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경잡기 - 원전총서 ㅣ 원전총서
유흠 지음, 김장환 옮김 / 예문서원 / 1998년 10월
평점 :
책에도 인연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인 것 같다. 내가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世說新語>의 번역자인 김장환 교수가 번역한 책이니 말이다. 읽다보면 뭐라고나 할까 한 전문가의 특징이랄까, 버릇이 보이는듯 하다. 그래서 더욱 편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번역문과 원문, 역주와 참고가 알차게 정리되어 있는 이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백과사전과 같은 무게를 느끼게 한다. 세설신어가 <魏晉南北朝>시대의 이야기라면 <西京雜記>는 漢왕조 중에서도 전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진의 통일로 중국이란 제국의 몸체가 형성되었다면 전한 시대는 이 몸통에 그들만의 살과 피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바로 이런 시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뛰어나다 하겠다. 특히 이 책은 정사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역사의 뒷이야기를 많이 전하고 있는데 그 사실성으로 인해 사료적 가치까지 지니고 있다. 이런 사실성은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67년 하북성에서 한의 중산왕 유승 부부의 묘지가 발굴되었을 때 이 책의 22편에 기록된 내용의 장례용품과 똑같은 유물이 발굴됨으로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더 빛나게 되었다.
이 책 역시 아주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 주석의 분량은 원문의 몇 배에 해당할 정도이다. 한자의 세계가 오묘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서한시대는 우리에게 武帝로 인해 어느 정도 알려진 시대라 할 수 있다. 무제가 순체와 양복이란 장군을 보내 고조선을 정벌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이 시대는 우리의 역사와 아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헐린 중앙청 건물이 중앙박물관이었던 시절, 가끔 오후에 강의가 없는 시간이면 그곳에 들러 백제,고구려,신라를 이리 저리 돌아다니던 경험이 있다. 이때 금으로 만든 팔찌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는데, 팔찌에는 무려 7마리의 용이 돋을 새김으로 조각되어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용을 구별하기 위해 비취옥을 아주 작게 깍아서 용의 눈에 박아 놓은 것이었다. 그 현란한 조각팔지에 잠시 멍했던 기억이 있는데 출토지는 <평양, 낙랑시대>라고만 되어 있었다. 한의 문명은 요동을 건너 한반도에까지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의 손이 아닌 일본의 사학자들의 손에 의해 발굴됨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많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이 결과 우리는 정확한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많은 유적의 손실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 잃어버린 시기의 역사는 이렇게 중국의 사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소한 기록이 고고학적 발굴로 인해 사실임이 드러날 때 그 사소한 기록은 그 당시를 밝혀주는 유일한 문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단재 선생의 <조선 상고사>에서 한마디를 끌어다 적고 글을 마칠까 한다.
<안정복이 동사강목을 짓다가 개연히 내란의 잦음과 외적의 출몰이 東國의 古史를 흔적도 없게 하였음을 슬퍼하였으나, 나로서 보건데 조선사는 내란이나 외적의 전쟁에서보다, 곧 조선사를 서술하던 그 사람들의 손에 의해 더 없어졌다고 본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하면 역사란 머리에 쓴 말과 시간적 계속과 공간적 발전으로 되어 오는 사회 활동 상태의 기록이므로 때時. 곳地. 사람人 세가지는 역사를 구성하는 세 가지 큰 원소가 되는 것인데 이 원소들이 올바르게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