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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1995년 삼풍백화점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몇 편 접해본 기억이 있다. 그 끔찍했던 악몽의 순간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고, 어느새 흐릿해졌다. 어린 시절 뉴스 속 영상으로 접했던 사건들은 그저 생경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사건들을 다시 떠올려 돌이켜보면, 정말 아찔해진다. 그 슬픔과 아픔이 오늘까지 되풀이되며 크나큰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것은 왜일까?
<강남몽>을 통해 만났던 사건의 전말과 인물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하나의 역사로 되살아났다. 하나의 소설이 아닌, 실제 사건들 속, 우리의 감추고 싶은 모순 투성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살아났다. 솔직히, 외면하고 싶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 하던가? 그렇게 현대사 속에 숨겨진 야욕, 음모, 짜고 치는 고스톱 판 같은 역사의 이면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근현대사, 특히 해방 이후의 역사에 눈을 돌리려던 순간, 내게 하나의 흐름을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강남몽>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 흐르듯 흘러흘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전혀 별개의 인물들, 그들 개개인의 역사가 오늘의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고, 큰물줄기를 형성했던 것-물론 씻을 수 없는 오점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을 보여주었다. 오물처럼 취급될 수 있는 강남 형성의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과 허상을 발견하고, 그 씁쓸함이 무척 거북하였다. 또한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닌, 오늘과 무관하지 않은 어떤 실체를 확인한 기분이었다.
또한, 얼마전 총리, 장관의 후보자 인준 과정을 지켜보면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이미지 또한 <강남몽>이었다. 강남몽 속 등장인물들이 그들과 겹쳐지는 것이 아닌가! 지금껏 폭력, 부동산 투기, 재산 누락 등등 많은 부패, 비리 의혹을 보아왔지만 우리 사회의 특권층의 행태를 보며, 이번처럼 크게 실망하고 분노했던 적이 없는 듯하다. 과거에도 그래왔던 그 행태가 오늘 하루 갑자기 변화리라 기대감 같은 것, 높은 아니 도덕성 자체를 기대한다는 것인 왠지 어불성설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상대적 박탈, 허탈감을 여지없이 느끼며 그들의 재산 축적이 그다지 정당하지 않으리란 의혹이 <강남몽>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고 할까? 정의가 사라진 폭력, 사기, 살인의 무법천지의 세상이 바로 우리 현대사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등장 인물들의 삶이 양육강식, 적자생존의 제국주의의 지배논리와 하등의 차이가 없었다. 거슬러 올라 일제 식민 시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사에 천민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로 점철된 허상의 거대한 대제국이 바로 오늘의 ‘강남’이 아닌가? <강남몽>을 통해 비로소 나는 눈을 뜨게 되었다. 그 자체로 허무하고 덧없는 꿈, 욕망을 쫓는 우리에게 또다시 묻는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역시 그 허상의 노예가 아닌지.
박선녀가 더미 아래 깔리면서 그녀의 과거 이야기와 무너진 대성백화점의 주인 ‘김진’의 파란만장한 과거인 일제시대 만주로 배경이 바뀌는 순간, 우리 역사의 맥이 끊긴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 듯, 맥이 툭 끊기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힘인 듯하다. 서로 다른 듯한 인물들의 개인사가 ‘박선녀’라는 인물과 하나로 연결될 때, 한 개인과 역사의 유기적 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듯해, 어떤 희열 같은 것이 느껴졌다. 또한 사회적, 역사적 존재로서의 나의 위치를 고민해본다. 과연 어떤 삶을 살다가는 것이 옳을지, 돈, 권력, 현실, 이상 과연 무엇을 쫓으면 살아야 하는지 숱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분명 대개 인물들, 특히 ‘박선녀, 김진, 심난수, 홍양태’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우리 현대사의 오점처럼 각인되었다. 그렇다면 그 역한 오물 냄새를 맡기 위해 나는 끝까지 책을 손에 쥐었던가? 분명 그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장을 장식한 ‘임정아’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꿈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남시의 탄생의 얽힌 이야기가 ‘임정아’의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면서, 삼풍백화점 더미 아래서 발견된 최후의 생존자로 이야기가 끝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직도 우리가 ‘삼풍백화점’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읽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