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사
로스뚜노프 외 전사연구소 지음, 김종헌 옮김 / 건국대학교출판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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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를 읽는 사람들은 전쟁 그 자체보다는 전쟁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술적인 문제에 빠져드는 경향이 많다. 즉 만약에if라는 가정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이랬더라면, 저럴 때는 저랬더라면... 그러면서 전쟁사의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추적하는 것이다.

러일전쟁사의 한 당사자인 러시아측에서 발행한 전쟁사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없이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왜 아무런 의심이 없었느냐면 제정러시아의 패배 원인에 대한 사회주의 소련의 분석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전쟁사의 객관성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전쟁의 정치적인 문제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착색이 될 수 있지만 전쟁 과정에 대한 분석은 아주 예리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물론 이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주 자세한 부분까지 분석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은 서구 유럽의 예측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러시아가 일본을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문제였지 전쟁 그 자체는 별로 흥미를 끌만한 것이 못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측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과 전쟁을 시작하기 전의 러시아 상황은 일본과 전쟁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무기의 양과 질에 있어서도 일본에 뒤떨어지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러시아군인과 일본군인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전쟁에 대한 이해도였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왜 승리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정신훈련을 통해 병사 개개인의 애국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군대의 고질적인 무능력과 병사들 개개인의 피로감이 겹쳐 전쟁 시작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다만 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러시아군은 상황이 바뀔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즉 병사들은 무능한 지휘관과 유능한 지휘관을 스스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능한 지휘관 밑에서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무능한 지휘관 아래서는 패배의식에 젖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런 내적인 요인 외에도 외적인 요인이 러일전쟁의 승패에 큰 작용을 했다. 당시 세계 최강의 영국과 무섭게 성장하고 있던 미국이 일본을 아시아에서 자신들을 대신해 제국주의 침탈의 경쟁자들을 제거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영국과 미국이 일본에게 물심양면의 지원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로서 전쟁의 승패는 유럽인들이 예상한 것과는 달리 일본의 승리로 굳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이 기록은 쓰라림과 치욕의 확인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세한 기록을 남김으로서 이 실패를 두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뤼순旅順방어전, 만주회전, 대한해협해전의 순으로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대한해협해전은 <짜르의 마지막 함대>라는 책과 중복되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간략한 기술로 전체적인 해전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 하겠다. 이 해전에 대한 상세한 전개과정을 알려면 위의 책을 참조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러일전쟁의 역사를 기술할 때 대한해협해전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러일전쟁이 수륙양쪽에서 전개된 전쟁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러일전쟁의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고 그 과정을 알고자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사료라 할 수 있다.

러일전쟁은 전쟁 지도부의 무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후 아시아의 영미 대리인으로 온갖 특혜를 누리게 되지만 러시아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면서 제국의 수명마저 끊기게 되는 운명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만 유지하고 있던 대한제국 역시 이 전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흥정물이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이익이 걸려있는 만주만 확보된다면 언제든지 한반도를 일본에 양보할 의향이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은 만주가 없는 한반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즉 일본은 한반도는 만주의 장악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1945년 일본이 패망한 뒤 새로운 국경선을 책정할 때 한 미군의 대령이 소련에게 한반도의 반을 넘겨주었을 때 소련이 느낀 기쁨을 상상해 보라. 소련은 한반도의 포기 혹은 39도선까지도 항상 양보할 준비를 하고 있던 양심적인 제국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38도선을 제시했을 때의 그 황홀함은 이 땅이 강대국의 눈에 어떻게 보였는지를 알게하는 서글픈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 전조를 이 책의 행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서글프면서도 다행이다. 알면 최소한 당하지는 않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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