 이숭인, 하륜과 함께 이색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하던 시절, 2차 홍건전의 난이 있기 전 비웃음을 사며 피난가는 일화, 가난과 유배 생활 등 굴곡진 그의 정치 입문기(?)를 담고 있다. 그 속에서 그이 꿈이 좀 더 구체화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문득, 왜 정도전이 이 시대 화두로 떠오른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대통령 중심의 권력이 편중되고 빈부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며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오늘날, ‘정도전의 신념과 꿈을 통해 백성이 등 따습고 배부른 세상에 대한 어떤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정도전 下>을 통해 다시 한 번 주어진 화두를 고민하고, 지난 역사를 통해 혜안과 지혜를 얻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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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1
김탁환.정재승 지음, 김한민 그림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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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가 몸을 섞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어린 시절 흥미롭게 보았던 외화 ‘6백만불의 사나이’였다. 하지만 김탁환과 정재승의 만난 아니던가! 좀더 기발하고 참신한, 더욱더 획기적인 이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기상천외한 2049년의 서울, 그곳의 풍경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눈먼 시계공>이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훌쩍 떠나보면 어떨까! 그렇게 올 여름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싶었다. 책이 풀어낸 이야기에 빠져 온갖 시름을 잊을만했다. 물론 이야기가 제기하는 다른 문제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지만, 그 어떤 놀이보다 즐거운 유희였다.

 

이미 신문연재를 통해 드문드문 접한 적이 있던 <눈먼 시계공>, 내심 다음의 책 출간을 기다렸던 마음과 달리, 두 손 위에 올리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전체적인 책의 외적 분위기가 그다지 호의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경계의 눈빛으로 멀리했던 것이 책을 펼쳐든 순간, 내친걸음을 재촉하고, 쉼 없이 달리게 하였다. 굉장한 흡입력에 압도당했다. 사건들과 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바로 그다지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이라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된 세계가 낯설면서 상상력의 언저리를 자극하며, 긴장의 연속이었다.

 

시체의 단기 기억을 영상으로 재생하는 획기적인 기술 ‘시트머스’를 이용하는 특수 수사대와 뇌를 탈취한 살인사건 그리고 로봇을 위한 방송국 ‘보노보’ 그리고 로봇들의 격투기 대회를 둘러싼 음모가 과연 무엇일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무법자로 대표되는 제노사이보고의 존재, 그리고 자연인 희망 연대로 대표되는 자연인과의 갈증 그리고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꿈꾸는 미래 사회의 모습이 오늘의 또 다른 모습을 반추하고 있었다. ‘나라’의 경계가 허물어진 미래사회, 그 속에서 우뚝 선 서울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사고 등의 설정은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보다 새롭게, 다채롭게 다가왔다.

인공 생체가 70%를 넘어서면 ‘인권’을 박탈당하는 상황, 인간과 로봇의 사랑, 거꾸로 오늘이 역사가 되어 미래의 시선으로 뒤돌아볼 때, 오늘의 다시금 돌아보면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가 수없이 떠오르며, 많은 이미지가 겹쳐지기도 하였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과연 이상적 세계에 대한 환상일지 의문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눈먼 시계공 2>을 기대해본다. 1권에서 풀어놓은 사건들과 수없이 머릿속을 헤집었던 의문들이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일단 펼쳐볼 일이다.

 

 

모든 열정은 집착을 동반하지만 모든 집착이 열정인 것은 아니다!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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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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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읽은 <컨설턴트>를 통해 비로소 제기된 화두 '나비의 날갯짓‘을 또다른 이야기로 내게 묻고 있었다. 과연 나는 무심한 나비의 날갯짓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것일까?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였다.

 

전직 종군기자였던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파울케스’와 그를 죽이겠다며 찾아온 병사 ‘마르코비츠’ 과연 어떤 사건이 이들의 운명을 얽혀버리게 하였을지, 그 내막을 알고 싶다는 강한 호기심이 이 책을 이끌어주었다. 하지만 포로 수용소의 생활, 아내와 아들의 죽음 등 전쟁이 한 병사에게 가져온 기구한 운명 속이 슬픔과 증오가 너무도 담담하고 건조하게 그려지고 있어, 더욱 전쟁의 참상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 장의 사진 속의 그 어떤 이미지보다 더욱 초점을 잃은 텅 빈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는 듯 한 착각으로 몸서리가 쳐졌다. 또한 알 수 없는 헛헛함이 빈 가슴을 가득 매웠다.

 

우연과 필연 그 사이 찰나의 선택이 ‘사진’을 찍는 행위로 구체화되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사실이 그리고 사진의 한 프레임 속에 갇히는 어떤 현상 또한 끊임없이 찍는 순간의 선택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이는 또다시 이미지에 갇히지 말고, 그 이미지 너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전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존재’ 사실마저 망각하는 우리를 만날 수 있었다. 벽화 속 잔혹함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전쟁’보다는 ‘평화’에 익숙한 듯 망각하고 살아가는 ‘전쟁’이 참상을 몸소 겪지 않은 전후세대인 우리가 갖는 두려움과 같았다.

 

지나치게 차분하고 진진하다. 그리고 두려울 정도로 무심하고 냉정하다. 현실의 잔혹함에 질려 이젠 무감각해진,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너무도 냉철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 아니 혼란스럽기만 한 숱한 상념들이 떠도는 듯,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의 이야기는 ‘혼돈’ 그 자체였다. 단지 전쟁의 참상을 지켜보고 기록하는 행위,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가 ‘나비의 날갯짓’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사진을 찍은 파울케스에게 따르는 책임일까? 과연 책임을 묻을 수 있을까? 또한 그 행위만으로도 소극적 공모로 살인을 저지를 것과 같은 것일까? 하는 의문들이 책을 읽는 내내 반복되었다. 결국, 화가 스스로 ‘사진 찍는 행위와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실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듯하다. 그 책임은 결국 세상엔 무죄가 없는 거라는, 무죄인 사람도 없다는 병사의 말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책이 이끄는 대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들은 될 수 있으면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까? 세 명의 주인공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어, 흐름이 많이 끊기기도 하고, ‘나’를 그들과 나란히 마주하며 대화 속에 끼어들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럽고, 어렵다. 그럼에도 요즘 읽었던 책 속 ‘나비의 날갯짓’ 그리고 세상에 있다는 그 보이는 않는 그물망의 실체를 느끼며 외면해 왔던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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