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울지 마!
노경실 지음 / 홍익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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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바로 지난 해 <열네 살이 어때서?>란 책을 통해 만났는데, 그 책을 함께 읽은 어린 동생은 참 즐겁고 재미있게 읽었다며 기분 좋은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청소년 문학’인만큼 어린 동생의 마음을 잘 읽어내며, 여자 아이의 감성을 잘 보듬어줄 것 같은 기대 때문에 딱 고만한 어린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그녀가 풀어낸 또 다른 이야기 <열일곱, 울지마>을 만났다.

 

‘열일곱’을 제목으로 한 책을 정리하다가 만난, 최근 출간된 <열일곱, 울지마>는 제목부터 수많은 이 땅의 열일곱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것 같은 인상을 받았고, 그들에게 ‘으샤으샤’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느낌도 함께 받았다.

그런데 열일곱 살 미혼모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말에 깜짝 놀라며, 과연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하고 호기심이 마구마구 솟았다. 과연 10대 청소년들의 성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읽어내 그것을 풀어주고 응원해줄지 기대되었고, 그만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동생이 좋아할 책이란 생각에 마음이 들썩거리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열일곱이 된 ‘무이’는 서로 전혀 다른 환경을 가진 친구 ‘수경’과 단짝이다. 전형적인 모범생인 ‘무이’는 동생 셋을 거느리고 부적이며 사는 수경이 부러워할 정도로,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환경에 행복할 것 같지만, 나름 예민하고 여린 친구다. 하지만 나름대로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려고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에 빠진다. 그리고 마음을 추스르고 학업에 매진할 무렵,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느낀다. 무이의 마음을 읽는 동안 그 어린 친구의 걱정과 두려움이 오롯이 느껴졌다. 무이의 내적 갈등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져, 정말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 그 자체를 보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미혼모라는 소재는 앞으로 뻔히 전개될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두렵고 떨려왔다. 무이의 마음의 두려움을 함께 느끼며,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수경이란 든든한 친구가 있어 다행스럽지만 과연 무이는 어떤 선택을 내릴지, 그녀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게 될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응원하고 그 다치고 찢긴 마음을 어떻게 보듬어야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부모이고 어른일까? 아이들과 충분히 교감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무이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저런 의문들이 튀어나왔다. 지나친 걱정과 우려로 아이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달되면서 오히려 갈등이 깊어지고 소통이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렇게 어른이라는 견고한 성에서 아이들을 제단하기만 바쁘지는 않았는지 자기 점검의 시간이기도 하였다.

 

청소년,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잊혀져가는 유년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나며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새롭게 짝꿍이 된 친구가 소위 불량청소년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무이의 엄마처럼 ‘친구 잘 사귀여 한다.’, ‘나쁜 친구들에 물들면 안 된다.’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따갑게 들었던 소심한 나는 겁을 먹은 적이 있었다. 무이처럼 경계하고 스스로 움츠러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내심 부끄러워지기도 하였다.

 

<열일곱, 울지마!>는 청소년들의 우정과 갈등, 사랑, 고민 등을 아주 예리하게 때론 솔직담백하게 그리고 있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럼 중간고사가 끝나고, 동생을 만나게 될 텐데, 과연 동생은 어떻게 읽게 될지 궁금해 진다. 하지만 이제 내 몫은 우리 어린 친구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노경실’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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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열일곱
한창욱 지음 / 예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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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멋지다 열일곱>에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열일곱 살이 된 동생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늦은 시간까지 야자를 해야 하는 상황에 힘들어했다. 급격한 환경변화와 함께 아직 적응되지 못한 몸과 마음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3년을 이렇게 보내야 한다면 지친 표정이었다. 그렇다. 앞으로 3년의 시간이 남아있다. 그런데 어떤 격려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 밖으로 나오려는 소리는 그렇고 그런 말일 뿐이었다. 어떤 힘도 되지 못해 오히려 침묵을 하게 된 꼴이 되어버렸다. 동생의 마음을 헤아리고 진정어린 위로와 격려를 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고 부끄럽기까지했다. 그런데 <멋지다 열일곱>이 제 때에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동생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바로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 입 밖으로 나오려했던, 진부한 이야기나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닌, 그 어떤 목소리보다 힘이 넘치고 생생하고, 의지가 되고 진실하였다. 어찌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저 적당히 알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 앎을 삶에서 실천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꿈을 이루기 위해 제시된 일곱 가지 미션을 실천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바로 동생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꿈을 잃은 채, 방황하던 주인공 재하의 어느새 꿈을 향해 날개를 활짝 펼친 것이다.

자신이 처한 여러 상황들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방황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학창 시절, 자신을 만나고 우리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바로 오늘의 열일곱의 얼굴들이었다. 소년가장이 되어 어린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일을 하는 친구 ‘창수’, 꼴찌에서 전교 1등으로 거듭난 태훈, 재하를 이끌어주는 똑똑하고 당찬 친구 다연, 하지만 그녀 역시 부모의 이혼으로 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무척 에너지가 넘친다. 열일곱은 그 어떤 시간보다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열정을 갖고 뛰어갈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라고 할까! 그 진실을 자각하고 확신할 수 있는, 자신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무림의 비서(秘書)'일지도 모르겠다. 그 드넓은 바다에서 ‘북극성’에 의지해 향해하던 옛 선원들처럼 이 책의 메시지가 동생에게 북극성과도 같을 것이라는 확신이 나를 행복하게 하였다. 탁월했던 나의 선택에 흡족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어린 친구들이 많았다.

 

성장소설, 청소년소설이라는 옷을 입은 꽤나 괜찮은 자기 계발서의 느낌도 강하다. 특히 드림레이서를 위한 일곱 가지 미션, 그리고 그 상황들의 설정은 기존의 자기 계발서의 또 다른 변형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옷을 입었기에, 메시지는 강렬하게 아이들의 심장을 타닥타닥 뛰게 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일대기를 적어보면서 자신의 꿈과 미래를 설정한다. 그리고 인생의 마라톤을 위한 중단기 계획을 세우고, 그 꿈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위한 파워지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가장 힘들지만, 가장 중요한 ‘시간관리’, 그리고 인맥을 쌓는다. 요즘 회자되는 인맥으로 폄하하지 말자. 진실한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주인공과 그 친구들의 우정에 주목하자. 무한 경쟁 속에서 자신만 혼자 앞서겠다면 달려가지 않는다. 태훈과 다연이 재하를 이끌고, 창수을 이끈 그들의 우정, 서로가 서로를 당겨주고 끌어주는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진정한 ‘인맥’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오늘날 변질된 인맥 쌓기와 활용 방안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공, 꿈 역시 행복을 위한 하나의 조건임을 명심하며, 교양을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교양을 통해 더욱 풍성하고 풍요로운 마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마지막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라고 당부한다. 미래형 인재가 되기 위한 통찰력과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생각하는 힘은 바로 우리 모두의 또다른 화두가 아닐까?

 

최근 카이스트의 일련의 자살로 인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그런데 무한경쟁의 논리로 내몰고 있는 우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 한 권이 책은 동생에게 힘을 주기 위해 펼쳐들었지만, 실제로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듯하다. 불확실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선택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성취감, 자존감을 굳건히 쌓긴 위한 지혜가 숨어 있다. 그리고 일일곱 친구들, 청소년들에게 반전이 되어줄 책이다. "정말 멋지다! 열일곱!" 이렇게 외쳐 주고 싶다. 끊임없이 응원하고 싶다.

 

 

 

재하의 힘찬 모습에서 열정, 꿈, 성취의 기쁨이 오롯이 전해진다. 

직접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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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주
한소진 지음 / 해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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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주? 누구지? 정말 너무도 낯선 존재였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둘째딸이란다. ‘훈민정음 창제 뒤에 감춰진 한 송이 꽃’이라는 부제로 호기심이 봄 새싹처럼 마구마구 피어올랐다. 과연 어떤 존재일까? 과연 훈민정음 창제에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온몸이 들썩거렸다.

 

<선덕여왕>으로 만났던 저자 ‘한소진’, 우리 역사 속 뛰어난 ‘여성’ 인물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러 넣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작가로 기억한다. 그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목소리에도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저자는 말한다. ‘큰 글’이란 뜻의 한글이 왜 ‘암클’이라면 멸시, 홀대를 받아야 했을까? 그에 대한 의문은 ‘정의공주’라는 인물에 주목하게 된 열쇠였다고. 유교 사회에서 한 여성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다는 것에 대한 방증일 것이라며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였다.

 

또한, 최근 이정명의 <뿌리 깊은 나무>(밀리언하우스)가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벌써부터 기대되고 설레는 이유는 바로 한글창제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아무런 정보 없이 읽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저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으로만 학습하듯 기억했지 한글의 우수성에 크게 스스로 공감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 흐릿해진 기억에 다시금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한글창제’와 관련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김다은‘의 <훈민정음의 비밀>(부제, 세자빈 봉씨 살인사건, 생각의 나무)은 2008년에 한글날 즈음에서 발간된 책을 역시 만난 적이 있다. 세자빈 봉씨 살인사건이란 부제와 훈민정음이 비밀이란 코드는 절묘한 구성으로 정신없이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또 다른 ‘한글창제’의 숨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를, 작가들의 상상력에 기대어 끊임없이 한글의 우수성과 가치를 몸으로 체득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는.

그렇게 또다시 한글창제 속 숨겨진 이야기를 만났다.




‘정의공주’라는 새로운 역사 속 인물을 만났다. 여성의 시각에서 유교라는 틀에 갇힌 한 나라의 공주의 삶을 엿보았다. 공주 이전에 여자였기에 애증과 고뇌하였고, 한 나라의 공주로써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어진 사람이었다. 역사 속에서 공주를 주인공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기에 더 강렬하게 매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의 삶을 오롯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숨은 내공이 빛을 발하면서 정의공주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하다. 최근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면서도 그 역사적 사건, 연결고리를 많이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역사’ 속에 감춰진 수많은 이야기가 시각에 따라 얼마나 새롭게 재창조될 수 있는지 새삼 놀랐다.

 

세종대왕을 비롯한 세자 향, 그리고 정의공주에 수양, 안평대군에 이르기까지 가족이 한 마음이 되어 비밀리에 한글을 창제하고, 백성들 속에 명맥을 유지해왔던 ‘가림토 문자’의 복원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역사의 이면에 감춰진 많은 이야기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한글 창제의 우여곡절, 그 힘겨운 과정을 함께 하다 보니, 한글에 대한 마음자세가 또한 달라진다. 무의식적으로, 무관심 속에서 한글이 얼마나 오염되는지, 우리 스스로 한글을 하찮게 여기며 옛 선인들이 중화사상에 함몰되었든 우리는 또 다른 이름의 굴레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다.




그 외에도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 핵심을 바로 우리 것, 우리 문화, 우리의 정신에 과한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 ‘우리’라는 정체성을 홀대하고 벗어던지기 바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묻게 되는 성찰의 시간이 될 것이다.

다시금 한글에 대한 사랑이 꽃을 피우려 움트려고 한다. 그 창연한 빛이 오래도록 우리 가슴 속에서 삶의 뿌리이자 희망, 열매가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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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아 공주 - 現 SBS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가 선사하는 새콤달콤한 이야기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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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아 공주, 한마디로 무척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있는 단편소설집이다. 5가지의 이야기는 마치 롤러코스트는 타듯 때론 신나고, 아찔하고, 그리고 마지막엔 안도와 함께 시원함을 느꼈다고 할까? 극한을 오가며 그 속에서 하늘을 날 듯 자유롭다가도 애절한 갈망에 허우적대기도 하였다. 섬뜩하고 오싹한 이야기에 몸서리치면서도 호기심에 좀처럼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고, 어느새 나근나근, 봄 햇살처럼 따사로운 사랑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카시오페아 공주, 정말 독특하다. 시종일관 경계의 눈빛이 되었다가, 홀딱 빠졌다. 이 책을 읽고 ‘사랑의 감정에 자극’받길 바란다는 저자의 바람은 분명 이루어진 듯하다. 너무 생생하게 그려지는 끔찍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극과 극은 오히려 통한다고 했던가! <좋은 사람>의 이야기 속, 연쇄살인의 잔혹한 범죄 현장은 마치 영화 ‘올드보이’의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온몸이 핏줄이 바싹 돋는 듯하지만, 어느새 주인공의 가슴 속에 사랑이 찾아드는 것, 모든 오해가 풀리고 진실이 드러나면서 해피엔딩의 이야기는 봄 새싹처럼 희망과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섬집 아기> 지금도 가끔씩 흥얼거리는 동요 속 애잔함이 느껴지면서도 예상 밖의 처절한 복수, 그 기이한 반전에 깜짝 놀랐다. 앞선 <카시오페아 공주>의 복수와 용서, 사랑의 에너지가 어느새 애절한 복수로 끝을 맺으면서 그 놀라움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손끝이 바들바들 떨리면서도 죽은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니, 잔혹하고 기괴한 이야기도 어느새 처연하게 다가온다. 어릴 적, 무서움에 떨면서도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대던 이불 속 풍경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였다.

 

<좋은 사람>과 <섬집 아기>는 강간, 살인들의 끔찍한 강력 범죄가 소재이다.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사건사고들로 넘치는 오늘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다소 먼 거리에서 바라보게 된다. 천인공노할 일이라면 분노하지만, 금세 잊혀지는 것처럼, 그 순간의 분노, 증오와 공포, 불안은 타인의 일에 불과하였다. 그렇게 다소 먼지를 털어내듯, 가볍게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만끽하는 것으로 기분을 달랬다.

하지만 <카시오페아 공주>와 <레몬> 마지막의 <중독자 키스>는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 그 자체였다. 너무 크게 공감했던 것이 우려스러울 정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들, 그들의 고통의 시간 속에서 바로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현실의 짐이 버겁고, 사랑의 감정에 무관심했던 스스로를 뒤돌아볼 수 있었다. ‘사랑’ 참으로 낯선 존재가 가슴 속에서 되살아났다. 꺼져가는 불씨인 줄 알았는데, 간절하게 그립고 소원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주제로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며 우리의 현실을 위로해주는 듯하다.

 

외계인의 등장 같은 황당함은 ‘이 넓은 우주에 오직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는 말처럼 어렴풋이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이리저리 저울질을 하였다. 또한 증오를 품기는 쉬어도, 그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말은 하는 이 순간도 왜 이처럼 공허할까? 과연 나는 ‘용서’를 말할 수 있을까? 용서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용서를 말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오랜 시간 가슴 속 비수가 되어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어찌 ‘용서’라는 말은 쉽게 던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벌을 청하는 그에게 쉽게 돌을 던질 수 없는 것이 또 사람이었다. 진정으로 용서할 순 없어도, ‘용서’로 가장해야 했다. <카시오페아 공주>는 이렇게 많은 상념이 스치는 가운데 마음을 포근해지며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머물게 한다.

 

어찌 보면 5개의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하나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증오와 복수, 상실과 절망 속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인 듯하다. 때론 극렬하게, 때론 잔잔하게 사랑이 찾아든다. 처음엔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그렇고 그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탄탄한 구성에 매료되었고, 그 잔혹함 속에서도 ‘사랑’의 감성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것은 너무나도 따뜻한 휴머니즘에 빠지게 한다. 사랑을 꿈꾸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자체다.

 

그의 다른 작품들이 기대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당연한 일인 듯하다. 최근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이라는 신간 소식을 들었다. 바로 ‘이재익’의 작품이라 기대되고 설렌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어서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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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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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의 저자 ‘오가와 이토’를 잊을 수 없었다. 그 달팽이 식당의 풍경, 그 따듯하고 포근한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해, 그녀의 신작 <초초난난>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직접 만나보고 그녀가 풀어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잔잔한 여운, 행복감이 가슴을 벅차게 하였다.

 

초초난난,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이란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은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단어, 표현들로 묘사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 정겨운 속삭임에 가슴이 들뜨고 잔잔한 미소가 입가에 머문다. 마음속이 환한 봄빛들로 한 가득이다. 그래서 소설 속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시오리’의 사랑과 가족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모습들은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다. 특정 사건의 전개라든가, 예상치 못한 반전 등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살포지 안아주는 포근함’이 있어 ‘행복’에 절로 물드는 느낌 그 자체이다. 최근 빠른 전개와 격정적(?)인 이야기 전개에 빠져 있다가 나름 속삭이는 듯이 잔잔한 이야기에 크게 동요되는 느낌이다. 뭐랄까? 최근 막장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착한 드라마에 깊이 매료되며 흥분하게 된 듯하다. 아니면 ‘빨리빨리’를 외치다 ‘느림의 미학’에 아주 자연스럽게 젖어든 듯하다.

미닫이문을 들어서는 낯선 사내의 등장 그리고 조심스럽게 꽃을 피우는 사랑, 그런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일명 ‘불륜’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결코 ‘불륜’스럽지 않았다. 주인공 ‘시오리’의 일상 속 그녀의 마음속을 들락거리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조심스럽고 정갈함에 매료된 듯하다. 오히려 참으로 맑고 순수함이 느껴져 마음이 한없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사랑의 설렘, 조심스러움, 풋풋함, 그리고 격정을 아주 조심스럽고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읽는 기쁨은 배가 되었다. 읽는 내내 수시로 나를 사로잡는 문장, 문구들에 한없이 나는 나긋나긋, 말랑말랑해졌다. ‘가슴속이 꽃봉오리고 가득 차오르는 것 같’고 ‘마음속에는 꽃이 피’고, ‘마음이 춤을 추’고 ‘심장이 쿵쿵 떨어져 내릴 것 같고’, ‘눈 녹은 물은 한층 더 따뜻한 온천수처럼 변해 내 몸속에서 찰랑찰랑 넘실’거리는 그 마음들이 왠지 시오리가 된 듯, 착각에 빠져 내 마음속도 꽃이 활짝 피어오르고 행복이 번지는 듯하였다.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맛있는 것은 같이 먹는 상황을 그려본다. 소설 속에서는 끊임없이 먹는 상황이 전개된다. 이웃집 한 아주머니는 항상 먹을 것을 챙겨 찾아오고 이웃집 할아버지와의 데이트도 맛집 데이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항상 먹을 것은 챙기는 그 마음들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깃들어 있다고 할까? 함께 무엇인가를 먹는 행위, 그러고 보면 ‘식구’라는 단어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금 둘러본다. 어떤 남녀 간의 애정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함께 나누어 먹는 기쁨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는 과연 그렇게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만끽하는지,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떼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행복이 넘실거려 오히려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다시 또 말한다. 정말이지 행복감에 푹 빠져들었다. ‘행복한 소설’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기대 이상으로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하네’라며 연신 속삭이는 시간이었다. 왜 그리도 행복했던 것인지 ‘시오리’를 다시금 만나보고 싶다.

 

아무래도 ‘요시모토 바나나’에 이어 앞으로 지켜보며 기대하게 될 작가가 ‘오가와 이토’인 듯하다. 이미 <패밀리 트리>가 출간 예정이니, 하루 빨리 만날 수 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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