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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몸의 역사
자크 르 고프 외 엮음, 장석훈 옮김 / 지호 / 2000년 11월
평점 :
품절
유럽 중세의 역사에서 신체는 항상 애물단지였다. 육체는 언제나 정신을 담는 그릇의 위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신을 보호하고 훼손시키지 않는 방어벽으로서의 신체관은 중세 특유의 사고방식을 낳았다. 즉 육체의 고행을 통해 정신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은 중세뿐만이 아니라 현대에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근거는 육체란 썩어 없어질 존재이고 정신은 영원불멸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아주 자명한 것이다. 정신만이 온전하다면 육체는 훼손되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의 치료법은 동양의 의학이 추구하는 몸과 기의 조화를 통한 정신적인 요소보다 육체의 한 부분을 통해 악의 기운을 끌어내는 절개의 방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는 서양의 의술이 해부학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육체에 대한 유럽의 관점은 데카르트의 합리론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수정이 되지만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위는 결코 해소되지 않았다. 이는 유럽의 정신사에서 그 이후에도 육체적 고행을 강조하는 <얀세니즘>이 교회의 단죄를 받은 것만을 봐도 그 뿌리가 아주 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육체가 어떻게하여 정신을 담는 그릇의 위치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을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유추할 수 밖에는 없다. 현대의 의학에 있어서 육체를 훼손하는 치료법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있다. 오히려 서양의 의학도 동양의 조화를 통한 치유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는 육체와 정신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의 진정한 이해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육체 훼손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야만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이런 방식이 당시에는 최고의 기술이었다는 사실 또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사고방식에 있음을 알게 된다면 이 책을 어느 정도 편안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육체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서구사회는 일찍부터 격리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들과 육체적으로 다른 인간들을 일정지역에 격리 시켰는데 이는 푸코가 감시와 처벌이나 광기의 역사에서 택했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시대를 통해 질병에 대한 대처방식이 개선될 때마다 인간의 육체에 대한 이해도 역시 진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런 진보가 어우러져 하나의 완벽한 인간관을 형성할 때 우리 몸의 고통은 끝나는 것이고 긍국적인 해방에 이르는 것은 아닐까?
*사족: 이제 육체가 정신의 그릇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물론 일부 종교적 광신론자들에게 있어 이 문제는 지금도 매우 심각한 것이고 유효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현대의 모습 역시 과도한 성형에 의해 육신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즉 의식이 개화되었지만 인간의 욕망이라는 변수가 개입하게 되면 육체는 계속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