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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세사회로의 여행
E.O.라이샤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의 중세사회는 서양의 중세사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양의 중세 사회가 엄격한 신분제와 기독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회였다면 중국의 중세는 胡漢연합체제의 역동성이 넘치는 사회였고, 종교적으로 무척 관용적인 사회였다. 이 당시 중국에 들어와서 선교를 한 외래 3종교는 네스토리우스교, 마니교, 조로아스터교였다. 이은 중국의 고유한 종교인 도교와 토착화된 불교 사이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물론 엔닌이 구법여행을 하고 있던 845년 당의 무종에 의한 會昌法亂을 겪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중국의 중세는 중국 역사상 가장 국제적인 성격을 띤 국제화된 사회였다. 이런 중국의 역동성에 힘입어 9세기 중국 주변의 동아시아 세계 역시 활력이 넘친 사회였다. 이들 주변국가들은 중국과의 외교, 경제 교류를 통해 선진 문물을 수입하면서 고대 국가적인 면모를 일신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고대에는 한반도를 통해 문물을 수입하던 것이 일본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한반도의 주인이 되면서 중국과 직접 교류를 시도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엔닌의 입당구법 순례행기에도 자세하게 나와있지만 당시 일본의 항해술로는 중국과의 직접 교류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일본은 신라의 도움을 받아 중국과의 교류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러한 사정은 중국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엔닌은 신라인들의 자치구-라이샤워 교수는 이것을 colony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인 신라소에 있는 신라원-적산원-의 도움으로 중국 순례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당시 엔닌은 중국의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중국민중의 적나라한 생활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일본과 중국 불교계의 동향을 전해주기도 한다. 라이샤워 교수는 엔닌의 발자취를 서술식으로 기술함으로서 엔닌의 저서가 일기체 형식으로 되어 있는 약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사실 엔닌의 순례행기는 일기체로 되어 있어 곳곳에 담겨져 있는 정치, 사회, 문화, 경제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바라보기 힘든 점이 있다. 이런 단점을 라이샤워 교수는 주제별로 명료하게 분석해 놓음으로서 엔닌의 일기를 읽는 입문서로서도 훌륭하다. 하지만 저자가 워낙 일본에 오래 살아온 관계로-실제로 라이샤워는 1910년 東京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전체적인 구도가 일본 편향적인 것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장 전체를 신라인의 활동에 할애한 것은 의도적으로라도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만큼 당시 신라는 동아시아의 정치 질서에서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사실이 한 일본인의 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다는 사실에서 역사의 기록성이란 면을 생각하게 한다.
이런 엔닌이 838-847까지 구법여행을 마치고 일본에 귀국하였을 때 일본은 거국적으로 환영한다. 그리고 엔닌은 황실의 지원으로 불교계의 대선사가 되고 일본 불교계의 지도자가 된다. 라이샤워는 이런 엔닌의 모습을 담담히 기술하면서 생명력을 가진 인간상에서 역사적 덧칠이 가해져 생명력이 사라진 공식적인 역사의 인물로 변해가는 엔닌의 모습을 서글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