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남도 - 온누리신서 17
노민영 / 온누리 / 198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옛날 남쪽에 외로운 섬 하나가 있었다. 이 섬은 육지가 그리워 하늘님께 빌고 빌었다. 마침내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이 섬의 봉우리가 1천개가 된다면 육지와 붙여주겠다>는... 섬 사람들은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섬의 봉우리를 세어 나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섬은 하늘님이 약속한 숫자보다 하나가 적었다. 그래서 외로운 섬은 그대로 남게되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제주도. 제주도의 뭍을 향한 그리움과 소외감이 진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라 하겠다. 오래전에 제주도 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섬에서는 <제삿날이 한 날인 집이 많다>라는 흘러가는듯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의 뜻을 처음에는 어부가 많기 때문에 그런것이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언뜻 스치는 생각이 있어 조심스럽게 <4.3>이란 단어를 꺼냈을 때의 당혹스런 표정은...



<잠들지 않는 남도>의 남도는 南道가 아니라 南島이다. 이 섬에서 48년 4월 3일 시작된 항쟁은 무려 8년의 시간을 역사 속에 각인시켰다. 제주도는 우리의 국토이지만 특이성을 지닌 땅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한 대신 토호들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일반 민중들의 고통은 다른 지역보다 더욱 가혹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주도는 중앙정부의 유배지로서 활용되었기에 이 지역은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중앙의 실패한 지식층들이 쉴새없이 드나듬으로서 사상적으로는 자주적인 면을 띠게되었던 것이다. 이런 자주성은 부패하고 무능한 중앙의 지방관들이 지역의 토호들과 결탁하여 가렴주구를 일삼을 때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단결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제주도는 자신들의 주장을 외치기에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또 하나 제주도는 섬에서 필요한 모든 식량을 육지에서 반입해야만 하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이면서도 자주적이면 독립적인 국가로 나아가지 못한 가장 큰 짐이었다. 이렇게 제주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민 전체가 하나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성향은 제주도에 가톨릭 선교사들이 처음 상륙하였을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일년 동안 선교를 하였지만 섬 주민의 1%만이 개종을 하였을 뿐이었다. 이런 전통에 대한 보수성은 중앙정부의 통제가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더욱더 반발하게하는 하나의 동인이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제주도의 비극은 섬의 고립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격하는 자는 끊임없이 충원될 수 있는 잇점이 있지만 방어자는 철저하게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전략적 약점이 극한 투쟁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제주도에서의 전투는 방어자의 입장에서는 퇴로가 없는 결사전이었던 셈이다. 항복하면 재판을 통해 합법적으로 죽지만, 투항하지 않으면 살해당해야만 하는 선택 속에서 제주도민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은 저항이라는 길밖에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결과 섬에서의 항쟁이 무려 8년을 끌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섬 전체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투쟁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여기서 좌익과 우익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좌익은 우익에게 우익은 좌익에게 살아남은 자는 군경에게 살해당하는 과정에서 제주도에서 색의 구분은 무의미해진 것이다. 결국 죽은 자들은 흐르는 피의 색으로 구분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제주도의 또 다른 비극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제주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하면서 취한 전술이 시험된 장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일정한 마을을 한 단위로 묶어 방어하게하는 전략촌개념과 전술지역에서의 무차별폭격과 같은 것은 월남전에서 그대로 시행되었다. 하지만 이런 무자비한 진압작전이 별 효용이 없다는 점과 민간인의 피해가 급증함으로서 민간인들이 반군의 편으로 돌아선다는 당시의 분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속 밀어붙인 것은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전술적 실책은 월남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므로서 민간인의 희생이 급증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제주도의 4.3항쟁은 제3세계국가와 강대국간의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초의 충돌이었다.



이 책은 미국의 존 메릴 교수의 박사논문인 <제주도 반란>과 사건의 당사자이며 일본에 거주하는 김봉현씨가 기록한 <제주도-피의 역사>를 편역한 것이다. 존 메릴의 논문은 완역하였지만 김봉현의 기록은 감정적이거나 논리가 비약된 곳을 삭제하고 기록하였다고 편역자는 밝히고 있다. 두 책의 제목에서 보듯 제주도의 4.3항쟁은 두 집단간의 평가가 상이한 관계로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3년 10월 31일 정부는 제주도 4.3사건과 관련하여 무고한 양민이 학살당한 것에 대하여 사과를 하였다. 이 책이 나오고 무려 1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제주도 4.3은 아직도 진행중인 역사의 사건이라고 보고싶다. 제주도 4.3에 관한 우리측 자료는 거의 전무하다싶이 하고, 오직 미국의 문서고에만 자료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존 메릴의 논문은 미정부의 문서보관소에 비치된 자료를 이용하였다는 점에서 이 사건에 대한 객관적 연구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는 점이다. 반면 김봉현의 기록은 사건 당사자들의 실제적 기록이란 점에서 이 사건을 연구하는 1차적인 자료인 셈이다. 그런점에서 이 책은 제주도 4.3항쟁의 본격적인 연구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라 하겠다. 



*제주도가 육지와 떨어진 또 하나의 전설이 있어 후기에 추가합니다. 옛날에 섬 제주도에 큰 어머니大母神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섬사람들이 어머니에게 빌었다고 합니다. 제발 육지와 붙여 주십시오. 큰 어머니는 이들이 불쌍해 천으로 제주도의 하늘을 모두 가리면 붙여주겠다고 했답니다. 섬사람들이 모두 합심해서 베를 짜서 하늘을 덮었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틈이 있었다는군요. 큰어머니가 이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고쟁이를 벗어 그 부분을 가려주었지만...고쟁이의 그 부분만큼 모자랐다는군요... 그래서 제주도는 섬으로 남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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