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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무엇인가? 그후 50년
마이클 머피.루크 오닐 엮음, 이상헌.이한음 옮김 / 지호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생명의 신비와 연관된 연구를 하면 언젠가는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 또는 화학상을 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생명에 관한 연구의 분야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에 속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석존께서는 제자들에게 "삶(생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많은 답이 나왔지만 한마디로 정의를 내려 주었다. "呼吸之間"이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이 말은 현실에 대한 충실성을 강조한 생명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과학자들은 같은 질문에 "세포의 화학적 반응"이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이렇게 답하는데는 그럴만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1892년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가 발견된 이래 그것이 핵산과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세균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아파아지를 대상으로 실험하여 핵산이 유전을 지배하는 물질임을 밝혀내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과학자들은 바이러스, 핵산, 유전자라는 고리가 생명을 구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탐구는 여기서 멈추지를 않았다. 이차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4년 더블린 고등연구소 연구원인 에르윈 슈뢰딩거가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을 하였고 그 내용은 책자로 출판되었다. 여기서 슈뢰딩거는 유전자야 말로 생물 세포의 핵심적인 성분이며 유전자를 이해하면 생명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슈뢰딩거의 이 주장은 물리학에서 아인슈타인의 학설에 버금가는 충격을 생물학과 화학, 그리고 의학에 전해주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유전자라는 존재에 도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1993년 과학자들은 당시 그 현장에 모여 슈뢰딩거의 이론을 토대로 현재 생물학의 문제에 대하여 자신들의 견해를 발표하였다. 이 책은 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는 11편의 발표문이 담겨져있는데 각각의 발표문은 해당분야의 최정상급들 답게 슈뢰딩거가 제시한 것에 대한 압축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을 난해하게하는 원인이다. 수많은 생물학적 용어와 전문적인 해설은 이 분야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한장 한장이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 발표자 가운데 유일하게 아는 인물인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발표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언어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 전개되는 생물학적 전제를 하나의 길잡이로 삼아 책을 읽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슈뢰딩거의 학설이 지니는 중요성을 물리학적인 생물학을 분자학적인 생물학으로 진화시켰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언어와 인간의 두뇌와의 관계를 통해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문제가 인간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언어적인 측면의 내용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존 메이나드 스미스와 외르츠 자스마리가 발표한 언어와 생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스튜어트 카우프만을 읽고 하는 식으로 한 주제와 관련된 주제를 찾아서 읽어가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래도 많은 전문용어와 도표들은 이해를 진척시키는데 장애물이 되었다. 그럼에도 하나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유전학 분야에서도 닭과 달걀의 논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즉 생명의 기원이 단백질 합성에 필수적인 유전자를 담고 있는 DNA가 먼저인가 아니면 DNA의 단백질 합성에 없어서는 안되는 효소 단백질이 먼저인가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80년대 단백질합성에서 DNA의 보조역할을 한다고 알려진 RNA가 다른 효소의 도움없이 자기 복제를 할 수 있음이 밝혀지면서 이 논쟁은 다른 곳으로 확대되었다. 즉 스스로 촉매작용을 하면서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RNA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전자의 나선구조를 보면 질서에 충실한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질서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예가 합당할지는 모르지만 마작을 시작할 때 모든 패를 섞고 그 패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나눠갖은 다음 패를 조합하여 승리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즉 섞고, 정리하는 혼돈과 복잡의 과정을 거쳐 정리로 나아가는 것과 같이 생명을 구성하는 유전자의 세계 역시 혼돈과 정리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유전적 생명체로서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책은 쉽게 읽어갈 수 있는 책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책을 어렵사리 정복하고 나면 정말로 무엇인가를 한 것과 같은 포만감을 느낄 수는 있다. 다음에 읽어야할 것은 슈뢰딩거의 "생명은 무엇인가?"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