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 우리시대의 신학총서 9
마틴 헹엘 지음, 임진수 옮김 / 살림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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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에서 즐겨 쓰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미씽 링크missing link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진화과정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잃어버린 고리를 찾기 위한 고고학의 열정... 하지만 역사 속에서도 잃어버린 고리는 존재하고 있다. 그 부분이 헬레니즘 시대로 알려진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헬레니즘 시대는 기원전 333년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으로 촉발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제국의 분할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잠수해 버리고 만다. 이 시대는 그리스 문명이 정복된 지역의 문화와 접합되어 토착화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역사는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 속에 포함되어 설명되어질 뿐이다. 우리는 그리스 문명이 로마로 전달되었다는 하나의 일반화된 개념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사실 이 개념은 맞는 말이면서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리스 문명은 로마로 전달되기 전에 이미 오랫동안 광범위한 지역-알렉산드로스의 정복지-에서 토착화와 변형을 거치고 있었다. 로마 역시 그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역사적으로 로마가 지중해 세계의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그리스 문화가 로마 문화로 전달 통합되었다는 일반화 과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서양사의 커다란 두 개의 줄기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적인 히브리인들의 사유와 공간적인 그리스인들의 사유가 어떻게 유럽적인 사유로 재탄생할 수 있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두 문화가 직접적으로 충돌하면서 혼합되어 있던 이집트, 중동지역의 헬레니즘 왕조를 알아야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조그만 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목이 의미하듯 신구약 중간사라고 하여 너무 종교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완전히 종교를 무시하는 것도 이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성경을 펼쳐볼 때 두꺼운 성경의 3분의 2가 조금 넘는 지점에서 구약과 신약이 갈라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 구분은 얇은 인디언 페이퍼 한 장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대략 400여년의 공간이 그 얇은 종이 한 장속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얼마나 경이로운 세계인가? 그 얇은 종이 한 장에 400여년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다니... 바로 이 상징적인 점이 이 시대의 정확한 실체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헬레니즘을 배우면서 그리스 문명의 동진, 간다라 미술로 압축하여 이해하였다. 사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나 종이 한 장으로 시대를 구분한 것이나 조금도 다른 것은 없다. 오히려 정형화된 암기식 패턴보다는 한 장의 여백으로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바로 이 공간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시대의 지역적 배경이 지금의 이집트와 중동지역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양사의 입장에서 볼 때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우리들이 그동안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그리스계 안티오쿠스 왕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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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엘리 위젤 지음 / 가톨릭출판사 / 199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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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18살도 안된 소년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강제 수용소의 기억은 언제나 그 소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년은 다짐한다. 자신은 왜 인간이 이렇게 흉폭하게 변하였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소년은 철학자가 되었다면 인간의 삶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년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 독립하고자 몸부림을 치는 팔레스티나로의 밀항을 선택한다. 그가 철학을 포기하고 팔레스티나를 선택한 것은 거기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소년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그 소년은 나치에 의해 자행된 폭력의 희생자였다. 그럼 그는 폭력을 혐오할까? 그 소년은 팔레스티나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무자비한 테러조직에 가담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증오하던 폭력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영국군을 죽이는 과정에서 그가 꿈꿔왔던 미래가 이런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지를 못한다.  이런 그의 주저함을 근절시키기 위한 과업이 그에게 주어진다. 영국군에게 사로잡혀 교수형을 선고받은 자신의 동료가 처형되는 그 시간에 자신들이 납치해온 영국군 하사관을 처형하는 임무가 그 소년에게 주어진다.

그 소년은 어린 시절 트란실바니아의 조그만 읍내에서 살던 시절을 생각한다.  어느 초저녁 회당에서 만난 거지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거지는 유대의 밀교에서는 예언자 엘리야가 변장하고 이 지상에 내려와 자신을 잘 대접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보상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기에 소년은 거지를 잘 대해주려 한다. 그때 거지는 소년에게 이런 말을 한다. "밤은 낮보다 순수해. 생각하고 사랑하고 꿈을 꾸는 데는 밤이 더 좋아. 밤에는 모든 것이 더 강렬하고 더 진실해. 낮동안 얘기된 말들이 밤이 되면 새삼스레 더 깊은 의미로 메아리치게 되지. 인간의 비극은 낮과 밤을 구별할 줄 모르는 데 있어. 인간은 낮에 얘기해야만 할 것을 밤에 말하기 때문이지."  그 소년은 순수한 밤의 세계를 지나 혼탁함의 세계인 낮으로 향하고 있다. 그 순수함과 혼탁함의 경계선에 새벽이 존재한다. 그 소년은 인질을 죽이기 전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그에게서 아무런 적대감을 느낄 수 없다. 그는 솔직히 존 도슨이란 영국군 인질에게 그를 증오하려 애쓰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왜?"라는 물음 뿐이다. 소년은 자신의 행동에 그 행동을 초월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그의 이런 대답은 어쩌면 전범 재판에서 나치의 학살자들이 자기 변명을 위해 내 뱉었던 말과 의미가 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존 도슨은 "네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라고 답해준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 소년-이름이 엘리사이다-은 존 도슨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다. 그리고 엘리사는 지하실을 올라온다. 그리고 창에서 새벽이 밝아오는것을 본다.  엘리사는 오래전 회당에서 거지가 한 말을 떠올린다. "낮과 밤을 구별하는 기술을 가르쳐 줄게. 항상 창문을 봐.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아라. 거기서 어떤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때가 낮과 밤이 바뀐 시점이야. 밤은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엘리사는 어둠의 찌꺼기에 얼굴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엘리사는 이제 두번 다시 평화로운 밤을 맞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밤이 평화로운 안식을 주지 못한다면 엘리사에게 있어서 삶은 어쩌면 새로운 강제 수용소일지도 모른 것이다. 이제 그는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뀜으로서 낮이 그의 세계가 되었지만 안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여기에 새벽의 아이러니가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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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빌 우화 - 동물들의 공생활과 사생활
그랑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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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리석은 기억들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했을 것이다. 그러면 새롭게 생을 시작하고 첫 단추가 어디서 잘못 끼워졌는지도 알 수 있었으리라. 나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달콤한 허위보다는 쓰디쓴 진실이 낫다고 생각했다. -28쪽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야. 우리는 오늘을 위해서 살아. 인간은 내일을 위해서 살지만. 기쁨이 가득한 내일. 웃기지! 그래서 인간은 평생 희망을 부여잡고 살아가지만, 기쁨은 실현되는 법이 없고, 희망은 인간과 함께 무덤까지 가는 거야. -74쪽

여러분은 아마 개인적으로 매력적이고 세련된 태도를 지닌 성공한 생물일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이용하는 그런 특성들은 여러분을 신과 같은 세상의 구세조로 만들든지, 아니면 매력적인 악마로 만들 것이다. -140쪽

여기 상식이라고 하는 수치스런 본능을 주마. 앞으로 이 본능이 자네의 거짓을 폭로할 게야. 빛은 나지만 금이 아닌 것들의 가면을 벗기고 사물의 아름다운 형상을 녹여 볼품없는 뼈대를 드러나게 할 거라구. -172쪽

얘들아, 시민 분쟁이라는 비참한 상태로 빠지지 말아라. 권력이라는 치사한 걸레조각을 놓고 서로 흠잡지 마라. 편협한 의회를 맹목적인 조롱으로 바꾼다면 변화가 무슨 소용이겠느냐?-218쪽

나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새가 될 것이다. 나는 천 명의 경쟁자에게 끔찍한 미움을 받겠지만, 진심으로 사랑 받고 존경 받는, 괴짜이면서도 탁월한 문장가가 될 것이다. -338쪽

이 글은 인간들이 어리석다고 함부로 말하는 동물들이 사실은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쓴 글이다. 이 글을 쓴 저명한 동물은 익명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가 안나 그레나리우스 양의 사랑을 받았으며, 그레나리우스 양이 존경하는 이성적인 동물 학파에 속해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372쪽

우리는 단순한 소리와 표정으로 느낌이나 뜻을 나타내죠. 하지만 인간은 유례없이 끔찍한 형벌을 받아서 자연이 준 단순한 소리 대신에 끊임없이 불평만 늘어놓게 되었죠. 인간들은 여러 가지 소리를 만들어서 자기네가 원하지 않는 것,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나타내죠.-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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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덕사상사
이에나가 사부로 지음, 세키네 히데유키 외 옮김 / 예문서원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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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 역사 속에 나타난 귀족, 승려, 무사, 조닌, 농민들의 실제적인 삶을 통해 그들의 도덕적 기반과 사상의 실체를 해부한 책이다.  한 나라의 도덕적 계보를 안다는 것은 현재의 삶을 뚫어볼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일본에 대해 우리들이 접근한 방식은 대부분 일본의 외형적인 것에의 접근이었다. 이 결과 우리들이 접한 것은 일본이 왜 이렇게 빨리 근대화되고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발전하였는가와 같은 물질적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민족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하부구조인 물질적 토대와 상부구조인 정신적인 토대를 함께 알아야만 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동안 우리들이 도외시하고 있었던 일본의 상부구조를 알려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그들만의 가치관을 강한 논조로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은 일본인들의 기록습관에 관해 아주 다양한 체험과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 비행기 사고로 추락하는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수첩에 그 상황을 기록한 일본인들의 기록습관이나 태평양 전쟁 당시 죽은 병사의 주머니에서 어김없이 발견된 작은 일기첩은 일본인들의 섬세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저자는 그 기록의 습관을 무가시대의 좋지않은 흔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무사들은 자신의 전공을 알리기 위해 그 자세한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무사의 주인은 그 기록을 토대로 그에게 은급을 사여할 수 있었다. 즉 이 기록은 자신의 공과를 기록함으로써 자칫 배제될 수도 있는 논공행상에서 자신의 몫을 챙기기 위한 유일한 방편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이 가장 일본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무사도의 정신 역시 저자는 무사의 발생에서부터 쇠퇴에 이르는 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하면서 무사집단이 과연 니토베 이나조의 <일본정신의 기원>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일본의 무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할복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거침없이 시행하는 집단으로 알고 있지만 저자는 역사적 기록을 통해 그러한 것은 없었다고 단언한다. 무사들 집단은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집단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국가-당시 국가라는 개념이 있었다면-보다는 개인이 속한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는 배신과 충성을 마음대로 선택하였고, 자신의 주군과 연결된 것은 유교적 정신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필요의 교환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사도라는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급조된 사상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정신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계급은 승려 계급이었다. 이들은 출가라는 선택을 통해 중생을 제도하였던 것이다. 이런 정신은 불교가 도입된 초기에는 그런대로 지켜질 수 있었지만 무가집단이 성장하면서 승려들의 위치는 축소되어 버리고 만다. 이 결과 승려들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집단에서 집권세력의 나팔수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목소리가 일반 백성에게 그대로 전달됨으로서 승려들은 귀족과 무사계급의 든든한 사상적 전달자로 전락해 버렸다는 점이다. 이 결과 백제로부터 유입되어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고 있던 불교는 급속하게 일본의 민중종교인 신도와 혼합되어 새로운 사상의 전파 대신 기존의 사상을 옹호하게 된다.

일본의 귀족들은 율령제가 실시되면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되는 집단이었다. 이들은 그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특권을 율령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귀족이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소양을 갖고 있지는 못하였다. 헤이안 시대의 기록에 보면 귀족들은 노비를 소유하고 그들을 혹사한 다음 병이 들면 길에 버리는 일이 흔하였다는 것으로 볼 때 그들의 도덕적 양심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귀족들의 전성시대인 헤이안 시대가 끝나가면서 귀족들의 위치는 더욱 특권화되면서 고립적인 상황으로 변해간다. 이들 중앙 귀족들의 호화방탕한 삶은 새로 대두하기 시작하던 무사계급에게 질시와 부러움을 안겨주었다. 무사계급은 당시 농촌지역에서 부를 축적한 부농들이 었는데 이들은 중앙의 귀족들에게는 멸시를 받는 촌뜨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사계급은 귀족들의 이런 방탕함과 문관 특유의 유약함을 경멸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문화적 소양은 자신들이 본받아야할 것으로 치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런 이중성이 그후 대두되는 무사계급의 한 전형이 되었다.

귀족, 승려, 무사 계급이 일본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집단이라면 조닌과 농민계급은 착취당하는 위치에 놓여있었다. 이 가운데 조닌계급은 서양의 신흥 부르조아지와 유사한 계급이지만 서양의 신흥계급이 경제적 부를 통해 정치적 역량까지 획득한 반면 일본의 조닌 계급은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존재하였을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부를 이용하여 어떤 정치적 역량을 발휘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일본의 굳건한 4신분제도를 깨뜨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결과 이들 조닌 계급은 1930년대까지도 지배계급의 돈주머니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했을 뿐이다. 이들이 이렇게 신분제의 굴레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을 자신들이 벌어들인 부를 마음껏 과시하는 방향으로 폭발시킴으로서 일본의 서민문화를 풍족하게하는 데는 일조를 하였다. 하지만 사고방식의 한계성으로 인해 이들은 사회개혁세력으로 보다는 향락적 퇴폐주의에 함몰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만큼 일본의 신분제 사회의 벽은 두터웠던 것이다.

일본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농민계급은 말 그대로 착취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귀족, 승려, 무가계급의 통치사상을 끊임없이 주입받으며 현실에 만족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이들 지배 계급은 유가의 통치원리를 일본식으로 변형하여 사회전반에 걸쳐 폭넓게 적용하였다. 유가의 삼강과 오륜의 충과 효의 덕목을 각 집단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형시킴으로서 사회전체를 신분적 계급질서 속에 확고하게 묶어 놓을 수 있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계층이었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급속하게 밀려드는 서양사조의 물결 속에서 보수적 전통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다.  하지만 농민들은 자신들의 사상에 대해서 스스로 기록하고 성숙시킬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지배자들의 기록에 의존해야만 하는 한계성이 있다. 즉 농민들의 도덕적 사고방식은 그들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아닌 제3자의 기록에 의존해야만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농민들은 자신들의 반봉건적인 목소리를 근대 일본에 잘 전해 주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비교적 적은 분량의 책이지만 일본인들의 가족도덕사상, 정치사상, 종교사상, 계급의식, 경제사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의 이런 점은 그동안 우리들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미화된 일본의 사상사나 역사에 대하여 다른 측면을 바라볼 수 있게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이렇게 일본의 사상과 도덕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학문적 중립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된다. 저자인 이에나가 사부로 교수는 1962년도에 교과서재판을 야기시킨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에나가 교수는 그가 저술한 고등학교 교과서의 323개부분을 문부성이 적절치않다는 이유로 수정하게 하자 이에 대한 재판을 청구하였던 사람이다. 그의 외로운 싸움은 1997년 그가 소송한 일부가 인정됨으로서 32년간에 걸친 교과서 재판이 종결되었다. 이 책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학자적 엄격함이 짙게 드러나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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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분쟁지도
아사이 노부오 / 자작나무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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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란 무엇일까? 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일까?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보면 그런것 같지도 않다. 같은 언어, 같은 종족, 같은 종교...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민족이라는 것은 어느 한 가지로만 딱히 정의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서구유럽에서 민족의 개념이 생겨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그 전에는 민족이라는 단어 보다는 웨일즈인이나 플랑드르인이나 카탈루니아인 처럼 지역적인 단위의 명칭으로 불리웠다. 이런 분권적인 지역성이 하나의 국가라는 체제로 강제편입되면서 민족이란 개념이 싹트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상징으로 국기와 국가와 같은 것을 만듦으로서 다양한 지역적 특성을 하나의 체제 속에 억지로 꿰맞추려하였던 것이다. 이런 인위적인 강제는 필연적으로 저항을 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민족이 뒤섞이게 되면서 하나의 국가를 이룩한 다민족국가들은 심각한 정치적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이루고 있을 때는 민족적 분규가 사회의 이슈에서 멀어지는 반면에 이런 요인들 가운데 하나라도 불안정하게 변할 경우 즉각 외부로 발산된다. 이런 대표적인 곳이 소련이 붕괴된 이후 소련의 블록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동구와 구 러시아 공화국들이다. 이들의 문제는 공산주의적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민족적 고유함을 인위적으로  부정하고 혼합을 강제적으로 실시한데서 기인하고 있다. 이 결과 이들 지역은 민족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항상 민족적 감정의 폭발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나 첵코와 슬로바키아의 경우 처럼 평화적으로 타협에 의해 합쳐졌던 국가를 분리할 수 있기도 하다.  

아프리카의 경우는 동유럽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사실 아프리카는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뭉쳐본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단위는 언제나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아프리카를 부족을 기본으로 지역을 분할한다면 적어도 이 거대한 대륙에 1백여개의 국가는 족히 건설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프리카는 서구 식민주의자들이 착취의 효율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지역을 분할하면서 생겨났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서 니제르Niger란 나라와 나이지리아Nigeria란 나라를 볼 수 있다. 이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존재해 있지만 사실 이 두 나라의 다수 종족은 하우사족이다. 하우사족의 일부가 나이지리아에서 니제르로 이동하여 그곳에 정착하였던 것이다. 즉 서구의 관념에서 보자면 니제르와 나이지리아는 한 나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이 지역은 두 나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두 지역에 진출한 식민지 지배 국가가 프랑스와 영국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경우 50년대 이후부터 남동부와 남서부지역으로 밀입국하기 시작한 히스패닉계가 수를 급속히 확대하기 시작함으로서 백인과 흑인이 주류로 구성된 사회에 일대 변화를 주기 시작하였다. 히스패닉계의 급성장은 2번째 다수인종인 흑인의 지위를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다가오고 있다. 현재 히스패닉계의 인구성장률을 감안할 때 미국에서 2030년 이후에는 흑인을 제치고 히스패닉계가 인종구성상 2번째로 올라설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히스패닉계들은 밀입국이란 수단으로 멕시코와 쿠바에서 진출했기 때문에 정식적으로 미국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배타적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배타적 공동체에서는 영어 대신 스페인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온 다른 인종들이 영어를 적극적으로 배워 미국 사회에 편입하려는 반면 히스패닉계는 이런 욕망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미국을 영어권과 스페인어권으로 분할하는 시발점이 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각 나라의 정치가 민주화되면 될수록 민족간의 갈등이 터져나온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익을 가장 많이 받는 집단이 가해자로 돌변하여 민족의 분할을 강제적으로 막는 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유혈을 통한 분풀이 과정이 끝나야만 민족간의 분할이 완성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유혈의 과정을 회피해보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국가들이 있기는 하지만 분리주의자들에 대항하는 통합주의자들의 원칙은 가장 손쉬운 '민족말살'이라는 카드에 쉽게 굴복한다는 점이다. 이런 유형은 아프리카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정치.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경우에는 민족분할이라는 결정이 항상 유보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하나의 국가라는 브랜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기 때문에 민족분할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보다는 융합되지 않은 통합을 지속한다는 점이다. 이런 유형은 선진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국가는 자신들이 속해있는 국가가 이등국으로 전락할 경우 아마도 민족분열이 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을 볼 때 민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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