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고대사
람 샤란 샤르마 지음, 이광수 옮김 / 김영사 / 1994년 3월
평점 :
절판


서구인이 만든 메르카토르도법에 의한 지도를 보면 인도는 아주 작게 보인다. 이 지도를 봐서는 인도가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나라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다. 인도는 분명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인더스문명이 탄생한 땅이다. 그럼에도 인도는 세계사의 위치에서 보면 이집트나 중국보다 낮은 대접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것은 아마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의 길을 모색하면서 제3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인도가 못마땅한지 헐리우드 영화도 인도를 그리 좋게 묘사하지는 않는다. 헐리우드가 보는 인도의 모습은 전통에 얽매인 무지와 미신이 난무하는 곳-City of Joy-나 기괴한 식문화를 가진곳-인디애나 존스 미궁의 사원-으로 묘사할 뿐이다. 어디에도 인도의 깊은 내면의 문화와 역동적인 외적인 문화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나마 인도를 객관적으로 본 인도로 가는길 조차도 서구적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제일 처음 생각나는 단어는 천축天竺이란 단어다.  축은 악기 이름일 수도 있고 풍요로움을 뜻하기도 하니 천축의 뜻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란 의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천상의 풍요로움이 지상에 발현된 나라 정도일 것이다. 우리는 인도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삼국시대인들은 인도를 서축西竺이라 부르고 우리를 동축東竺이라 부르며 우리 문화적 정당성을 항상 인도에 빗대며 고양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듯 고대의 문화가 중국 일변도만은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들은 인도를 천상의 풍요로움이 지상에 발현된 국가로 본 것이 틀림없다. 그 천상의 나라를 우리도 불국정토에 이루려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인도는 우리 고대사의 가락국의 허황옥과도 연결지어 볼 수 있다.

인도는 과연 세계사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은 인도를 중심으로 힌두 문명권이 형성되었다는 사실로 대신할수 있다. 인도는 힌두문명권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다. 이 문명권의 영역은 동남아시아의 소승불교문화권과 인도네시아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역이었다. 이는 중국문명이 한국, 베트남, 일본에 영향력을 끼친것보다 더 넓은 범위를 포함하는 것이다. 즉 동남아시아의 문화는 중국문화권이 아니라 힌두문화권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사에서 중국중심의 문화사가 얼마나 편협되고 왜곡된 시각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도의 고대는 647년 하르샤 왕국이 붕괴되면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이 시기는 가장 인도적인 문화가 꽃피우고 성숙되는 시기였다. 왜냐하면 하르샤 왕조 이후 인도는  10세기 이슬람이 인도 북부로 들어와 왕조를 세울 때까지 수많은 군소왕국으로 분열되어있었다.  우리가 왜곡된 시각으로 알고 있는 인도의 현재는 고대에 이미 완성된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고대의 인도문명의 역동성은 엄청난 힘을 발휘했고 많은 지역에서 인도의 선진문명을 전수받으려 노력했다. 또 고대 인도은 인류에게 십진법과 제로空이라는 것을 선사함으로서 수학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중국인들은 틈만나면 자신들이 인류에게 화약, 종이, 나침반을 전해주었다고 자랑하지만 인도인들은 이 위대한 발명을 응용할 수 있는 위대한 체계를 전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만큼 인도의 세계는 중국적 과시문명보다는 여유롭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 나라의 고대사는 그 나라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사회. 경제. 문화. 종교등 모든 것이 형성되는 핵심적인 시기인 것이다. 이 시기의 인도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인도 고대사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면서 현재 서구제국이 묘사한 인도의 모습이 본질과 얼마나 어긋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인도의 역사-아주 일부인 고대사-를 아는데 필요한 입문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도인이 직접 기술한 것이기에 그 신뢰성은 한층 더 크다.  끝으로 70년대 주인도대사를 지낸 고 이범석 외무장관이 대사시절 인도를 소개하던 말이 생각난다. <인도 정말로 대단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는 나라입니다. 인도 정말 대단합니다. 인도를 느끼려면 와서 보십시오. 그러면 정말로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호의 세계 - 양장본
루돌프 키펜한 지음, 김시형 옮김 / 이지북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암호는 기능으로 볼 때 Code와 Cipher로 나눠 볼 수 있다. Cipher가 평문을 문자의 순서를 바꿔 놓거나 문자를 다른 문자 혹은 숫자로 바꿔치기하여 사용하는 것이라면, Code는 미리 정해진 Code용어가 한마디의 말, 구절 또는 문장으로 쓰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상호 다른 특성 때문에 Cipher는 구조적이기 때문에 송신자가 전하고 싶은 어떤 내용이든지 전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Code는 미리 정해놓은 뜻만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Cipher는 해독의 위험성이 큰 반면에 Code는 해독의 위험성이 적어 상대적으로 안정성의 면에서 Cipher보다 우월하다. 대부분의 경우 어느 나라든지 해군은 Code를 즐겨 사용하는 반면 육군은 Cipher를 선호하는데 이는 육군의 특성상 수시로 내려야하는 작전의 내용을 통신해야만 하는 까닭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암호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학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률과 조합과 함수의 세계는 암호의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열쇠인 것이다.  즉 어떤 숫자나 문자도 결국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부터 시작하는 암호해독의 작업은 정교한 퍼즐게임과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과는 상관이 없지만 로울린슨이 베히스툰비문을 해석할 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고대 페르시아어에서 사용된느 언어의 형식에 주목하였다는 점이다. 즉 로울린슨은 페르시아의 왕들이 자신을 호칭할 때 관용적으로 붙이는 말에 주목하고 거기서부터 비문의 해석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암호-모르는 문자가 암호라면-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우리의 언어와 습관 혹은 버릇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암호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낭만성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려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암호에서 인간적인 낭만의 냄새나 흔적을 최소한으로 하면 할수록 암호해독은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의 애니그마라는 암호기는 이런 기계적인 암호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물론 기계적인 암호도 종국에는 해독이 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독되지 않는 암호는 없다고 한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상대편이 암호가 해독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비밀 또한 유지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메마른 감정과 비밀이 암호의 절대적인 조건인 것이다.

이것은 암호가 복잡화되면 될수록 그 사회는 인간적 감정이 메말라가는 사회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불신의 의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학 오디세이 1 지혜가 드는 창 6
진중권 지음 / 새길아카데미 / 199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 美學이라는 단어에 혹해서 구입했던 책이 이론과 실천의 <미학사>와 논장의 <미학의 기초>라는 책이었다. 두 책의 첫장을 읽어 보았을 때 미학은 철학이라는 사실에 약간 당혹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미학사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두 책 모두 사회주의권에서 발행된 책이기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철학의 세계와는 약간 생소한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미학은 어려운 것이란 선입견 속에서 깊이 들어가기를 주저주저하였다. 그런데 <미학 오디세이>를 만났을 때 미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전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예술에서만 미적 관계가 총체적이고 완전하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실재 현실 자체에서도, 즉 자연과 사회와도 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의 미적 체험은 예술 작품을 음미할 때 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회생활의 지극히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대상, 현상, 사건에 접할 때도 일어나는 것이다. 미학의 임무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한 이러한 미적 관계의 합법칙성을 연구하는 것이다. - 미학의 기초, 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발췌-

뒤러의 하늘, 피타고라스의 하늘, 그리고 우리의 하늘로 시작되는 이 책의 서문은 위에서 어렵게 표현한 미학이란 무엇인가를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즉 미학을 말 그대로 미술과 음악을 통해서 전달해 주고 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말하듯 보는 것이 아는 것이다란 말에 동감한다. 그 알아가는 과정을 이 책은 알기 쉽게 서술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에셔의 세계를 보았고, 마그리트의 세계를 경험했다.

가끔 이 책과  <미학사>와 <미학의 기초>를 비교해 보곤 한다. 예술 혹은 지식은 아는 것만큼 이해하고 보인다는 말이 실감나기도 한다. 이 책들의 행간 속에 숨어있는 뜻을 오디세이의 항해길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그 항해의 지도로 위의 책을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미학의 세계를 조금씩 이해해 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이도자완井戶茶碗이 생각났다. 16세기경 경상도 진주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막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가 국보가 되었다. 그 이유는 사발이 바탕이 노랗고 굽부분에 유방울-가이라기-이 맺혀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원래 유약(釉藥)이 불의 온도 부족으로 불규칙하게 녹아 응결되어 나타난 독특한 형태가 마치 철갑상어 가죽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가이라기'라는 말은 무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말이다.즉 칼의 손잡이와 칼집의 장식 소재로 사용되는 것이 철갑상어 가죽이었다. 또한 이도다완을 두손으로 움켜쥐었을 때나 굽 부분을 손바닥으로 살며시 쓸어볼 때의 감촉이 매화피 혹은 철갑상어 가죽을 연상시켜 무사들에게 오묘한 깨달음으로 다가온 것이다. 검(劍)을 통한 정신과 자연의 일체감을 느끼듯 검이 아닌 이도다완을 통하여 또다른 정신세계가 열림을 터득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황색의 꾸밈없는 모습과 우연의 소산으로 굽부분이 실패한 자기를 자신들의 눈으로 다시 보았던 것이다. 즉 보는 시각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미의 모습이 결정된 것이라 하겠다.  굽에 기포가 생기면 자기를 만드는 도공은 상품의 가치가 없어 깨버린다. 하지만 그 우연이 미적 심성을 상승시켜 특이한 자기로 승화되었다는 사실은 미학의 입장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 하겠다. 여기서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무엇을 아느냐로 이해되었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것이 미학의 세계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애법
오비디우스 / 동심원 / 1996년 5월
평점 :
품절


로마시대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물론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그 관점은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로마의 젊은이들은 남자나 여자 모두 사랑이라는 것에만 매달린 것처럼 보여질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인 오비디우스는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시대를 살던 사람이었다. 이 시기는 내전의 시대를 마감하고 번영의 시대가 개막되는 시점이었다. 이제 로마는 투박함에서 벗어나 세련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젊은이들의 의식 역시 변화하고 있었다. 이제 젊은이들은 전쟁 때문에 군대에서 복무해야하는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로마는 카토가 걱정하던 유약함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비디우스의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 요즘말로 말하면 베스트셀러였고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책이었다. 오비디우스의 연애법이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은 로마가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제 로마의 젊은이들-이들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나갈 주역이다-은 선배들의 강건. 소박하고 질박한 삶 대신 안락과 사치를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로마는 이들의 안락과  사치를 받아들일만큼 거대하고 풍요로운 제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팍스로마나Pax Romana의 시대가 개막되었던 것이다. 

사실 로마는 이 저서가 젊은이들에게 호응을 받는 순간 군사적 의미의 로마는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젊은이들은 로마시민의 자랑이면서 의무였던 병역을 기피하기 시작했고 이 공백의 부분을 야만인을 수입해 매꿔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제 군대는 의무감과 충성심이 아니라 돈에 따라 움직이는 이익집단이 되었고, 이후 로마는 그 댓가를 톡톡히 치뤄야만 했다. 이 책의 기조는 스토아적인 금욕보다는 쾌락의 원칙에 따르라는 충고로 채워져있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이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포인트였던 셈이다. 기성세대는 이런 논조를 싫어했을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도 감각적인 면은 생존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어찌보면 일본의 10대 잡지인 앙앙과 같은 분위기를 띄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인공적이면서 가식적인 면이 강조되면서 로마의 소박성이 경멸을 받아야 하는 시대로 접어든다는 것은 로마를 위해서 어쩌면 불행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 당시 젊은이들의 관심분야와 호기심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이 책이 인류 역사상 연애기술법에 관한 최초의 저술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이전에 이미 인도의 카마수트라와 중국의 황제내경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확실하게 느낀점은 시대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눈에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불만의 대상이란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일전쟁사
로스뚜노프 외 전사연구소 지음, 김종헌 옮김 / 건국대학교출판부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쟁사를 읽는 사람들은 전쟁 그 자체보다는 전쟁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술적인 문제에 빠져드는 경향이 많다. 즉 만약에if라는 가정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이랬더라면, 저럴 때는 저랬더라면... 그러면서 전쟁사의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추적하는 것이다.

러일전쟁사의 한 당사자인 러시아측에서 발행한 전쟁사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없이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왜 아무런 의심이 없었느냐면 제정러시아의 패배 원인에 대한 사회주의 소련의 분석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전쟁사의 객관성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전쟁의 정치적인 문제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착색이 될 수 있지만 전쟁 과정에 대한 분석은 아주 예리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물론 이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주 자세한 부분까지 분석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은 서구 유럽의 예측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러시아가 일본을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문제였지 전쟁 그 자체는 별로 흥미를 끌만한 것이 못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측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과 전쟁을 시작하기 전의 러시아 상황은 일본과 전쟁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무기의 양과 질에 있어서도 일본에 뒤떨어지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러시아군인과 일본군인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전쟁에 대한 이해도였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왜 승리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정신훈련을 통해 병사 개개인의 애국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군대의 고질적인 무능력과 병사들 개개인의 피로감이 겹쳐 전쟁 시작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다만 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러시아군은 상황이 바뀔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즉 병사들은 무능한 지휘관과 유능한 지휘관을 스스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능한 지휘관 밑에서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무능한 지휘관 아래서는 패배의식에 젖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런 내적인 요인 외에도 외적인 요인이 러일전쟁의 승패에 큰 작용을 했다. 당시 세계 최강의 영국과 무섭게 성장하고 있던 미국이 일본을 아시아에서 자신들을 대신해 제국주의 침탈의 경쟁자들을 제거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영국과 미국이 일본에게 물심양면의 지원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로서 전쟁의 승패는 유럽인들이 예상한 것과는 달리 일본의 승리로 굳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이 기록은 쓰라림과 치욕의 확인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세한 기록을 남김으로서 이 실패를 두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뤼순旅順방어전, 만주회전, 대한해협해전의 순으로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대한해협해전은 <짜르의 마지막 함대>라는 책과 중복되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간략한 기술로 전체적인 해전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 하겠다. 이 해전에 대한 상세한 전개과정을 알려면 위의 책을 참조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러일전쟁의 역사를 기술할 때 대한해협해전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러일전쟁이 수륙양쪽에서 전개된 전쟁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러일전쟁의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고 그 과정을 알고자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사료라 할 수 있다.

러일전쟁은 전쟁 지도부의 무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후 아시아의 영미 대리인으로 온갖 특혜를 누리게 되지만 러시아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면서 제국의 수명마저 끊기게 되는 운명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만 유지하고 있던 대한제국 역시 이 전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흥정물이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이익이 걸려있는 만주만 확보된다면 언제든지 한반도를 일본에 양보할 의향이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은 만주가 없는 한반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즉 일본은 한반도는 만주의 장악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1945년 일본이 패망한 뒤 새로운 국경선을 책정할 때 한 미군의 대령이 소련에게 한반도의 반을 넘겨주었을 때 소련이 느낀 기쁨을 상상해 보라. 소련은 한반도의 포기 혹은 39도선까지도 항상 양보할 준비를 하고 있던 양심적인 제국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38도선을 제시했을 때의 그 황홀함은 이 땅이 강대국의 눈에 어떻게 보였는지를 알게하는 서글픈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 전조를 이 책의 행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서글프면서도 다행이다. 알면 최소한 당하지는 않겠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