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시간의 딸 동서 미스터리 북스 48
조세핀 테이 지음, 문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유럽의 중세시대에 관심이 많다보니 그와 관련된 서적이라면 종류를 가리지않고 읽어대는 습성이 있다. 이 책도 그 와중에서 아주 일찍 발견해낸 책이다. 사실 이 책은 1977년 발행되기 시작한 <동서추리문고>시리즈의 123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장미전쟁에 대해서 아주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조세핀 테이 여사의 작품인 <시간의 딸>은 잉글랜드의 중세시대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다. 그리고 장미전쟁에 개입한 귀족가문의 인척관계를 안다면 더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솔직히 이 작품은 숨겨진 역사를 찾아가는 그 과정속에서 역사적 상식과 사실의 간격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우리는 많은 역사적 허구를 진실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 허구를 한겹씩 벗겨낼 때 역사에 대한 혜안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이런 경우를 소설을 통해서 얻는 것은 상당히 드믄일이다. 오히려 소설을 통해서는 가정의 역사가 주입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색다르다 할 수 있다.

<시간의 딸>은 잉글랜드의 중세시대의 마지막장을 담고 있는 추리소설이다. 잉글랜드의 중세는 백년전쟁의 영광이 스러져가면서 귀족들의 내란인 장미전쟁을 통해 막을 내리게 된다. 바로 그 황혼의 이야기를 역사적인 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우리에게 장미전쟁은 흰장미와 붉은장미로 상징되는 낭만적 이미지가 강하게 풍긴다. 하지만 그 내막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잉글랜드를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한 집안(가문)의 미래가 달려있던 전쟁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귀족들이 양측으로 갈려져 혈투를 벌였을까?  그것은 로얄 패밀리인 두 집안의 얼키고 설킨 혼인으로 인한 불가피한 것이었다. 장미전쟁의 시발점인 에드워드 3세는 적자 14명에 서자 4명을 포함하여 무려 18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들이 형성한 혼맥은 잉글랜드 지배계급의 권력구도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어쩔수 없이 장미전쟁의 양상은 일반 농민들은 제외된 채 귀족들만의 전쟁이 되었던 것이다.

가문과 가문이 뒤엉킨 전쟁에서 자비란 어찌보면 사치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랭카스터나 요크가의 왕들은 집권을 하면서 자비보다는 냉혹함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공고한 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다만 요크가의 마지막 왕이었던 리차드 3세만이 적에게도 관용을 베풀어 그동안의 관례를 깨버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 관용의 덕을 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 관용으로 인해 자신의 목숨은 물론 요크가문까지도 역사의 패배자가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점에서 보면 정치에서 관용이나 화합이란 밖을 의식한 미사여구일뿐이란 사실임이 고래로부터 증명된 셈이다. 그래도 그것을 믿었던 한 사람인 리차드 3세는  결국 역사라는 거대한 어머니의 잃어버린 <시간의 딸>이 되었을 뿐이다.  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나는 모험에 프루스트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귀족들 스스로의 분란으로 몰락을 자초한 다음 그 뒤를 이어 권력을 잡은 사람이 절대왕권시대를 개막하는 헨리 튜더였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역사의 팁 하나 : 잉글랜드 귀족들의 성 앞에 붙는 Fitz-란 단어는 왕의 서자의 성앞에 붙이는 명칭이라고 한다. 이런 예는 영국 왕실의 역사에서 FitzRoy, FitzHenry, FitzJohn등으로 나와있다. 현대의 경우에는 John F. Kennedy의 성에서 F가 Fitzgerald로 되어 있다. 아일랜드계인 케네디가의 역사적 흔적을 알 수 있는 단어라 하겠다. 단 이 접두사를 붙일 때는 부친의 성이 아니라 이름에 붙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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