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올레 스피릿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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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1박2일’을 통해 접하고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바로 ‘올레’였다. 물론 항상 떠나고픈 욕망을 자극하지만 올레는 그중 단연 으뜸이다. 여전히 제대로 발걸음을 한 적 없는 방콕주의, 귀차니즘인 나! 동행할 친구와 ‘올레’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였지만 실행하지 못한 채, 그저 주저하며 머뭇거림은 지금까지 여전하다. 그럼에도 ‘올레’에 대한 희망, 열망을 놓을 수가 없어 늘 여행 계획 일순위! 그렇게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을 손에 쥐었다. 최근에 읽은 어느 책에서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을 소개하며 시절인연이 무섭게 다가왔다. 그렇게 책꼬리를 쫓아 올레의 숨결을 느껴보았다.



 

솔직히 ‘길 내는 여자 서명숙’에 대해서도 전혀 무지했다. 올레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열정이 숨어있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있던 길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 발자취를 오롯이 느끼다보니, 두려움에 갇혀 옴짝달싹 못했던 내게, 아직도 세상 밖으로 다가설 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책 속 올레정신은 주먹을 불끈 쥘 정도로 강한 힘을 주었다. 에너지가 제주도의 푸른 바다처럼 넘실거린다. ‘아~ 좋다!’ 이 말 한마디의 탄성이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에 대한 사견을 대신한다. 다른 말을 사족일 뿐!



 

우리집 2돌 어린 천사와 함께 곡성 기차마을로 가을 나들이를 가면서 손에 쥐었다. 예상보다 늦게 배송된 책으로 애가 탔던 마음도 잠시 책을 펼쳐 몇 글자 읽기도 전에 올케에게 책 자랑하고 있다니? 행복이 여기저기 터져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올레의 진정성이 손끝으로 전해지면서, 오롯이 ‘올레’를 느껴보고 싶다는 열망만 강렬해질 뿐이었다. 옛길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이 열리는 기적이 감동을 주었고, 올레의 숨결을 먼저 느꼈을 수많은 올레꾼들의 다채로운 사연들이 가슴을 촉촉이 젖혀주었다. 한없이 포근한 느낌이었다. 어머니의 품 그대로.


 

올레에 대한 열망을 키워가면서도 어느 순간 나는 ‘고향’을 생각하였다. 서명숙의 고향 제주도가 모든 이에게 제 2의 고향이 되어주는 동시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애정을 느끼노라면, 절로 아련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던 동네 어귀로 발길을 돌리게 하였다. 그립고 그리운 고향의 향수가 가슴 속에서 샘솟았다.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오라버니는 산길을 넘어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면소재지에서 학교를 다닌 내겐 듣도 보도 못해 생경했던 그 산길이 희미하게 되살아났다. 그렇게 여기저기 작은 오솔길, 숲길, 동네 골목길, 담과 담 사이 비밀의 길 등등 내 기억 속 고향의 아기자기한 수많은 길들이 한 순간에 폭발했다. 그 길 위에 추억들은 덤으로 따라와, 시공을 초월하여 시간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이제는 갈 수 없는 고향, 실향의 아픔이 한 해 한 해 더해지는 가운데 옛 풍경이 되살아났다. 이는 고향 산천, 이 땅의 수많은 길들을 열어줄 것이다. 그 열린 길 위, ‘00길’에 대한 열풍이 올레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경쟁과 욕심은 인간을 황폐하기 만들기 십상이다. 그러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견주는 경쟁과 욕심은 인간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한다(365)’는 저자의 말이 ‘올레’의 진정한 정신이 아닐까?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은 경쟁과 탐욕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인에게 모태같은 포근함을 선사해주면 잠시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쉬기에 안성맞춤인 시간을 내어주었다.  

마음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올레길에 대한 동경이 책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한 사람의 열정과 땀이 고스란이 전이되고 어떤 거룩하고 위대한 뭔가를 자극받고, 더불어 어우러짐을 온몸으로 느꼈다. 제주도가 그립다. 제주도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또 다시 제주도의 추억을 덧씌우고 싶다. 호젓한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삶의 여유,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시간, 그래서 나 역시 네 피부로 느껴보고 싶은 열망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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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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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삼풍백화점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몇 편 접해본 기억이 있다. 그 끔찍했던 악몽의 순간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고, 어느새 흐릿해졌다. 어린 시절 뉴스 속 영상으로 접했던 사건들은 그저 생경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사건들을 다시 떠올려 돌이켜보면, 정말 아찔해진다. 그 슬픔과 아픔이 오늘까지 되풀이되며 크나큰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것은 왜일까?

 

<강남몽>을 통해 만났던 사건의 전말과 인물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하나의 역사로 되살아났다. 하나의 소설이 아닌, 실제 사건들 속, 우리의 감추고 싶은 모순 투성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살아났다. 솔직히, 외면하고 싶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 하던가? 그렇게 현대사 속에 숨겨진 야욕, 음모, 짜고 치는 고스톱 판 같은 역사의 이면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근현대사, 특히 해방 이후의 역사에 눈을 돌리려던 순간, 내게 하나의 흐름을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강남몽>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 흐르듯 흘러흘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전혀 별개의 인물들, 그들 개개인의 역사가 오늘의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고, 큰물줄기를 형성했던 것-물론 씻을 수 없는 오점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을 보여주었다. 오물처럼 취급될 수 있는 강남 형성의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과 허상을 발견하고, 그 씁쓸함이 무척 거북하였다. 또한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닌, 오늘과 무관하지 않은 어떤 실체를 확인한 기분이었다. 

 

 

또한, 얼마전 총리, 장관의 후보자 인준 과정을 지켜보면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이미지 또한 <강남몽>이었다. 강남몽 속 등장인물들이 그들과 겹쳐지는 것이 아닌가! 지금껏 폭력, 부동산 투기, 재산 누락 등등 많은 부패, 비리 의혹을 보아왔지만 우리 사회의 특권층의 행태를 보며, 이번처럼 크게 실망하고 분노했던 적이 없는 듯하다. 과거에도 그래왔던 그 행태가 오늘 하루 갑자기 변화리라 기대감 같은 것, 높은 아니 도덕성 자체를 기대한다는 것인 왠지 어불성설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상대적 박탈, 허탈감을 여지없이 느끼며 그들의 재산 축적이 그다지 정당하지 않으리란 의혹이 <강남몽>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고 할까? 정의가 사라진 폭력, 사기, 살인의 무법천지의 세상이 바로 우리 현대사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등장 인물들의 삶이 양육강식, 적자생존의 제국주의의 지배논리와 하등의 차이가 없었다. 거슬러 올라 일제 식민 시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사에 천민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로 점철된 허상의 거대한 대제국이 바로 오늘의 ‘강남’이 아닌가? <강남몽>을 통해 비로소 나는 눈을 뜨게 되었다. 그 자체로 허무하고 덧없는 꿈, 욕망을 쫓는 우리에게 또다시 묻는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역시 그 허상의 노예가 아닌지.

 

박선녀가 더미 아래 깔리면서 그녀의 과거 이야기와 무너진 대성백화점의 주인 ‘김진’의 파란만장한 과거인 일제시대 만주로 배경이 바뀌는 순간, 우리 역사의 맥이 끊긴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 듯, 맥이 툭 끊기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힘인 듯하다. 서로 다른 듯한 인물들의 개인사가 ‘박선녀’라는 인물과 하나로 연결될 때, 한 개인과 역사의 유기적 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듯해, 어떤 희열 같은 것이 느껴졌다. 또한 사회적, 역사적 존재로서의 나의 위치를 고민해본다. 과연 어떤 삶을 살다가는 것이 옳을지, 돈, 권력, 현실, 이상 과연 무엇을 쫓으면 살아야 하는지 숱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분명 대개 인물들, 특히 ‘박선녀, 김진, 심난수, 홍양태’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우리 현대사의 오점처럼 각인되었다. 그렇다면 그 역한 오물 냄새를 맡기 위해 나는 끝까지 책을 손에 쥐었던가? 분명 그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장을 장식한 ‘임정아’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꿈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남시의 탄생의 얽힌 이야기가 ‘임정아’의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면서, 삼풍백화점 더미 아래서 발견된 최후의 생존자로 이야기가 끝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직도 우리가 ‘삼풍백화점’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읽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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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이 어때서? - 노경실 작가의 최초의 성장소설
노경실 지음 / 홍익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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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열네 살? 그 나이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제목과 표지를 보면 왠지 유쾌한 방황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노경실’ 작가의 최초의 성장소설이라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성장소설’을 최근 들어 무척 즐기고 있다. 이 역시도 네 열 네 살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면서, 지금 열네 살 어린(어리지 않다고 한 소리 할까?)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리란 기대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일단 책을 접하면서 나의 열네 살을 추억하기에 바빴다. 아니 애써 추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나의 열네 살은 어디로 간 것일까? 몇몇의 굵직한 나름의 사건사고들이 열넷을 추억해주었다. 하나의 기억을 풀어보자면, 졸업 즈음에 어머니께서 사 주신 점퍼(외투)가 이젠 중학생이 되는 내겐 너무도 유치한 색깔과 디자인이라며 맘에 들지 않는다고 크게 소란을 피웠던 것이다. 이젠 중학생인데 말이다! 어떤 특권이 주어진 것처럼, 어른이 된 착각에 뭔가 뚜렷하게 구별되는 무엇인가가 있었나 보다. 왜 가장 먼저 엄마와의 갈등이 떠오른 것일까? 주인공 연주의 모습을 보면서 내 기억 속 연주와 조우할 수 있었나보다.
그리고 연주의 학교선배 ‘지섭’의 등장으로 잊었던 나의 달콤한 풋사랑이, 연주의 단짝 ‘민지’로 인해 할머니와 살았던 단짝친구(집과 가까워 자주 함께 자기도 하였다)과의 소중했던 우정들이 되살아났다.
지섭의 유학과 첫사랑의 아픔은 마치 전학으로 인한 이별, 그리움 등의 헤묵은 감정들을 갑작스레 간질였다. 마치 나의 열네 살의 온갖 추억들이 <열네 살이 어때서?> 속 연주의 이야기를 통해 고스란히, 생생하게 되살아나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채워주었다. 



오늘의 열네 살 친구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때론 뭔가 소통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무척 낯설기도 하지만, 그 친구들을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또한 나의 밥벌이이기 때문에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온갖 갖은 생각들도 가득한 어린 친구에게 그 뇌 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하니, 아마 미처 버릴 거라며 나름의 고통을 토로하였다. 그러면서 유치원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 그랬다. 그만큼의 크기에 따라 버거운 삶의 고뇌가 수시로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 때는 그 때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모두 저마다의 고통, 고민들은 통과의례와 같은 삶의 흔적들 일 테고 그로 인해 한층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일 테다. 그렇게 모두를 위로하고 싶다. 


책을 읽는 순간순간, 그 순간의 소소한 일상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온다.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친구 연주는 모든 열네 살들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학교-학원-집 이외의 다른 삶의 궤적을 찾기 힘들지만, 꿈을 꾸고, 꿈을 이야기하고 도전하고, 때론 좌절하는 모습과 그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무척 유쾌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 모습들이 무척 즐겁고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며 너무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들에 뭔가 빠트리고 읽은 것은 아닌지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나의 십대가 훌쩍 흘러가 구멍투성이인 것처럼. 아쉬움에 마지막 장을 덮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꿈을 향해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수밖에 없는 많은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또한 가슴 속 뜨거운 열망과 희망으로 앞으로 닥칠 수많은 일들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너희가 앞으로 수많은 일과 감정의 변화 속에 있게 될 텐데, 내가 읽어준 신문기사들처럼 명분 없는 일로 너희의 인생을 우울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인생은 셀 수 없이 너희를 째려볼 것이다. 겨우 그 정도밖에 못 사느냐? 넌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냐? 등등의 조롱으로 말이다. 또 삶은 너희를 기분 나쁘게 째려볼 것이다. 네가 뭘 하겠어? 네가 뭐 대단하다고? 네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말이다. (……) 이거 하나만 기억해라. 너희가 울든 웃든, 노력하든 포기하든, 주저앉든 다시 일어나든 …… 시간은 단 한 번도 멈추거나 쉬거나 요령 피우지 않고 계속 앞으로, 앞으로만 가고 있다는 것을.” (16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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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보면 문득 창비시선 291
정희성 지음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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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가을 하면 왠지 모르게 쓸쓸함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휘몰아 닥친다. 몇 해 전부터 드높은 파아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그 청명함에 오히려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시집들로 즐비한 곳으로 발걸음이 절로 향한다.


돌아다보면 문득!? 제목이 무척 감미롭다고 할까? 어떤 그리움을 가득 안고 애처롭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선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돌아다보면 문득 무엇을 그리게 될까?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무엇, 뭔가 툭툭 떨어지는 느낌은 수없이 꽂혀 있는 다른 시집들 중에서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가을의 헛헛함을 풍성함으로 바꿀 수 있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보름 가까이 곁에 두고, 펼쳐보고 펼쳐보았다.


 


<<돌아다보면 문득> 이 시집 말이다. 착착 감긴다. 한 구절 한 구절 시·공간을 넘나들며 생경하게 다가오면서, 끊임없이 혀끝을 맴돈다. 뭐라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톡톡’하고 가슴을 두드리고, 긴 여운을 남기며 깊게 울린다.


 


‘그 별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별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나 모습을 드러낸다’는 서시희망」은 마구마구 가슴을 뛰게 하였다. ‘희망’이란 것을 난생 처음 느낀 듯! 어둠 속에서나 그 빛을 발하는 별들처럼, 희망이란 것이 본디 절망과 고통 속에서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것이니, 그 어둠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명쾌한 진리가 쿵쾅쿵쾅 심장을 뛰게 하였다. 그리곤 곧장 희망을 에두른다. 어둠속에서나 드러나는 별, 그 빛 안에 어둠이 있다고, 그 어둠 속에서 홀로 쓸쓸했다고 말이다.(어둠속에서」)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문제인 냥, 홀로 자신이란 벽에 갇혀 세상을 등지기 일쑤이지만, 그럼에도 그 쓸쓸함을 찾아 기차 타고 정동진에 가보란다. 그 곳의 소나무 한 그루와 작은 벤치엔 먼저 온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단다.(「바닷가 벤치」)


서시 「희망」,「어둠속에서」와「바닷가 벤치」이렇게 연달아 있는 세 편의 시는 하나의 이미지를 그리며, 마음 속 가을의 묵은 감정들을 씻어주었다. 나만의 쓸쓸함, 외로움이 마지막 “너보다 먼저 온 외로움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바닷가 벤치」)는 구절에서 봄눈 녹듯 사르르 녹아버렸다. 가슴 속 응어리가 한 순간에 풀린 듯하다.


 


제1부 마지막 시 ‘절망의 반대가 희망은 아니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빛나듯/ 희망은 절망 속에 싹트는 거지/ 만약에 우리가 희망함이 적다면/ 그 누가 이 세상을 비추어줄까’(「희망공부」)을 통해 희망하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된다. 좌절, 열패감 속에서도 희망의 작은 싹을 틔우고 또 틔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그렇게 ‘희망공부’에 끝없이 매진하라 소리 높인다.


 


‘나의 고향은 공간 속에 있지 않고/ 머나먼 시간 속에 있다/ 어린시절 부르던/ 흘러간 노래 한 소절과/ 그것이 떠올리는 시간/ 아득히 먼 별에 숨어 있는 한 송이 꽃처럼/ 믿을 수 없는 기억 속에’, 「나의 고향은」이란 시가 또한 무척 인상적이었다. 가장 진귀한 보석처럼 가슴 속에 박혔다. 고향과 유년시절의 추억, 무의식 속의 처절한 그리움이 지금 순간순간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아득한 상실의 아픔이 「나의 고향은」을 통해 치유되고 위로받았다.


 


2008년의 시간을 거슬러 그 당시를 시를 통해 뒤돌아본다. 현실의 문제를 결코 외면할 수 없었던 시인, 그의 통찰과 연민과 애증은 여전히 뿌리 깊숙이 자리한 우리의 사회 문제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희망을 이야기하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 현실 인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젠 달력도 11월이다. 11월~ 벌써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 동안 뭘 했던가?’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으며, 아쉬움에 고개를 떨어뜨린다. 자꾸만 뒤돌아본다. 그럼에도, 자~ 이젠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란 시를 통해 힘을 내보면 어떨까? 큰 소리내어 읊어보련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누끼네’


 


쓸쓸함과 외로움에 파묻히기 쉬운 이 가을, 나는 정희성의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을 통해 한결 뽀송뽀송 가벼운 마음과 포근함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가슴 속 희망의 불꽃이 일렁이며, 힘을 내었다.


몇 번이고 들락날락 갈필을 못 잡고 버둥거리는 내게 쉼 없이 맑게 갠 얼굴로 묵묵히 위로해 주고 보듬어 주었다. (‘시는 맑게 갠 얼굴로 제자리에 있다’ 91, 해설 박수연). 마치 느닷없이 가을산을 찾아 정처 없이 헤매다가 어떤 위안을 찾듯이, 정희성의 시는 그렇게 산처럼 어디 안 가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곤 갈팡질팡한 마음을 감싸주었다.


‘가까이 갈 수 없어 / 먼발치에 서서 보고 돌아왔다/ 내가 속으로 그리는 그 사람마냥 / 산이 어디 안 가고 / 그냥 거기 있어 마음 놓인다’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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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 제15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김유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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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인연이란 그래서 소중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160쪽)

 

무척 흥미로운 제목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이 일단 눈에 띄었다. 선뜻 어떤 의미인지, ‘사다라 햄버튼’의 존재가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그리고 ‘제 15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라니, 더욱 기대를 갖게 되었다. 무료한 일상에 찾아든 변화, 고양이 ‘사라다 햄버튼’과의 교감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일단 책을 펼쳐보고 싶었다. 왠지 기분 좋은 이야기로 깊어 가는 가을에 한 권의 책으로 풍성하고 충만하리란 들뜸, 설렘으로 가득했다.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체온을 가진 누군가(11)’의 부재, 그 허함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길고양이 ‘사라다 햄버튼’! 오랜 동거녀의 갑작스런 이별통보, 그 실연의 시점과 교모하게 맞아 떨어져 찾아든 길고양이! 어느새 나의 한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절로 실연의 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실연, 상실로 갑자기‘ 뚝’!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듯, 저 우주 멀리 홀로 떨어진 듯, 그 서글픔을 버려진 강아지를 품에 안고 울고 웃던 그 시간 속으로 말이다. 내 이야기? 묘했다. 그렇게 푹 빠져, 한껏 아픔과 슬픔의 찌꺼기를 씻어내듯 한결 가벼워졌다. 마치 씻김굿을 한 듯한 느낌!

 

청춘의 한 시점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이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이면서, 인생의 소소한 때로는 굵직한 사건 하나하나를 자극하였다. 압축된 삶의 흔적들, 그 추억들에 이 가을의 쓸쓸함과 고독이 주위를 감싸지만,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고 가슴 벅차도록 따뜻해졌다.

또한,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 어긋나버린 인연들, 그 속에서 그저 그 인연들의 소중함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가족’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부자의 이야기 속에서 ‘가족’이란 단어 속에 담긴 그 포근함에 콧등은 시큰, 한 쪽 가슴은 뭉클하기도 하였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음에도 신선하고 참신했다. 그리고 경쾌하고 따뜻했다. 일단 ‘문학동네작가상 수장작’의 경쾌함이 늘 좋다. 주인공을 통해 토로하는 현실의 아픔, 고통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로 진정성이 묻어나고, 그 속에서 젊음의 열정과 희망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제 16회의 수상작은 또 어떤 이야기일지 벌써부터 기대하게 된다.

아무래도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몇 번이고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을 펼치게 될 듯하다. 삶의 간극을 깔끔하게 메워주며, 어떤 희망들로 가득 채워주는 그 느낌에 다가오는 겨울이 외롭지 않을 듯하다.

 

실연, 상처, 좌절 등의 이유로 무기력했던 순간들, 뭔가 젊음을 유기했다는 또 다른 죄책감으로 더욱 수렁에 빠지기 쉬운 그 청춘의 시기! 분명 그 시간들로 인해 한층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위로의 말을 덧붙이고 싶다. 나 역시 그랬다. 한 때의 흘러버린 시간들이 이젠 하나의 통과의례였으리란 생각, 그리고 그것을 발판삼아 한 걸음 더 크게 내디딜 거란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청춘이여! 좌절과 방황의 시기도 만끽해보자! 그 ‘불운한 운명(111)’에 온몸을 내맡겨보자! 파이팅!

 

“언젠가 깨닫게 될 거야. 지금 네가 겪고 있는 불안이, 아픔이, 절망이

결국 너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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