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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
베로니크 모뤼스 지음, 이선임 옮김 / 해바라기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신화가 쇠퇴한 오늘날에 있어서 니체가 한 말은 의미심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오늘날 인간은 신화를 빼앗기고 굶주린 채, 과거에 둘러싸여 서 있다. 그리고 비록 그것이 아득히 먼 과거일지라도, 및친 듯이 뿌리를 파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위대한 역사적 굶주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변의 수없이 많은 이질적인 문화의 고향의, 신화의 자궁의 상실 이외에 그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니체는 신화가 제거된 과거를 자궁의 상실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사실 우리들의 원천적인 기억을 제거하는 두엽절개수술과 같은 것이다. 신화의 세계는 한시적인 사건의 세계가 아니다. 그렇다고 신델렐라와 같은 동화의 세계도 아니다. 그 세계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시적인 영감을 자극하는 세계인 것이다. 오래 전 "엑스칼리버"란 영화를 보면서 거대한 화면속에서 울려나오던 바그너의 음악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후로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면 깊고 깊은 떡갈나무 숲의 신비스러움이 상상속에 떠오른다. 여기서 나는 신화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브리튼의 섬과 게르마니아의 떡갈나무 숲이 혼합된 세계 그것이 바로 신화의 세계가 아닐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신화의 세계는 아서왕, 파우스트, 빌헤름 텔, 멜뤼진, 드라큘라, 아틀란티스의 섬 등이다. 지역적으로도 브리튼섬, 독일, 스위스, 프랑스, 트란스실바니아, 그리스 등 유럽 전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두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시작과 끝이 명시되지 않은 우르보소스의 세계를 볼 수 있다. 서로 꼬리와 꼬리를 물고 영원히 회귀하는 영겁의 뱀, 우르보소스는 신화의 세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인지도 모른다.
이 상징의 터널을 현대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지나가면서 바라본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사실 우리들은 너무나 경험적이며 합리적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신화적 세계를 바라보는 상상력의 부족함을 겪기도 한다. 드라큘라의 무대가 되는 루마니아의 "트란스실바니아"의 세계를 한번 생각해 보자.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실바니아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銀". 하지만 이 실바니아는 銀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 지명은 라틴어 silva에서 온 단어이다. 실바는 울창한 숲이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드라큘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銀으로 된 문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울창한 숲 저편 너머trans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신화는 원시적인 우리의 감정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로서 신화는 로브-그리예의 말처럼 "... 바로 이 순간에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신화의 사회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요소는 모두가 신화적 요소이다"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즉 신화를 탐험하는 여행을 통해 그 신화의 진화과정을 통해 그 신화가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흘러가며 생명력을 가지고 새롭게 재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신화의 해석을 통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단 그것을 의식하느냐 못하느냐는 순전히 우리 개인의 몫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