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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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금씩 스며들던 유쾌함과 벅참을. <소년을 위로해줘>는 익숙하면서 뭔가 참신함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할까? 봄 햇살 끝, 새초롬히 새싹을 막 틔운 작은 연초록빛 물결이 펼쳐진다. 추운 겨울 뒤에 찾아든 가슴 벅찬 반가움과 설렘 그 자체!? 쉽게 정리가 되지 않지만 숱한 감정들 중에서 행복하고 선한 기운들이 한 가득 손끝으로 스며들었다.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연우라는 인물이 중심이 되어, 엄마와 엄마의 애인 그리고 새학기 전학을 하면서 만나게 된 인물들(태수, 채영, 마리)과의 사랑, 우정을 그리고 있다. ‘연우’라는 인물의 풋풋함과 반듯함, 의젓함이 불안정하고 방황하는 다채로운 인물들 사이에 무게 중심을 꽉 잡고 있다. 그리곤 십대의 상큼한 사랑과 다소 거친 듯이 끈끈한 우정이라는 두 개의 평행선이 탄탄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끊임없는 혼란, 방황, 갈등 속에서도 ‘뻔’할 수 있는 소재는 이미 그 십대의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쳐버린 우리에게 진한 그리움을 물들인다. 학창시절의 추억할 수 있는 타임머신의 연료를 가득 싣고 이 한 권의 벗과 함께 즐거운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선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느새 나도 어쩔 수 없는 틀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세대를 달리하는 지금의 십대들의 생각을 엿보면서 ‘나’란 존재를 어디에 끼어 맞춰야 할지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미숙하고 여전히 혼란 속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어른의 탈을 쓴 채, ‘연우’,‘태수’,‘채영’,‘마리’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보다는 그들의 생각을 재단하게 판단하기 바빴다. 그들의 목소리에 최대한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어떤 틀, 관념이란 것은 빗장을 잠근 채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빌린 듯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리고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채영의 아빠’가 된 것일까? 자신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권위라는 갑옷으로 무장하고 뻣뻣하게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지난 십대의 모습을 추억하며 함께 감정을 나누기보단 이야기 속 신민아(연우의 엄마), 태수엄마, 재욱 형, 채영의 아빠, 엄마 등의 부모세대의 모습에 나 자신을 투영하면서 과연 어떤 부모가 되어야할지, 되고 싶은지 깊은 시름이 찾아들었다. 이것은 분명 나를 찾아가는 또 다른 길임엔 분명하지만 왠지 서글펐다. 그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고 가볍고 유쾌하게 그들을 이해할 순 없는가?

 

‘음악’이 매개가 되어 미지의 신세계가 열린다. 여름, 가을, 겨울,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순환 위에 낯선 세계로 향한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 곳엔 첫사랑, 상처에 대한 두려움, 오해, 이별, 상실, 죽음, 갈등 등의 갖가지 감정들을 겪게 된다. 다양한 사건들 중에서 하프마라톤을 달리는 연우의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열일곱 살 연우는 하프마라톤을 달린다. 그리고 그 힘들고 고된 순간순간 스치는 숱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생중계한다. 다리의 고통, 어깨의 통증 그리고 순간의 희열과 자부심은 앞으로 살아간 삶에 대한 의지의 또 다른 표현처럼 느껴졌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숨을 조절하면서 ‘더 달리 수 있다’는 자신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나’ 라는 전 존재를 오롯이 느끼며 혼자 짊어진 채 달려야 한다는 명쾌한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강해지는 기분을 뼈 속 깊이 각인시킨다.

또한 그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연우는 왁자지껄 고등학생들을 보면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무엇을 잃게 될 수 있는지 최후의 상황까지 상상’하라고 충고한다. 이는 한 걸음 벗어난 자의 여유로운 호기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마음의 목소리인 것이다. ‘딱 한 번의 충동과 잘못된 판단, 그리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치명적 결과에 대해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라’고, 스스로 단근질하라는 일침도 잊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른다. 많이 다르면서도 눈에 익은 ‘상실과 사랑’의 또 다른 버전이랄까? 다만 훨씬 풋풋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밝고 새벽 공기처럼 시원하고 맑다. 소년을 위로해줘! 과연 내가 소년을 위로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내 안의 소년은 충분히 위로받았을 것이다.

여전히 멀찍이 물러나 관망하는 자세를 견지할 수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내면 깊숙이 자리한 위선, 편견의 틀을 인지하고 그 낡은 갑옷을 던져버리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내려쬐는 봄 햇살의 설렘을 가득 안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아닌 용기와 열정이란 작은 씨앗을 심게 된다. 어느새 <소년을 위로해줘>는 밝게 비쳐드는 햇살 아래 살포시 싹을 틔우려는 작은 꿈틀거림과 움틀거림으로 마음을 간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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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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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의 <비즈니스>와 함께 <길 위의 시대>를 만났다. <비즈니스>와 같은 맥락일 거란 섣부른 생각이 때론 책의 흐름을 방해하고 혼란을 주기도 하였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은 순간의 평온함이 세포 깊숙이 젖어들고 순수를 향한 갈망이 온몸을 휘감는다.

 

장윈, 참 낯선 작가다. 그리고 중국소설을 낯설고 낯설 뿐이다. 그런데 최근 몇 편의 중국 소설을 만나면서, 중국의 현대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 게 되고, 그 보편성 앞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물질과 욕망, 자본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을 되새기다보니, 장윈이 풀어낸 낯선 이야기는 잔잔한 파문이 되어 가슴 속에 일렁거린다.

 

책 속에서 발견하는 잃어버린 것의 추억, 그 순수성이 조금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소박한 뭍사람들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예러우, 망허, 그리고 천샹이라는 세 인물의 삶 속에서 그려지는 소박한 사람들, 그 스쳐 지났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6,70년대의 전형이라고 할까? 순수, 낭만이 살아 숨 쉬는 옛 추억을 더듬어 시간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예전에 ‘무전여행’이란 것이 가능할 정도였고 ‘서리’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용납이 될 정도로 순수함과 너나 할 것 없는 인정이 살아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오늘날에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다시금 우리가 얼마나 사랑, 이상, 도의, 낭만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길 위의 시대>를 통해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장윈은 중국의 1980년대를 ‘시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의 시대를 대표하는 세 인물(시를 쓰는 시인과 시, 그리고 시인을 사랑한 여인들)을 통해 또 다른 순수에 대한 열망을 그리고 있다. 오늘과 대조되어 두드러지는 순수, 사랑, 낭만이 살아 있는 삶과 그것의 붕괴 그리고 그 처절한 인내의 세월이 함축되어 놀라움을 선사한다.

솔직히 두 여인과 ‘망허’라는 인물의 연결고리가 사뭇 혼란스러웠다. 이야기의 시간과 공간을 헤아리다보면, 뭔가 아귀가 들어맞지 않았다. 도대체 ‘망허’라는 인물은 누구인지, ‘천샹’의 집념과 열정 그리고 예러우와 망허의 사랑이 교차되어 전개되었다. 그 속에 숨겨져 있던 하나의 퍼즐 조각은 결코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고 충격이었다. 무엇인가 머릿속에서 굉음을 쏟아내며 폭발하는 느낌 그 자체였다. 아무래도 ‘천샹’의 내적 붕괴와 그 어긋남에 순간 몰입되면서 이야기의 폭발력을 실감하였다. 장윈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힘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작가인 듯하다. 어느 한 순간의 폭발력이란, 그 에너지의 원천이 무엇일지 궁금할 정도였다.

 

낭만, 순수성을 잃고 살아가는 현세대에게 자신의 깊은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순수’와 ‘낭만’을 회복하자고 속삭이고 있다. 어느 한 곳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허겁지겁 내달리기 바쁜 우리에게 그의 속삭임은 잔잔한 울림이 되어 마음 속 깊이 따스한 온기의 불씨를 심어 주었다. 격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슴 깊이 애잔함이 스며들지만 이내 평온함을 되찾고 한결 여유로워진다.

 

잔인한 아름다움 속에 깃든 순수와 열정을 찾아 인생의 길 위에서 방랑자가 되어보면 어떨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안, 두려움마저도 제 것으로 만들어 사랑과 순수를 향해 달릴 수 있는 용기를 마음속에 꾹꾹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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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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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청년작가 ‘박범신’을 만났다. 그가 7,80년대 우리 문학계 아닌 문화계에 끼친 영향, 그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그는 철저하게 -내게 있어- 낯설고 생소한 작가였을 뿐이다. 그리고 몇 해 전 그의 이름 석 자를 알게 된 후 그의 작품들에 눈도장을 찍어두었다. 하지만 그의 신간 소식(고신자, 은교 등)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집었다가 이내 살포시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아직은 시절인연이 아닌가 보다면 다음을 기약해왔다. 그리고 드디어 <비즈니스>라는 책을 만났다.

 

표지, 무척 강렬했다. 붉은 소파 위에 누워있는 야릇한 뒤태는 분명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남모를 아픔을 담고 있는 듯했다. 뭐랄까, 그 강력함 속, 지친 어깨에선 쓸쓸함이 묻어나왔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보면 볼수록 가녀린 모습에서 아련한 슬픔이 차올라 내게로 스며든다. 주체할 수 없는 어떤 욕망의 끝, 스스로 허망함에 무너졌던 기억이 투영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고 난 뒤, 표지의 강렬함은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되며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하다.

 

‘천민자본주의’의 허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굵직한 이야기들이 최근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된 것 같다. <강남몽>(황석영)을 시작으로 <허수아비춤>(조정래)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비즈니스>였다. ‘박범신’이 풀어놓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우리들은 최근 자본주의의 비애를 온몸으로 느끼며 처절한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또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열풍으로 설명된다고 생각하였다.

‘돈’의 노예가 된 이 세상에 도덕과 정의, 윤리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우리는 철저하게 수렁 속으로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긴급한 수혈이 필요한 어느 환자처럼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 모두의 아우성이 메아리치다보니, 이렇게 하나의 흐름을 잇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떤 실체를 찾아 <강남몽>을 만나고 <허우아비춤>을 만나고 <비즈니스>를 만나게 된 것이리라. ‘세상의 주인이 자본이고 삶의 유일한 전략은 비즈니스’(53)라 외치는 지금, 우리는 오늘의 현대성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거대한 모래성 위의 불안과 초조함을 대변하고 그 상관관계를 파헤치는 소설들을 만나면서 망설임 없이 책을 펼쳤다.

 

‘비즈니스우먼’, ‘비즈니스맨’을 자청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바닥의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중이었다. 아니 그 끝이 서서히 자신들을 옥죄어 오고 있음을 예감하면서도 결코 멈출 수 없었다. 아들의 과외비를 위해 몸을 파는 어머니인 화자와 그 주변 인물들- 무력한 남편, ‘돈’만의 왕국을 추종하는 동기, 그리고 신출귀몰의 도둑 ‘타잔’ 그리고 타잔의 자폐증을 앓는 아들-과의 엉켜버린 인연, 그 속의 사건들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빠르게 전개된다.

일단 그들처럼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 놀라운 흡입력이란 단 한 순간인 듯하다. 강간범, 살인사건 등의 강력범죄가 연이어 일어나는 ‘ㅁ’시, 그녀의 집 창문 밖으로 납치범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한 사건을 따라 길 없는 길을 정신없이 내달린다. 추리소설의 긴장감을 온 세포에 각인시키고, 과연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추측할 사이도 없이 진실의 문을 활짝 열렸다. 온 몸의 신경이 이 책 한 권에 쏠렸다.

 

사랑의 함정에 빠진 그네들, ‘자기 파멸의 욕망’에 허우적거리는 그네들의 삶은 팍팍하고 고단한 우리네의 삶에 현미경을 드리운 듯 섬세하고 날카로웠다. 그네들의 삶에서 우리들, 오늘을 투영하다보니, 정신없이 깊은 수렁에 빠진 그네들과는 사뭇 다른 하지만 본질은 같은 깊은 늪에 빠져들었다. 그만큼 이야기는 거부할 수 없는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생생하게 다가오는 그들의 삶은 그 어떤 이론, 원리에 대한 고리타분한 이야기보다 많은 것을 담아내고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처절할 정도로 우리들의 욕망의 그 끝의 허상을 직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 속 ‘프란시스 베이컨’의 ‘돈은 최선의 종이요, 최악의 주인이다.’(70)라는 말이 끊임없이 혀끝에서 맴돈다.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로 ‘돈’이라는 물리적 실체에 저당 잡힌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 되묻는다.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니 백 번 천 번 인정한다. 그러나 ‘최선의 종’으로써 활용가치는 무한히 재생될 수 있지만, 과연 그 쓰임이 목적이 되지 않았는지, 이미 최악의 주인이 되어 ‘돈’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는가? 책을 읽으면서 매번 최악의 주인이 되어 삶을 변질시키고,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그네들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자본의 세계에선 당연히 사랑도 자본재였다’(59)는 고백과 ‘사랑, 의리, 또는 모든 윤리성도 이미 돈에 잡아먹힌 세상’(121)이라는 일침 또한 머릿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거침없는 일침에,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는 모습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여러 흉악 범죄들이 매일의 뉴스가 된 오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전형화된 갈등 등의 온갖 자본과 인간의 부조리와 모순들의 축소판인 소설 <비즈니스>는 가볍게 읽히면서도 묵직함으로 다가온다.

격렬했던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삶을 견지해야 하는지 자기 성찰의 시간이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또한 어김없이 희망의 작은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있다. 바로 자폐증을 앓는 여름이의 변화된 모습이 첫 번째 희망이었다. 난도질당해 결코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들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었다. 작은 희망일지라도 어느새 삶의 희열이 스며든 그녀의 변화된 모습 또한 두 번째로 엿본 희망이었다. 개발과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구조와 자본이라는 힘에 좌절과 환멸에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다! 우리 안에 깃든 내면의 순수성과 삶의 열정, 그 본성은 좀 더 건강하고 당당하게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싶다는 더 뜨거운 욕망들이 내 안에 꿈틀거린다.

 

박범신, 그는 현재 지금의 모습을 낱낱이 그려내는 현역작가, 현실 비판적 이야기를 풀어내는 ‘현역작가’를 꿈꾼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청년작가’라는 수식어가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흰머리가 내려앉은 그의 모습에서 푸른 기상을 느꼈고 가슴엔 불타오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꿈꾸는 ‘현역작가’란 수식이 더욱 어울리는 내일, 그가 풀어낼 숱한 이야기에 대한 기대로 들뜨면서도 미처 만나보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들을 만나러 잰걸음을 놓아 책 속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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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거짓말 - 카네기 메달 수상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0
제럴딘 머코크런 지음, 정회성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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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아라비안나이트’라는 문구에 솔깃했다. 과연 어떤 신비롭고 기상천외한 이야기, 우리의 상상력의 언저리를 벗어난 광활한 상상과 환상의 세계를 생각하노라니, 절로 들뜨는 기대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문득 ‘걸리버 여행기’가 연상되는 표지도 눈길을 끌면서,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새빨간 거짓말’이란 단어가 지닌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과연 어떤 거짓말(?)의 향연을 펼쳐질지, 책 <새빨간 거짓말, A Pack of Lies>은 그렇게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나를 자극하였다.

 

일단 <새빨간 거짓말>이 바로 1989년에 이미 출간되고 카네기 메달과 가디언 상을 석권했다는 사실을 밝혀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이리 뒤늦게 우리에게 소개된 것일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굉장한 흡입력에 빨려들었다. 과연 주인공 ‘에일사’에게 부지불식간에 찾아든 사내는 누구일지, 과연 이들의 만남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지, 설렘과 궁금증으로 온몸이 들썩거린다. 과연 비밀을 간직한 'MCC 버크셔‘의 존재 자체가 첫 번째 호기심이었다면, 그가 하나의 골동품들을 통해 풀어내는 이야기가 두 번째로 굉장한 호기심을 이끌었다. 그렇게 그가 만들어낸 ’새빨간 거짓말(?)‘의 힘은 과연 무엇인지 정신이 번쩍일 정도였다. 솔직히 편안하게 누워 읽다가, 첫 이야기의 작은 실마리가 풀리면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지금 우리는 바로 ‘감성마케팅’과 ‘스토리텔링’의 힘이 강력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스토리텔링의 힘, 그 핵심을 간파하는 이야기 속 이야기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부채질하게 강렬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엘리사의 어머니 ‘포비 부인’이 어떻게든 꾸려가고 있는 골동품 가게, 낡고 오래된 물건들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가게에 버크셔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색다른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변화가 찾아든다. 다 고장 난 시계, 나무상자, 우산꽂이, 거울, 침대, 식탁 등등의 다양한 물건들 속에 숨겨진 기막힌 사연들, 그 이야기가 덧붙여진 물건이 또 다른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재탄생되는 것이었다.

언제가 할아버지의 삼발이 형태의 십이지신상이 양각된 재떨이가 삼촌의 탁상 위에 놓인 것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할아버지의 분신처럼 느껴지면서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가족 모두는 이야기꽃을 피운 적이 있다. 하나의 사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우리의 삶과 함께 하면서 수많은 이야기의 근원이 되었다고 할까? 그렇게 어떤 사물에 부여된 이야기의 힘이 새삼스레 굉장하게 느껴졌다.

소설을 읽는 맛을 다시금 실감한다고 할까? 허구지만,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이야기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tv에서 보았던 또 다른 이야기의 힘이 떠오르기도 한다. ‘헤리포터’ 시리즈가 탄생할 수 있었던 원천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영국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만들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었다. 상상과 환생을 넘나들며 그 어떤 문화적 컨텐츠보다 강한 이야기의 힘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는데, 여지없이 <새빨간 거짓말>을 통해 다시금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을듯하다. 이처럼 한 권의 책을 통해서 그 어느 때보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한 편의 이야기 속 이야기가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굉장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듯, 깊이 매료되었다.

 

과연 어느 것인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우리의 현실에서 진짜 이야기란 과연 무엇일까?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 속에 풍덩 빠져 잠시나마 현실의 잡다한 일들을 잊고 싶을 정도로 <새빨간 거짓말>이 풀어낸 이야기는 강렬했다. 이 한 권의 책 속에 빠져 이 한겨울의 추위를 모두 날려버리고 싶다. 기대 이상으로 신기하고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흠뻑 취해보시라!

그리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고, 또 다른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찾아 이야기꽃을 피워보면 어떨까? 과연 MCC 버크셔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에일사의 이야기라면?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파헤쳐나가는 또 다른 모험이 펼쳐진다면? 자꾸만 무궁한 상상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함박 웃음꽃을 피우는 정겨운 분위기를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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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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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무협지 소설 느낌의 표지라 처음엔 무심코 지나칠 ‘뻔’하였다. 다행히 저자 ‘김탁환’의 세 글자가 크게 다가오면서, 다시금 설레고 기대감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소리 소문 없이 언제 또 이야기를 풀어놓았단 말인가! 자칭 ‘소설 노동자’답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니 우리내야 반갑게 맞으면 정신없이 읽고 즐거움에 취하면 그 뿐!

 

개마고원 밀림의 주인인 백호, ‘흰머리’와 포수 ‘산’의 숨 막히는 추격전을 다루고 있다는 말에 문득, <잘 가요, 언덕>(차인표, 살림)이 떠올랐다. 옛날 옛적부터 우리의 전설, 전래동화 속에는 ‘호랑이’가 영물로, 또는 희극의 대상으로 우리 민족과 삶을 함께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잘 가요 언덕>에 등장하는 포수와 호랑이의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가슴을 뛰게 하면서 강한 여운을 남기며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살짝 아쉬움과 큰 여운을 남겼던 호랑이(백호였던 것 같은데 기억은 아리송하다)와 인간의 승부의 마지막 종착지가 바로 <밀림무정>처럼 느껴져 부푼 기대감으로 들떴다.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란 수식이 붙는 ‘김탁환’이 풀어낼 호랑이와 포수, 그 극한의 긴장과 흡입력을 즐기기 좋은 겨울이 아닐까?

 

쫓고 쫓길 수밖에 없는 호랑이와 인간의 대립이 개마고원을 배경으로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눈 덮인 개마고원, 울창한 나무들 사이 백호 ‘흰머리’와 포수 ‘산’이 마주하고 있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온몸이 짜릿해지는 기분, 하지만 너무도 처절하게 다가오면서, 동물원에서 보던 그런 호랑이가 아닌 야생의 혼을 지는 흰머리와 다른 호랑이들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아직 상상도 하지 못했다. 팔다리가 뜯겨 나가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운명의 팽팽한 줄다리가가 온몸의 세포들을 날 서게 만들었다. 또한 가족의 죽음에 대한 복수, 그리고 애증의 관계로 발전하면서 호랑이와 포수 사이가 더욱 흥미로웠다.

 

포수 ‘산’의 묵직함, 7여 년 간의 집념, 호랑이를 목숨처럼 지키고자 하는 ‘주홍’의 애절함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가슴 속엔 어떤 뜨거움이 용솟은 치는가? 벅찬 박동 소리를 들으며 삶과 마주했던 적은 언제인가? 빽빽한 빌딩 숲 사이에서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밀림의 처절함과 뜨거움이 아닌지, 총에 새겨진 ‘밀림무정-거칠고 단순하고 치열한 본능만이 존재하는 밀림에는 사사로운 정 따위는 없다-’에 담긴 의미가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생을 오롯이 건 한 판 승부, 그 승부에 대한 열망과 ‘무정’하다지만 오히려 더 뜨거운 정이 넘치는 밀림 숲의 하얀 눈보라 속으로 성큼 걸어가고 싶어진다. 눈 덮인 산을 훈훈하게 데어줄 우리 안의 어떤 갈망을 찾아서 말이다. 이 연말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다 잡을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사람냄새 풀풀 맡으며, 땀과 열정으로 가득한 ‘생에 대한 뜨거움’을 처절하게 느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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