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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의 역사
JOHN T.NOONAN / 한세 / 1996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원래 고대, 중세, 영국, 미국의 장으로 구성된 방대한 책인데 우리 한국의 출판 여건상 고대와 중세를 제외한 영국과 미국의 항만을 번역한 불완전한 책이다.
영국과 미국의 뇌물세계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은 대체로 이들이 건전하다는 쪽에 손을 들어 준다. 물론 이 판단은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였을 경우라는 단서가 따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와 비교하였을 때 상대적으로 깨끗하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뇌물에 관한 법적 제재가 엄격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영국과 미국은 뇌물에 관하여 엄격한 법적용을 하게 된 것일까. 그들의 엄격함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과거를 살펴보는 것이 당연한 순서가 아니겠는가. 바로 이 책은 영국과 미국의 뇌물의 역사에 관한 추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영국과 미국의 뇌물역사를 시작하는 첫 페이지를 다음과 같은 글로 장식하고 있다. <영국은 라틴어를 통해 9백년 동안 유럽문화의 전통을 공유해왔다. 또한 영국은 뇌물을 금하는 성서의 가르침을 신봉했으며 이런 태도는 신학, 문학, 철학 등 영국문화이 일부분이 되었다. 그 이전의 문명권, 가령 이집트. 그리스. 로마. 이스라엘 등에서는 뇌물corrupt gift이라는 명시적인 단어가 없었는데 영어권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저자는 뇌물이 본격적으로 활성화 된 것은 영어권에서부터였다고 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이들 영어권에서 시작된 뇌물은 어떤 댓가성이 아닌 궁지에 처한 사람의 구원과 구제라는 형식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즉 영미권에서 이해된 뇌물의 초기 이해는 부패라는 개념으로 이해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종교적인 관념에 의한 사고방식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죄악 속에서 죽어 지옥의 불로 떨어지는 것보다는 어떻게해서라도 회개를 한 뒤 지옥의 불길만은 면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이 뇌물의 개념 속에 은연중 스며들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뇌물에 대한 이해가 신학적인 세례를 받게되면 뇌물은 지옥의 불을 모면하는 신앙적 행위로 변질되어 버리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은 영국과 미국의 뇌물 사례만을 보여주지만 뇌물은 아마도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영국과 미국에서 엄격한 뇌물에 대한 잣대를 적용하게 된 것을 저자는 특이하게 사회적인 질서의 변화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인간들은 중세 이후 성윤리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버리고 좀 더 엄격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제재는 1950년 이후 불어닥친 성혁명으로 인해 엄격한 성윤리가 붕괴되자 그에 따른 대안으로 정치적 공직윤리를 강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와중에 현대적 의미의 뇌물에 嗔?엄격한 법적용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저자인 누난은 법적용의 문제점 또한 지적하고 있다. 법이란 인간 정신의 문자화라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기에 법이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것과 문자에 정신이 혼합되어 적용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저자에게 있어서 뇌물의 문제 역시 문자와 정신 혹은 머리와 마음 사이의 균형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에덴 동산의 예를 들면서 원죄의 원인은 아담도 이브도 뱀도 아니라 사과라는 농담을 하는데 그것은 돈이 이미 우리의 상상을 넘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예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와있는 뇌물의 사례를 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파렴치함 또한 우리의 도덕적 수준으로 볼 때 놀라울 따름이다. 이것은 현재 사람들보다 당시 사람들이 도덕적 관념이 더 희박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희석시키는데 무리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뇌물에 대한 기준의 이해차이 때문이 아닌지. 우리들은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통해 뇌물은 죄악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주입받아 왔다. 그러나 점점 성장함에 따라 주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뇌물이라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 등초본을 한장 발급받을 때도 신청용지에 담배 한 갑을 끼워 넣는 것이 관행이었다. 당시 주민등록등초본은 모두 어려운 한문으로 작성해야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사무소의 발급사무가 전산화되면서 이제는 그런 뇌물을 바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시스템이 아주 작은 뇌물의 사례를 일소한 작은 예이다. 이 책은 수많은 사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적 개념의 뇌물을 알기 위해서는 한번쯤은 읽어봐도 무방한 책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판사라는 신분답게 책의 마지막 결론을 판결문처럼 제시하고 있다. 즉 그는 자신이 제시한 네 가지 이유 때문에 앞으로도 뇌물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첫째는 뇌물수수행위는 수치스런 행동이다. 둘째는 뇌물을 받는 행위는 돈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을 파는 행위이다. 셋째는 뇌물은 믿음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넷째는 뇌물은 신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뇌물을 비난하는 잣대가 법보다는 도덕적인 것이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약간 공허한 메아리이며 맥빠지는 결론이지만 이것만큼 확실한 방법 또한 없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뇌물을 합리화하는 다섯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하나 하나 반박하고 있다.
첫째, 공직자와의 거래는 보편적이다.
둘째, 공직자와의 거래는 필요악이다.
셋째, 다양한 호혜주의 행동은 서로 구분하기 어렵다.
넷째, 뇌물죄의 적용은 대단히 부도덕적이다.
다섯째, 비난받고 있는 뇌물거래의 구체적 효과는 사소하거나 입증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위의 다섯가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반론을 해본다면 나의 뇌물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