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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중세의 삶과 생활
로베르 들로르 지음, 김동섭 옮김 / 새미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중세 유럽을 다루고 있지만 저자는 유럽이 아닌 Occident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동양을 의미하는 Orient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지리적 대립어이다. 즉 오리엔트가 레반트지역의 동쪽에서 이란에 이르는 선이라면 옥시덴트는 프랑스,잉글랜드, 독일, 이베리아반도, 스칸디나비아 諸國, 폴란드와 헝가리의 일부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즉 들로르가 말하는 중세의 유럽은 그리스어권과 슬라브어권이 제외된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는 중세의 어느 한 시기를 선택하여 한 주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의 전체적인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중세 유럽을 규정하는 단어는 신분제와 장원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역시 이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주제를 다루기 전에 1장과 2장에서 중세 유럽의 환경과 의식구조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물론 역사를 환경에 의거하여 기술한 책-녹색세계사-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들로르는 환경에서 중세적 환경과 인간과 환경, 중세인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후와 농사와의 관계, 그리고 중세와 현재의 환경을 비교하고 그 환경 속에서 어떻게 중세인들의 사고방식이 형성되어가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두번째장에서는 중세인의 시.공간관, 세계관, 기호와 상징체계, 교회와 가족의 관계 등을 설명하고 있다. 즉 중세의 소프트 웨어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개의 장이 중세를 바라보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들로르는 아날학파의 중세를 보는 시선을 긍정하면서도 그 좁은 시야로 인해 중세의 모습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하고 있다. 그래서 드로르는 중세에 대한 개략적인 가이드-하지만 아주 중요한-를 책의 맨 앞에 위치시켜 놓은 것이라고 본다. 이 개괄적인 중세의 모습을 통해 세 위계인 농민, 기사, 성직자를 바라보면 그 전체적인 상호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중세의 새로운 계급인 상인계급과 상업활동 그리고 도시의 발달을 위치시킴으로서 역사의 연결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의 마지막에 Est ubi gloria nunc Babyloniae(바빌론의 영화는 어디로 갔는가)라고 말한다. 로마의 쇠락을 바빌로니아의 몰락에 견주어 비유하고 있는 이 말은 현대의 우리들이 중세를 바라보는 눈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하지만 들로르는 <중세 사회는 이윤보다 상품의 품질이 우선되었고, 우애가 집단에서 중시되었으며, 개인 재산보다도 공동 재산이, 또한 사양심과 집단 의식이 일의 試圖 및 개인보다 앞서는 사회였다>로 끝맺고 있다. 이 차이가 소설과 역사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