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영광
그레이엄 그린 지음, 이동진 옮김 / 해누리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권력과 영광은 얼마나 대조적인 단어인가. 세속의 인간들은 이 둘을 한꺼번에 얻기 위해 치열한 삶의 정글 속에서 투쟁한다. 하지만 세속의 인간들은 생의 마지막에 하나의 진실을 느낀다. 권력과 영광은 결코 같은 주머니에 담겨진 주사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권력과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유혹을 받을 때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이다. 악마가 예수를 데리고 높은 절벽으로 데리고 가서 말한다. 여기서 뛰어내린다면 이 세상의 왕국을 너에게 주겠다. 이때 예수는 악마야 물러가라는 일성으로 유혹을 물리치고 신의 아들로서의 길을 걸어간다.



여기에 나오는 神父는 그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다. 사제로서 독신의 서약을 어기고 간음을 통해 딸까지 두고 있으며, 이로 인해 알콜 중독에 빠져있는 불쌍한 인간일 뿐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이 신부에게 어떤 종교적인 품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신부 역시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타락하고 무력한 행동을 함으로서  그대로 보답한다. 그에게는 <너는 거룩한 멜키세덱의 사제로서...>의 모습은 서품받을 때의 아련한 기억일 뿐이다. 현실의 모습은 타락하고 늙어가는 신 앞에 선 불쌍한 인간이다. 이런 사제에게서 신도들은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이때 정부에서 종교를 금지하고-여기서는 가톨릭-사제는 의무적으로 결혼을 해야한다는 법령을 발표한다. 이 대목에서는 프랑스 혁명시기 혁명정부가 교회를 박해하던 모습이 연상된다. 사제들은 정부의 뜻을 따르거나, 처형되거나, 국외로 망명하는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다. 정부의 뜻에 따르는 자는 배교자이교, 망명한 자는 자신의 순수함은 지켰지만 신도들과 교회를 지키지 못한 비겁한 자이다. 그리고 사형을 당하는 사람은 순교자이지만 남겨진 신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남아있는 신도들은 당연히 주정뱅이 신부가 정부의 뜻에 따라 결혼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로 이때 그 주정뱅이 사제에게 그 무엇이 자각된다. 그는 타락의 절정에서 그 타락을 확고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는 순간에 자신의 순수함을 지켜나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두 번 자신을 더럽힐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영혼의 모독은 한 번이면 족하다는 뜻일까. 어쨌든 그는 그 자각의 순간부터 정부의 뜻을 거슬러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신자들의 아픈 영혼을 위로해 준다. 이 얼마나 거룩한 모순인가. 종교가 사라진 그 시대에 교회의 숨결이 사제의 독신서약을 어기고 알콜에 찌든 한 무력한 인간-신부-에 의해 지탱되어야한다는 그 거룩한 모순. 사제는 여기서 신의 의지라든지 소명이라는 거창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자신이 거기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잠시 잊었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을 싸구려 삼류소설로 타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쐐기가 된다. 오히려 이 타락했던 사제는 현실의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오히려 그 아무말 없이 받아들임의 모습에서 <그들이 예수를 채찍질 했으나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이런 그에게 최후의 선택이 다가온다. 한 신부가 돌아다니며 신도들을 위해 미사를 거행한다는 소문을 듣고 정부는 신부의 목에 거액의 상금을 걸어 놓는다. 이 상금을 노린 사나이가 신부의 거스릴 수없는 고해성사의 의무를 이용해 그를 정부의 손아귀로 끌어들인다. 신부는 그것이 함정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아니 거짓일지라도 자신에게 맏겨진 신자의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기에 그는 그곳으로 간다. 자신의 목숨이 걸려있는 곳일지라도 말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선택한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사생아의 아버지이자 알콜중독자인 타락한 사제가  아니라 진정한 사제로서 죽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그가 그토록 원했던 서품 받을 때의 그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종말...이제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뒤의 일은 그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는자신의 마지막을 인간이 아니라 신에 맏겼다는 그 자체로 행복하였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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