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영광
그레이엄 그린 지음, 이동진 옮김 / 해누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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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권력과 영광은 얼마나 대조적인 단어인가. 세속의 인간들은 이 둘을 한꺼번에 얻기 위해 치열한 삶의 정글 속에서 투쟁한다. 하지만 세속의 인간들은 생의 마지막에 하나의 진실을 느낀다. 권력과 영광은 결코 같은 주머니에 담겨진 주사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권력과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유혹을 받을 때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이다. 악마가 예수를 데리고 높은 절벽으로 데리고 가서 말한다. 여기서 뛰어내린다면 이 세상의 왕국을 너에게 주겠다. 이때 예수는 악마야 물러가라는 일성으로 유혹을 물리치고 신의 아들로서의 길을 걸어간다.



여기에 나오는 神父는 그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다. 사제로서 독신의 서약을 어기고 간음을 통해 딸까지 두고 있으며, 이로 인해 알콜 중독에 빠져있는 불쌍한 인간일 뿐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이 신부에게 어떤 종교적인 품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신부 역시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타락하고 무력한 행동을 함으로서  그대로 보답한다. 그에게는 <너는 거룩한 멜키세덱의 사제로서...>의 모습은 서품받을 때의 아련한 기억일 뿐이다. 현실의 모습은 타락하고 늙어가는 신 앞에 선 불쌍한 인간이다. 이런 사제에게서 신도들은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이때 정부에서 종교를 금지하고-여기서는 가톨릭-사제는 의무적으로 결혼을 해야한다는 법령을 발표한다. 이 대목에서는 프랑스 혁명시기 혁명정부가 교회를 박해하던 모습이 연상된다. 사제들은 정부의 뜻을 따르거나, 처형되거나, 국외로 망명하는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다. 정부의 뜻에 따르는 자는 배교자이교, 망명한 자는 자신의 순수함은 지켰지만 신도들과 교회를 지키지 못한 비겁한 자이다. 그리고 사형을 당하는 사람은 순교자이지만 남겨진 신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남아있는 신도들은 당연히 주정뱅이 신부가 정부의 뜻에 따라 결혼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로 이때 그 주정뱅이 사제에게 그 무엇이 자각된다. 그는 타락의 절정에서 그 타락을 확고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는 순간에 자신의 순수함을 지켜나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두 번 자신을 더럽힐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영혼의 모독은 한 번이면 족하다는 뜻일까. 어쨌든 그는 그 자각의 순간부터 정부의 뜻을 거슬러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신자들의 아픈 영혼을 위로해 준다. 이 얼마나 거룩한 모순인가. 종교가 사라진 그 시대에 교회의 숨결이 사제의 독신서약을 어기고 알콜에 찌든 한 무력한 인간-신부-에 의해 지탱되어야한다는 그 거룩한 모순. 사제는 여기서 신의 의지라든지 소명이라는 거창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자신이 거기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잠시 잊었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을 싸구려 삼류소설로 타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쐐기가 된다. 오히려 이 타락했던 사제는 현실의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오히려 그 아무말 없이 받아들임의 모습에서 <그들이 예수를 채찍질 했으나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이런 그에게 최후의 선택이 다가온다. 한 신부가 돌아다니며 신도들을 위해 미사를 거행한다는 소문을 듣고 정부는 신부의 목에 거액의 상금을 걸어 놓는다. 이 상금을 노린 사나이가 신부의 거스릴 수없는 고해성사의 의무를 이용해 그를 정부의 손아귀로 끌어들인다. 신부는 그것이 함정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아니 거짓일지라도 자신에게 맏겨진 신자의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기에 그는 그곳으로 간다. 자신의 목숨이 걸려있는 곳일지라도 말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선택한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사생아의 아버지이자 알콜중독자인 타락한 사제가  아니라 진정한 사제로서 죽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그가 그토록 원했던 서품 받을 때의 그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종말...이제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뒤의 일은 그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는자신의 마지막을 인간이 아니라 신에 맏겼다는 그 자체로 행복하였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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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 남도 - 온누리신서 17
노민영 / 온누리 / 198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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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남쪽에 외로운 섬 하나가 있었다. 이 섬은 육지가 그리워 하늘님께 빌고 빌었다. 마침내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이 섬의 봉우리가 1천개가 된다면 육지와 붙여주겠다>는... 섬 사람들은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섬의 봉우리를 세어 나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섬은 하늘님이 약속한 숫자보다 하나가 적었다. 그래서 외로운 섬은 그대로 남게되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제주도. 제주도의 뭍을 향한 그리움과 소외감이 진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라 하겠다. 오래전에 제주도 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섬에서는 <제삿날이 한 날인 집이 많다>라는 흘러가는듯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의 뜻을 처음에는 어부가 많기 때문에 그런것이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언뜻 스치는 생각이 있어 조심스럽게 <4.3>이란 단어를 꺼냈을 때의 당혹스런 표정은...



<잠들지 않는 남도>의 남도는 南道가 아니라 南島이다. 이 섬에서 48년 4월 3일 시작된 항쟁은 무려 8년의 시간을 역사 속에 각인시켰다. 제주도는 우리의 국토이지만 특이성을 지닌 땅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한 대신 토호들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일반 민중들의 고통은 다른 지역보다 더욱 가혹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주도는 중앙정부의 유배지로서 활용되었기에 이 지역은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중앙의 실패한 지식층들이 쉴새없이 드나듬으로서 사상적으로는 자주적인 면을 띠게되었던 것이다. 이런 자주성은 부패하고 무능한 중앙의 지방관들이 지역의 토호들과 결탁하여 가렴주구를 일삼을 때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단결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제주도는 자신들의 주장을 외치기에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또 하나 제주도는 섬에서 필요한 모든 식량을 육지에서 반입해야만 하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이면서도 자주적이면 독립적인 국가로 나아가지 못한 가장 큰 짐이었다. 이렇게 제주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민 전체가 하나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성향은 제주도에 가톨릭 선교사들이 처음 상륙하였을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일년 동안 선교를 하였지만 섬 주민의 1%만이 개종을 하였을 뿐이었다. 이런 전통에 대한 보수성은 중앙정부의 통제가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더욱더 반발하게하는 하나의 동인이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제주도의 비극은 섬의 고립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격하는 자는 끊임없이 충원될 수 있는 잇점이 있지만 방어자는 철저하게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전략적 약점이 극한 투쟁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제주도에서의 전투는 방어자의 입장에서는 퇴로가 없는 결사전이었던 셈이다. 항복하면 재판을 통해 합법적으로 죽지만, 투항하지 않으면 살해당해야만 하는 선택 속에서 제주도민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은 저항이라는 길밖에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결과 섬에서의 항쟁이 무려 8년을 끌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섬 전체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투쟁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여기서 좌익과 우익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좌익은 우익에게 우익은 좌익에게 살아남은 자는 군경에게 살해당하는 과정에서 제주도에서 색의 구분은 무의미해진 것이다. 결국 죽은 자들은 흐르는 피의 색으로 구분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제주도의 또 다른 비극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제주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하면서 취한 전술이 시험된 장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일정한 마을을 한 단위로 묶어 방어하게하는 전략촌개념과 전술지역에서의 무차별폭격과 같은 것은 월남전에서 그대로 시행되었다. 하지만 이런 무자비한 진압작전이 별 효용이 없다는 점과 민간인의 피해가 급증함으로서 민간인들이 반군의 편으로 돌아선다는 당시의 분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속 밀어붙인 것은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전술적 실책은 월남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므로서 민간인의 희생이 급증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제주도의 4.3항쟁은 제3세계국가와 강대국간의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초의 충돌이었다.



이 책은 미국의 존 메릴 교수의 박사논문인 <제주도 반란>과 사건의 당사자이며 일본에 거주하는 김봉현씨가 기록한 <제주도-피의 역사>를 편역한 것이다. 존 메릴의 논문은 완역하였지만 김봉현의 기록은 감정적이거나 논리가 비약된 곳을 삭제하고 기록하였다고 편역자는 밝히고 있다. 두 책의 제목에서 보듯 제주도의 4.3항쟁은 두 집단간의 평가가 상이한 관계로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3년 10월 31일 정부는 제주도 4.3사건과 관련하여 무고한 양민이 학살당한 것에 대하여 사과를 하였다. 이 책이 나오고 무려 1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제주도 4.3은 아직도 진행중인 역사의 사건이라고 보고싶다. 제주도 4.3에 관한 우리측 자료는 거의 전무하다싶이 하고, 오직 미국의 문서고에만 자료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존 메릴의 논문은 미정부의 문서보관소에 비치된 자료를 이용하였다는 점에서 이 사건에 대한 객관적 연구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는 점이다. 반면 김봉현의 기록은 사건 당사자들의 실제적 기록이란 점에서 이 사건을 연구하는 1차적인 자료인 셈이다. 그런점에서 이 책은 제주도 4.3항쟁의 본격적인 연구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라 하겠다. 



*제주도가 육지와 떨어진 또 하나의 전설이 있어 후기에 추가합니다. 옛날에 섬 제주도에 큰 어머니大母神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섬사람들이 어머니에게 빌었다고 합니다. 제발 육지와 붙여 주십시오. 큰 어머니는 이들이 불쌍해 천으로 제주도의 하늘을 모두 가리면 붙여주겠다고 했답니다. 섬사람들이 모두 합심해서 베를 짜서 하늘을 덮었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틈이 있었다는군요. 큰어머니가 이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고쟁이를 벗어 그 부분을 가려주었지만...고쟁이의 그 부분만큼 모자랐다는군요... 그래서 제주도는 섬으로 남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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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중세의 삶과 생활
로베르 들로르 지음, 김동섭 옮김 / 새미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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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세 유럽을 다루고 있지만 저자는 유럽이 아닌 Occident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동양을 의미하는 Orient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지리적 대립어이다. 즉 오리엔트가 레반트지역의 동쪽에서 이란에 이르는 선이라면 옥시덴트는 프랑스,잉글랜드, 독일, 이베리아반도, 스칸디나비아 諸國, 폴란드와 헝가리의 일부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즉 들로르가 말하는 중세의 유럽은 그리스어권과 슬라브어권이 제외된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는 중세의 어느 한 시기를 선택하여 한 주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의 전체적인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중세 유럽을 규정하는 단어는 신분제와 장원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역시 이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주제를 다루기 전에 1장과 2장에서 중세 유럽의 환경과 의식구조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물론 역사를 환경에 의거하여 기술한 책-녹색세계사-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들로르는 환경에서 중세적 환경과 인간과 환경, 중세인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후와 농사와의 관계, 그리고 중세와 현재의 환경을 비교하고 그 환경 속에서 어떻게 중세인들의 사고방식이 형성되어가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두번째장에서는 중세인의 시.공간관, 세계관, 기호와 상징체계, 교회와 가족의 관계 등을 설명하고 있다. 즉 중세의 소프트 웨어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개의 장이 중세를 바라보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들로르는 아날학파의 중세를 보는 시선을 긍정하면서도 그 좁은 시야로 인해 중세의 모습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하고 있다. 그래서 드로르는 중세에 대한 개략적인 가이드-하지만 아주 중요한-를 책의 맨 앞에 위치시켜 놓은 것이라고 본다. 이 개괄적인 중세의 모습을 통해 세 위계인 농민, 기사, 성직자를 바라보면 그 전체적인 상호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중세의 새로운 계급인 상인계급과 상업활동 그리고 도시의 발달을 위치시킴으로서 역사의 연결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의 마지막에 Est ubi gloria nunc Babyloniae(바빌론의 영화는 어디로 갔는가)라고 말한다. 로마의 쇠락을 바빌로니아의 몰락에 견주어 비유하고 있는 이 말은 현대의 우리들이 중세를 바라보는 눈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하지만 들로르는 <중세 사회는 이윤보다 상품의 품질이 우선되었고, 우애가 집단에서 중시되었으며, 개인 재산보다도 공동 재산이, 또한 사양심과 집단 의식이 일의 試圖 및 개인보다 앞서는 사회였다>로 끝맺고 있다. 이 차이가 소설과 역사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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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살인 - 범죄소설의 사회사
에르네스트 만델 지음, 이동연 옮김 / 이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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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트 만텔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수탈된 대지를 읽을 때였다. 제삼세계 국가의 경제적 착취를 기술하면서 갈레아노가 많이 참조한 사람이 바로 만텔이었다. 항상 그렇듯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 이름 하나를 더 안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가 즐거운 살인이란 책을 보았고, 작가가 에르네스트 만텔임을 알았다. 그의 프로필을 보니 맑시스트이며 경제학자라고 나와 있었다. 이런 사람이 가장 자본주의적 소설인 추리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겉표지를 싼 표지를 벗겨보니 앞 뒤로 빨간 색이 저자의 사상을 생각하게하는 분위기를 풍기기 보다는 중국집의 發財 복주머니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의도적인 표지를 뒤로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공산주의혁명을 성공시킨 러시아와 중국이 가장 자랑스럽게 서방의 자본주의자들에게 외친 말은 우리의 세계는 <매춘과 범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 말을 의도적으로 크게 외친 것은 공동생산, 공동분배라는 원칙에 입각한 공산주의 사회의 우월성을 과시하기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자본적 잉여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범죄란 어찌보면 덧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러시아와 중국이 내뱉은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는 너희와는 다르다>라는 표현의 다른 색깔이었을 뿐이다. 그들의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자본주의적 사고를 일체 거부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서구의 기준에 적합한 범죄는 일단 신문의 앞머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앞의 설명을 좀 지루하게 한 것은 추리소설이란 철저히 자본주의적 유산이란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기 위해서였다. 즉 자본이 몰리는 곳에 부정과 압제가 있고, 그곳에 저항이 생겨나며,  이 저항 속에서 로빈 훗이라든가 양산박의 영웅들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이상이 아무리 정당하다 할지라도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체제저항자 혹은 범법자일 뿐이다. 민중의 영웅이 체제의 범죄자로 역전되는 것이다. 하지만 체제의 범죄자가 민중에게도 그렇게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호 모순적인 상황이 글로 표현될 때 추리소설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자본이 소수집단에 집중되지 않는 공산주의 사회라든가 빈부의 차가 극심한 제3세계에서는 추리소설이 발생할 빈도가 극히 희박하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차이점을 바탕으로 만텔은 추리소설  속에 나타난 이데올로기를 설명한다. 만텔은 추리소설이란 순전히 자본주의적 발전에 근거한 돈을 따라 움직이는 범죄사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유한계급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일반의 삶과 괴리된 배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실제로 추리소설에 하위층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더라도 배경은 상류층인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즉 돈의 흐름에 따라 범죄도 움직이는 것이다. 돈이 없는 곳에 범죄도 없다는 단순한 추리 역시 단순하게 맞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텔은 추리소설의 이데올로기를 부르조아적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그러면서 만텔은 푸코가 후에 이야기할 권력의 체계화로 나아간다. 범죄가 조직화되고 거대화되면서 이를 전담할 거대한 독립적인 수사체제가 나타나야만 하게 되는 것이다(미국의 FBI와 CIA, 독일의 게슈타포, 소련의 KGB). 이 거대한 수사집단은 결국 하나의 거대한 권력으로 변하게 되고 국가 속의 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이 결과 국가가 하나의 거대한 범죄에 개입하게 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된다는 만텔의 분석은 경쾌하면서도 끔찍하다(CIA의 외국 지도자 암살사건, 소련 KGB의 반체제 인사 암사사건등). 반면 개인적 범죄는 집단화를 통해 몸집을 불리면서 집단을 합법화하는 길로 걸어가게 된다고 보았다. 범죄집단은 불법적인 사업을 합법적인 사업으로 위장하면서 범죄의 세력권을 점차 넓혀가는 것이다. 이렇게 거대화되어가는 국가와 범죄단체는 긍국점에서 만나게 되면서 범죄의 한바퀴 순환이 종결되는 것이다. 만텔은 이 과정을 지적해  나가면서 각국의 추리소설과 범죄소설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이론이 이들 소설 속에서 어떻게 체화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만텔은  이 책에서 자신이 맑스와 헤겔이 사용한 변증법을 통해서 분석을 시도하였다고 하였다. 즉 정-반-합의 관계를 통해 점점 발전해가는 범죄와 그 범죄를 추적하는 수사기관의 거대화를 암시하면서 만텔은 자본주의 사회의 무엇을 보았을까. 만텔은 결론적으로 부르조아 사회가 범죄의 사회라고 단언하였다. 만텔의 결론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범죄적 부르조아 사회의 악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그것이 바로 즐거운 살인의 과정이 아닌가하고... 또 너무 이상하게 나아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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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000년과 서기 2000년 그 두려움의 흔적들
조르주 뒤비 지음, 양영란 옮김 / 동문선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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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중엽 중세기의 가장 매력적이고 흥미있는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인 피오레의 요아킴은 가톨릭의 전통적인 삼위일체 교리를 거슬러 전통적인 삼위일체론이 삼위일체성이 아니라 사성四性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요아킴에게 있어서 성부.성자.성령에 이어 제4성이 되는 것은 교회와 그 지체처럼 윤리적인 집합이었다. 요아킴의 취지는 하느님을 재차 인간을 위해 개방시키고 내재적 삼위일체를 돌파하고 체험의 영역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었다. 요아킴에 따르면 인류는 세 개의 시대 속에서 생활하였다. 첫번째 구약의 시대에 인류는 성부를 대하게 된다. 이 시대는 율법의 시대이며 육신의 시대이며 신도들의 시대이다.  두번째는 신약의 시대로 성자가 지배한다. 이 시대는 제도로서의 교회의 시대요 성사와 성직자들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세번째 시대인 성령의 시대에 의해 소멸된다. 이 시대는 순수한 영성적 시대이며 교회는가난한 자들의 교회가 된다.  요아킴의 이런 주장은 1215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단죄받는다. 하지만 그의 지상왕국의 개념은 후일 많은 시대에 걸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중세의 1000년은 이렇게 천상의 왕국이 지상에 구현될 것이란 희망 속에서 살아온 기다림의 시대였다. 그러기에 중세의 고통받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모든 고통을 새로운 시대가 찾아오는 하나의 징표로 이해하였다. 이런 중세인들의 사고에는 요아킴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깊이 깊이 각인된 하나의 다가올 역사였던 것이다.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구약의 시대. 신약의 시대. 성령의 시대라는 구분에서 이제 자신들이 맞이할 시대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성령의 시대라는 사실은 큰 매력이었다. 그렇기에 중세 유럽의 1000년의 근저에는 유토피아에 대한 농민의 갈망.열망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갈망이 존재하는 한 외적인 고통이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까. 아마도 미미한 정도였을 것이다.


저자는 중세 1000년의 시기를 이야기하면서 기간은 1000년에서 1200년 사이의 유럽을 조명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책에는 두려움과 희망이 혼재하고 있다. 중세인들은 두려움과 희망 속에서도 하나의 징표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혹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상의 종말이 오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때 자신만이 홀로 낙오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으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 신앙적 열성이 페스트를 이기고, 굶주림의 고통을 잊게했으며, 공동체간의 강렬한 유대를 형성하게 하는 힘이었다. 이 위대한 신앙의 힘으로 중세인들은 영광스럽기도 하면서 고통스러웠던 1000년의 터널을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그 터널을 벗어났을 때 자각한 것은 신의 위대함보다도 인간의 정신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런 중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2000년의 언저리에서 컴퓨터 오작동에 대한 고민으로 날밤을 새우던 현대인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들에게 새로운 2000년은 단지 숫자의 바뀜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숫자의 바뀜으로 인해 전에 쌓여있던 모든 문제가 자동적으로 Del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현대인들의 고민은 중세인들의 고민과는 전혀 다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중세인들이 고통의 끝에서 신과 인간의 이성을 믿었듯이 현대인들은 이 시대의 끝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믿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중세인들이 1000년의 언저리에서 느꼈던 불안과 미래에 대한 상상이 희망이었듯이 우리들 역시 2000년의 시작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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