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중세사
미야쟈키 이치사다 / 신서원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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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중세사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제목이 중세사만 붙으면 무조건 사서 읽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관계로 이 책도 구입하게 되었다. 서양의 중세사에 비해 동양의 중세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한국사의 중세사격인 고려 역시 역사의 무대에서 그리 크게 조명되지 않는다.

중국의 중세는 일반적으로 삼국시대를 시작으로 하여 당 이후의 5대 10국이 송에 의해 멸망하는 때를 끝으로 삼는다. 대략 740년을 아우르는 중국의 중세시대는 우리의 역사에서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중국은 가장 혼란스런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를 통일한 국가는 삼국을 통일한 진이 동서로 분열되면서 대략 155년, 수가 3대 38년, 당이 20대 290년 도합 483년간의 시기가 숫자상으로는 안정된 시기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진의 경우 서진 52년을 제외한 동진의 대부분은 영가의 난으로 지새워야만 했다. 그리고 수 역시 단기간의 왕조로서 고구려 원정이라는 과중한 역을 수행하던 과정에서 멸망하였고, 당은 안사의 난을 겪은 7대 현종 이후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지새워야만 했다. 그러므로 통일 왕조 기간 동안 평화스런 시기는 대략 170여년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역사학자들이 이 시기에 당이 제국을 통일시킨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볼 정도로 이 시기는 혼란의 시기였다. 북으로부터 유목민족이 중원으로 침입해 자리를 잡고, 한족의 왕조는 장강 넘어 남으로 천도하여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오히려 중국의 판도를 넓혀주는 역할을 했다. 한족이 강남으로 이주하면서 강남의 제민족이 한족의 지배를 받게되면서 비로소 중국의 문명이 황하와 장강 사이의 중원을 벗어나 남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북의 유목민족이 중원에 들어와 한화과정을 통해 중국민족과 통합되면서 새외이북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었다. 이 시대는 박한제 교수의 용어를 빌자면 <胡漢體制>라 불러야할 정도로 중국인이 오랑캐라고 부르는 유목민족의 영향력이 증대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즉 유목민적인 호방함과 검소함이 한족의 세련된 문명과 접촉함으로서 더욱 개방적인 문화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결과 중국의 중세는어느 시대보다 대외교역에 활발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중국의 문화가 서쪽과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서쪽으로의 확장은 751년 당군이 탈라스에서 압바스왕조의 군대에게 패함으로서 파미르고원蔥嶺에서 저지당하였다. 이것이 중국 역사상 한족이 가장 서쪽으로 진출한 것이었다.

저자인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역사학상 중세사의 연구는 가장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중세사의 의의가 이해되면 역사 전체가 판명되기 때문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사실 중세는 고대와 근세의 사이에 있는 역사이며 용어 또한 가운데의 역사라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야자키 교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고대에서 중세로의 변화 과정을 추적하고, 중세에서 근세로의 발전 과정에서 알 수 있듯 중세는 고대와 근세의 교집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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