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약탈의 역사 - 새론서원 617
J.H.패리 지음 / 신서원 / 1998년 5월
평점 :
품절
향료, 담배와 설탕과 노예, 은, 대구와 고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서구유럽의 혈관 속에 흐르는 돈의 유전자이다. 서구유럽은 이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였다. 지중헤에서 대서양으로 그리고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부를 위하여 마이다스의 손을 뻗쳐나갔다. 이들 서구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이 만지는것은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였다. 향료를 위해 이슬람권과 투쟁을 하였고, 설탕과 담배를 위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납치하였다. 그리고 남미의 은을 위해서는 그 땅에 뿌리박고 있던 문명을 말살하는 것도 서슴치않았다. 대구와 고래를 위해 거대한 바다에 흩어져있는 섬들을 점령하고 얼음뿐인 극지까지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 이것은 유럽의 입장에서 본 확장의 역사이다. 하지만 그 시각을 뒤집어 보면 유럽의 확장은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의 고통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레판토 해전 이후 유럽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이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제 이슬람세계는 서유럽 문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아니었다. 이제 이슬람세계는 오히려 유럽의 팽창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유럽의 팽창을 제일 먼저 피부로 경험해야만 했던 곳은 아프리카 대륙이었다. 아프리카는 유럽이 오기 전까지는 아랍세계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아랍세계가 쇠퇴하고 유럽이 팽창하면서 아프리카는 아랍과 유럽 양쪽으로부터 착취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프리카의 동쪽은 아랍인이 서쪽은 유럽인이 수탈하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서양 항로의 발견으로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의 식민지로 화하면서 서인도제도에 이식된 담배와 설탕산업을 위해 아프리카는 막대한 인적자원을 수탈당하였다. 즉 아프리카는 대서양 너머의 아메리카를 유럽인이 경영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창고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유럽의 자본, 아프리카의 노동력, 아메리카의 토지가 결합된 전형적인 식민지 경제체제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럽의 제국주의는 먹어도 먹어도 만족할 수 없는 에뤼식톤Erysichthon과 같은 존재였다. 이들은 아메리카를 완전히 해부하고 분해하였다. 북에서는 들소를 남에서는 은을 위해 초원을 피로 물들이고, 대지를 신음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착취에 동원된 원주민들의 사망율이 너무 급속히 증가하자 부족한 노동력을 만회하기 위해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은 아프리카의 원주민을 대량으로 이식하기까지 하였다. 그들이 식민지확장의 앞에 세워 그토록 강조하던 신의 사랑과 자비는 어디까지나 자신들과 피부색이 같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편리한 종교였다. 유럽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항로를 개발하기 위해 뛰어든다. 이유는 대구와 고래 때문이었다. 기독교세계는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생선의 소비가 많은 대륙이었다. 이들은 발트해의 청어로 생선을 공급했으나 청어가 감소하면서 어장을 북쪽으로 확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래의 지방에서 나오는 기름은 유럽의 밤을 밝히는 원천이었다. 유럽인들에게 버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하기 위해 거침없이 이웃의 땅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제 유럽인들의 다음 목표는 아프리카 너머에 있는 인도와 극동이었다. 아랍세계의 방해로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던 세계는 바다를 통하여 열리게 되었다. 이제 유럽인들에게 초원의 길로 상징되는 대륙은 의미가 없었다. 이들에게는 오직 바다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바다는 전 세계를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이를 위해 항해도구가 개량되고 개발되었다. 그리고 배도 더욱 커지고 지도 작성에 유난히 탐닉하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유럽은 배, 해도, 대포라는 탐험가의 도구를 완성하고 세계로 진출할 준비를 완료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은 왜 자신의 땅에 만족하지 못하고 침략을 선택한 것일까. 여기에는 기후론, 인구론, 기술적 요인론, 종교적 동인론, 경제적 동인론 등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유럽의 타대륙의로의 침략에 대한 일부분만을 설명해 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유럽의 팽창에 대한 여러가지 설은 논쟁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훔치는 자에게도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이 세상에서 범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유럽에서는 도둑질에 대한 순화된 경제적 동인론과 이에 대한 보상심리 비슷한 종교적 동인론을 팽창의 원인으로 삼고 있다. 물론 이것은 유럽의 생각일 뿐 희생당한 대륙의 입장은 아니다. 이 책 역시 이런 유럽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침략과 약탈은 모든 입장을 배제하고 냉철하게 바라본다면 한 깡패가 호젓한 도로 양변에 무성하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들을 무자비하게 꺽으며 지나간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든지 수긍할 수 없고 정당화될 수 없는 폭거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