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이광숙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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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과 게르만족과의 관계는 토이토부르그에서 바루스의 로마군단이 전멸 하면서 소원해졌다. 물론 그 이전에도 로마인들이 보는 게르만족은 야만의 범주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즉 한수 아래로 평가되던 게르만족에게 정예의 로마군단이 전멸한 사실은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게하였다. 이런 자존심의 상처는 로마가 애써 게르만족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서 얼마간 상쇄될 수 있었지만 그 내부 깊숙한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았다. 실제로 로마는 자신의 제국영역을 게르만족의 심장부인 엘베강까지 진출시키려고 했지만 바루스의 패배로 라인강에서 멈추고 말았다. 이 미완성의 역사가 게르만족을 미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로마 영역의 바깥에 위치한 게르만족은 세련된 로마인이 볼 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민족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세련되지 못한 모습이 전성기의 로마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잃어버린 과거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였다는 점은 역사의 모순이라고 할 수있다.


타키투스는 게르만족의 검소함과 용맹함과 도덕성을 자신들이 찾아야할 미덕으로 칭송하고 있는데 이런 질박 강건한 게르만의 모습은 현재 독일 민족에게도 본받아야 할 점으로 칭송되고 있다. 당시 로마는 초기의 검소함에서 벗어나 사치와 향락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는 영토의 확장에 따른 식민지에서 다량의 경제적 부가 유입됨으로서 로마인들은 과거와 같은 검약을 미덕으로 여겨야할 이유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이 책의 저자인 타키투스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여겨졌던 것이다. 자신들의 자랑스런 선배인 카토가 불과 2세기전에 하인들과 같이 조악한 식사를 하며 직접 소를 끌고 밭을 갈면서 이룩한 로마의 영광은 이제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타키투스는 이 책을 자신들의 세대와 후세대가 추구해야할 가치를 담은 기록으로 남기려 했는지도 모른다. 로마가 더이상 나약해 진다면 게르만족이 제2의 로마가 되어 자신들을 제압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타키투스는 이 저서를 기록해 나갔던 것이다. 이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게르만족은 현 도이칠란트민족의 조상이다. 이들의 모습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규율적인 독일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게되면 놀랄 수도 있다. 이것은 하나의 민족이 갖고있는 성격은 단시일내에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로마의 경우에서처럼 그 강인한 민족의 성격이 문명의 세례에 의해 단시간에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우리에게 알려준다. 역사의 법칙에 있어서도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됨을 알 수 있다. 결국 타키투스의 후손들은 이 책의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의 뒷문을 열고 들어온 게르만족에게 제국의 명줄이 끊기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음은 역사의 사실이다. 그 게르만족을 만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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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증거
데이비드 피셔 지음, 형선호 옮김 / 김영사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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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FBI의 범죄과학연구실Criminal Laboratory의 범죄수사에 관한 기록이다. 범죄의 과학적 수사는 우리 경찰의 영원한 과제이지만 작금의 현실을 보면 '대한민국은 좁은 땅이기 때문에 뛰다보면 범인이 잡힌다'는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는 식의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수준높은 미국의 범죄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경찰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범죄 관련 소식을 보면 피의자의 임의동행이 폐지되고 변호사가 입회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백은 재판에서 써 먹을 수 없다는 식의 미국식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찰은 이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이 책은 앞에서 저자가 말하듯이 '살인과 과학이 만나는 것'에 대한 기록이다. 얼마나 근사한가?  살인과 과학이 만나다니.... 화성연쇄살인산건의 초기 현장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우리 경찰의 과학력이 5년만 선진화 되었어도 그 범인은 쉽게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체모/섬유, 지문/혈흔/DNA, 문서/필적/암호/발자국, 독극물/마약, 사진/비디오/거짓말 탐지기, 재료/성분, 폭발물, 총기/공구 등으로 나누어 범죄의 모든 가능성을 조사하고 검토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범죄의 윤곽이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은 범죄는 과학이라는 그 말 자체를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은 과학적 수사방식을 설명하면서 박스 기사로 그 주제와 연관되는 사건을 집어 넣어 읽는 사람들의 흥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특히 체모/섬유편의 '키키 카마레나 사건'은 범죄의 현장이 멕시코임에도 이를 해결하는 사건 담당자들의 과학적 방법은 우리를 감탄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물론 폭발물 편에 언급된 유나 바머의 경우 그의 편지에 사용된 용어를 분석한 결과 그가 사회학이나 인류학을 전공한 사람이라고 추측했지만 그는 수학자였고 그에 대한 전반적인 인물구성이 실패했음에도 대략적인 윤곽이 지식인쪽으로 그려진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생각한 것은 이제 우리는 범죄 수사에 박두만과 같은 경찰 보다는 서태윤 혹은 길 그리섬과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런 것이 국제화가 아닌가....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콜린 윌슨의 잔혹, 살인의 철학


    노용면의 자살이냐 타살이냐


    카를 부르노 레더의 세계 사형백과


     유영찬의 법과학과 수사....등을 읽어 보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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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나남신서 29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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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이전의 형벌은 신체형이 일반적이었다. 신체형은 사형.자유형.재산형으로 구분된다. 사형은 말 그대로 목숨을 빼앗는 것이고 자유형은 강제노동을 수반하는 노역형이며, 재산형은 벌금형이다. 이것은 서양의 경우에도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것은 범죄자를 일반인들과 격리하는 근대 이후의 구금형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푸코는 신체형에서 구금형으로 변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이것이 인간의 자유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푸코는 그의 저서인 '광기의 역사'에서도 국가의 개입에 의해 소외자들이 어떻게 격리되어가는 가를 고찰하면서 이 격리는 사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음을 증명하였다. 우리는 공산체제하의 구소련에서 반체제인사들이 강제수용소보다는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고통을 받았던 많은 사례를 알고 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감옥과 병원의 예를 들면서 그 구조상의 특성이 유사함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라는 영화에서 레취드 간호사의 위치를 알고 있다. 그녀는 항상 환자들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환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완벽하게 보인다. 그러나 환자들은 그녀를 볼 수 없다. 다만 그들의 위치에 따라 그녀를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감시당하는 쪽에서는 언제나 긴장감을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병원과 감옥은 국가기관의 완벽한 통제를 과시하는 하나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푸코는 이런 시설물 안에서 재교육을 통해 인체를 순종적으로 길들이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의 법칙이 이용된다. 조건반사의 법칙은 쉽게 말하면 세뇌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국가가 개인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갖추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푸코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곳-예를 들면 시간표-에서 감시와 처벌의 흔적을 발견해 낸다. 학교라는 장소 또는 기숙사라는 장소에서 시간표와 획일화된 규칙은 순종적인 인간을 양산해내는 공장으로 본 것이다. 이것이 국가 전체로 확대되어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푸코의 책을 읽으며 항상 느끼는 것은 그 하나의 부분적 사실을 읽다 문득 그 뒤에 숨어있는 거대한 하나의 실체를 볼 때 경악하게 되는 모습이다.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진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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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의 세계사 보르헤스 전집 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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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렌 데이튼의 '아이언크로스'란 소설을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이차세계대전이 독일측의 승리로 끝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가상의 역사를 읽었을때 그것은 역사의 다른 축이라고 느꼈다. 역사의 기록은 언제나 승자가 패자에게 보내는 묘비명과 같은 것이었다. '여기 ***가 누워있노라. R. I. P'라는 식의 기록은 승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당하지만 패자의 입장에서는 미흡한 것이다.

그 다른축을 보르헤스에게서 다시 느꼈다면 과장된 것일까.  보르헤스에게 있어서 실제와 허구의 차이는 무의미한 것이다. 실제가 허구가 될 수도 있고, 허구가 실제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가 자유롭게 구사하는 여러 문헌들의 인용이다. 이것을 통해 그는 독자들에게 환상적 사실주의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는 절대로 완결될 수 없는 세계이다. 환상의 세계는 순환의 세계이지 결말이 드러난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르헤스의 소설을 읽을 때 환상과 사실간의 간극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드믄 드믄 나타나는 각주는 그 모든 것을 모호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르헤스의 각주를 읽는 순간 자신이 지금까지 읽고 있는 세계가 사실인 것처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사실은 어떤 결론에 이르지 않고 매듭지어질  때 허구의 세계속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느끼게 된다. 그 세계는 환상과 사실의 중간에 있는 나 자신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지독한 패러디의 세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풀어진 넥타이 같은 꾸부러진 길을 지나 일광의 폭포속으로 사라지는 열차도 없고,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와 같은 낙엽도 없다. 여기에는 불한당이란 실제와 역사라는 환상이 공존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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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의학의 탄생
미셸 푸꼬 지음 / 인간사랑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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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분류의학이 어떻게 임상의학의 시대로 변환되어 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변해가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임상의학 이전의 시대는 외적인 유사점을 통해 질병의 본질을 유추하는 분류의학의 시대였다. 이 시기는 아직 인간 내부기관의 상호관계는 고려되지 않고 있었다. 이 시대는 질병이란 치유되어야할 대상이 아니었다. 이는 질병이 존재론적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질병과 인체기관간의 상응관계로 파악되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치료방법이 제시된다. 그러므로 의사는 질병을 증상으로 파악하도록 길들여지게 된다. 이는 증상을 보고 질병을 확인하는 임상의학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전의 사회는 의학적 공간과 사회적 공간이 혼합되어 있는 사회였다. 영혼을 감시하는 사제와 육체의 건강을 관리하는 의사는 서로 동일한 주제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질병은 믿음의 차원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질병이 만연될 때 대책은 전무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분류의학의 체제 속에서 전염병으로 막대한 고통을 받았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체제의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했다. 이 과정은 프랑스 혁명으로 가능하게 되었고  이후 의학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사람들이 건강한가에 대한 관심은 점차 정치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되면서 구조의 굳건함으로 관심이 이전되게 되었다. 즉 정부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는 의학적인 시스템의 구조를 견고하게 구축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흘러가게 된것이다. 이 결과 정책자들의 관점에서 몸이 건강하다는 것은 구조가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변질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집산화 과정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도표상의 수치는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제이며 의사였던 신분의 형식이 행정관이며 의사인 신분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었다. 이런 체제에서 우리는 크로닌의 소설에 나오는 그런 의사들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행정관이며 의사인 체제는 하나의 체제속에 환자들을 편입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병원 내부에서도 환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있도록 질병의 종류별로 병원을 세분하는 방식이 도입되게 된다. 이와함께 의사의 자격 또한 국가에서 관리하게 함으로서 질병에 대한 국가의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이 성립될 수 있었다. 이로서 현대적 임상의학이 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지게 되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이를 시행한 집단이 군대라는 사실은 임상의학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게 한다.


병원과 질병이 세분화되고 난 뒤에 이제는 의사들을 세분화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국가에서는 의사의 종류별로 자격시험을 도입하고 이에 맞추어 병원에서는 의사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로서 의료기관의 국유화(?)는 완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국가의 통제에 의해 완벽한 구조를 갖게된 임상의학은 하나의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과연 의학은 진료를 필요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칠 수 있는가였다. 부자는 언제나 양질의 진료를 받지만 가난한 자는 그렇지 못한 것은 의학이 집산화되면서 일어난 변화 가운데 하나였다. 결국 이런 상황은 의학이 수익집단으로 변모하게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더 이상 죽음이나 질병을 자신의 삶 가까이에 두고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실감하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 죽음은 임상의학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질병의 명학한 해부를 통해 그 증상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으로 한정시킨다. 이것을 의미하는 단어는 '징후'이다. 의사는 본질을 보지 않는다. 오직 징후만을 살펴볼 뿐이다. 징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의학기구가 청진기이다. 청진기는 해부하지 않고도 속을 볼 수 있는 대체물이다. 이것을 통해 의사들은 우리의 몸을 진찰한다. 의사는 청진기의 도움을 받으며 시각.촉각.청각을 통해 징후를 포착한다. 결국 징후는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없는 비가시성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볼 수 없는 세계는 모든 개인을 질병의 분류속에 혹은 징후 속으로 집어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결과 개인은 전체속으로 완벽하게 편입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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