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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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금씩 스며들던 유쾌함과 벅참을. <소년을 위로해줘>는 익숙하면서 뭔가 참신함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할까? 봄 햇살 끝, 새초롬히 새싹을 막 틔운 작은 연초록빛 물결이 펼쳐진다. 추운 겨울 뒤에 찾아든 가슴 벅찬 반가움과 설렘 그 자체!? 쉽게 정리가 되지 않지만 숱한 감정들 중에서 행복하고 선한 기운들이 한 가득 손끝으로 스며들었다.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연우라는 인물이 중심이 되어, 엄마와 엄마의 애인 그리고 새학기 전학을 하면서 만나게 된 인물들(태수, 채영, 마리)과의 사랑, 우정을 그리고 있다. ‘연우’라는 인물의 풋풋함과 반듯함, 의젓함이 불안정하고 방황하는 다채로운 인물들 사이에 무게 중심을 꽉 잡고 있다. 그리곤 십대의 상큼한 사랑과 다소 거친 듯이 끈끈한 우정이라는 두 개의 평행선이 탄탄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끊임없는 혼란, 방황, 갈등 속에서도 ‘뻔’할 수 있는 소재는 이미 그 십대의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쳐버린 우리에게 진한 그리움을 물들인다. 학창시절의 추억할 수 있는 타임머신의 연료를 가득 싣고 이 한 권의 벗과 함께 즐거운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선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느새 나도 어쩔 수 없는 틀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세대를 달리하는 지금의 십대들의 생각을 엿보면서 ‘나’란 존재를 어디에 끼어 맞춰야 할지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미숙하고 여전히 혼란 속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어른의 탈을 쓴 채, ‘연우’,‘태수’,‘채영’,‘마리’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보다는 그들의 생각을 재단하게 판단하기 바빴다. 그들의 목소리에 최대한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어떤 틀, 관념이란 것은 빗장을 잠근 채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빌린 듯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리고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채영의 아빠’가 된 것일까? 자신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권위라는 갑옷으로 무장하고 뻣뻣하게 서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지난 십대의 모습을 추억하며 함께 감정을 나누기보단 이야기 속 신민아(연우의 엄마), 태수엄마, 재욱 형, 채영의 아빠, 엄마 등의 부모세대의 모습에 나 자신을 투영하면서 과연 어떤 부모가 되어야할지, 되고 싶은지 깊은 시름이 찾아들었다. 이것은 분명 나를 찾아가는 또 다른 길임엔 분명하지만 왠지 서글펐다. 그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고 가볍고 유쾌하게 그들을 이해할 순 없는가?

 

‘음악’이 매개가 되어 미지의 신세계가 열린다. 여름, 가을, 겨울,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순환 위에 낯선 세계로 향한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 곳엔 첫사랑, 상처에 대한 두려움, 오해, 이별, 상실, 죽음, 갈등 등의 갖가지 감정들을 겪게 된다. 다양한 사건들 중에서 하프마라톤을 달리는 연우의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열일곱 살 연우는 하프마라톤을 달린다. 그리고 그 힘들고 고된 순간순간 스치는 숱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생중계한다. 다리의 고통, 어깨의 통증 그리고 순간의 희열과 자부심은 앞으로 살아간 삶에 대한 의지의 또 다른 표현처럼 느껴졌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숨을 조절하면서 ‘더 달리 수 있다’는 자신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나’ 라는 전 존재를 오롯이 느끼며 혼자 짊어진 채 달려야 한다는 명쾌한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강해지는 기분을 뼈 속 깊이 각인시킨다.

또한 그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연우는 왁자지껄 고등학생들을 보면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무엇을 잃게 될 수 있는지 최후의 상황까지 상상’하라고 충고한다. 이는 한 걸음 벗어난 자의 여유로운 호기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마음의 목소리인 것이다. ‘딱 한 번의 충동과 잘못된 판단, 그리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치명적 결과에 대해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라’고, 스스로 단근질하라는 일침도 잊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른다. 많이 다르면서도 눈에 익은 ‘상실과 사랑’의 또 다른 버전이랄까? 다만 훨씬 풋풋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밝고 새벽 공기처럼 시원하고 맑다. 소년을 위로해줘! 과연 내가 소년을 위로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내 안의 소년은 충분히 위로받았을 것이다.

여전히 멀찍이 물러나 관망하는 자세를 견지할 수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내면 깊숙이 자리한 위선, 편견의 틀을 인지하고 그 낡은 갑옷을 던져버리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내려쬐는 봄 햇살의 설렘을 가득 안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아닌 용기와 열정이란 작은 씨앗을 심게 된다. 어느새 <소년을 위로해줘>는 밝게 비쳐드는 햇살 아래 살포시 싹을 틔우려는 작은 꿈틀거림과 움틀거림으로 마음을 간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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