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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박범신의 <비즈니스>와 함께 <길 위의 시대>를 만났다. <비즈니스>와 같은 맥락일 거란 섣부른 생각이 때론 책의 흐름을 방해하고 혼란을 주기도 하였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은 순간의 평온함이 세포 깊숙이 젖어들고 순수를 향한 갈망이 온몸을 휘감는다.
장윈, 참 낯선 작가다. 그리고 중국소설을 낯설고 낯설 뿐이다. 그런데 최근 몇 편의 중국 소설을 만나면서, 중국의 현대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 게 되고, 그 보편성 앞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물질과 욕망, 자본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을 되새기다보니, 장윈이 풀어낸 낯선 이야기는 잔잔한 파문이 되어 가슴 속에 일렁거린다.
책 속에서 발견하는 잃어버린 것의 추억, 그 순수성이 조금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소박한 뭍사람들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예러우, 망허, 그리고 천샹이라는 세 인물의 삶 속에서 그려지는 소박한 사람들, 그 스쳐 지났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6,70년대의 전형이라고 할까? 순수, 낭만이 살아 숨 쉬는 옛 추억을 더듬어 시간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예전에 ‘무전여행’이란 것이 가능할 정도였고 ‘서리’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용납이 될 정도로 순수함과 너나 할 것 없는 인정이 살아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오늘날에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다시금 우리가 얼마나 사랑, 이상, 도의, 낭만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길 위의 시대>를 통해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장윈은 중국의 1980년대를 ‘시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시의 시대를 대표하는 세 인물(시를 쓰는 시인과 시, 그리고 시인을 사랑한 여인들)을 통해 또 다른 순수에 대한 열망을 그리고 있다. 오늘과 대조되어 두드러지는 순수, 사랑, 낭만이 살아 있는 삶과 그것의 붕괴 그리고 그 처절한 인내의 세월이 함축되어 놀라움을 선사한다.
솔직히 두 여인과 ‘망허’라는 인물의 연결고리가 사뭇 혼란스러웠다. 이야기의 시간과 공간을 헤아리다보면, 뭔가 아귀가 들어맞지 않았다. 도대체 ‘망허’라는 인물은 누구인지, ‘천샹’의 집념과 열정 그리고 예러우와 망허의 사랑이 교차되어 전개되었다. 그 속에 숨겨져 있던 하나의 퍼즐 조각은 결코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고 충격이었다. 무엇인가 머릿속에서 굉음을 쏟아내며 폭발하는 느낌 그 자체였다. 아무래도 ‘천샹’의 내적 붕괴와 그 어긋남에 순간 몰입되면서 이야기의 폭발력을 실감하였다. 장윈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힘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작가인 듯하다. 어느 한 순간의 폭발력이란, 그 에너지의 원천이 무엇일지 궁금할 정도였다.
낭만, 순수성을 잃고 살아가는 현세대에게 자신의 깊은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순수’와 ‘낭만’을 회복하자고 속삭이고 있다. 어느 한 곳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허겁지겁 내달리기 바쁜 우리에게 그의 속삭임은 잔잔한 울림이 되어 마음 속 깊이 따스한 온기의 불씨를 심어 주었다. 격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슴 깊이 애잔함이 스며들지만 이내 평온함을 되찾고 한결 여유로워진다.
잔인한 아름다움 속에 깃든 순수와 열정을 찾아 인생의 길 위에서 방랑자가 되어보면 어떨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안, 두려움마저도 제 것으로 만들어 사랑과 순수를 향해 달릴 수 있는 용기를 마음속에 꾹꾹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