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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패닉 세계 -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
존 H. 엘리엇 엮음, 김원중 외 옮김 / 새물결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오래전 지리 선생님이 꿈 많던(?) 우리들에게 언어를 배우려면 영어도 좋지만 중국어와 스페인어를 배우라고 하였다. 당시 중국어와 스페인어는 우리들의 세계에서는 약간은 낮선 언어였다. 여학생들은 불어를 남학생들은 독어를 선택하는 시절에 스페인어와 중국어는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중국어는 자유중국이라는 우리와 가까운 나라의 위상과 후진적인 中共이라는 현실과 어우러져 과연 중국어를 배워야만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스페인어로 가보면 답답함 그 자체였다. 당시 우리들에게 알려진 스페인은 돈 키호테의 세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프랑코라는 독재자-당시 우리도 독재자를 가지고 있었다-의 시대착오적인 정책으로 스페인은 유럽에서 포르투갈과 함께 가장 못사는 나라로 기억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점차 독서량이 시험위주에서 내 자신의 필요성에 따라 읽어가게 되면서 스페인이란 나라는 언어적으로 영어권보다 더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놀라웠던 기억은 지리시간에 왜 선생님이 스페인어를 배우라고 했는지를 이해하게 하는 충격이었다. 리오 그란데 강 이남에서 마젤란 해협에 이르는 방대한 제국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스페인어였다는 사실은 이베리아 반도의 낙후된 나라 스페인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은 여전히 프랑코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 나라였다.
스페인이란 나라를 다시 보게 된 것은 1982년에 일어난 실패한 군사쿠데타에서였다. 한 극우 육군중령이 의사당에서 국회의원들을 인질로 삼고 옛체제로의 복귀를 요구하는 그 시점에서 스페인 국민들은 동요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프랑코의 꼭두각시로 알려져 왔던 후안 카롤로스 국왕이 직접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여 쿠데타 세력을 향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고" 말하면서 민주주의의 강력한 방패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며 스페인이란 나라가 가벼운 나라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민주화의 과정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성숙함을 보여주었던 스페인 국민과 지도층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히스패닉의 세계는 그 대답의 아주 많은 부분을 대답해 줄 수 있다. 역사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스페인의 모든 것 뿐 아니라 스페인의 다른 자식인 라틴 아메리카의 모습도 함께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의 단점이 갈증 또한 어쩔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 아메리카는 우리와는 대척점에 위치해 있는 지구상의 반대편에 있는 장소이다. 그럼에도 이 세계는 우리와 상당히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 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다. 즉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정보의 부족이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탄생시킨 히스패닉 세계를 조망한 이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