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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분쟁지도
아사이 노부오 / 자작나무 / 1996년 10월
평점 :
민족이란 무엇일까? 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일까?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보면 그런것 같지도 않다. 같은 언어, 같은 종족, 같은 종교...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민족이라는 것은 어느 한 가지로만 딱히 정의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서구유럽에서 민족의 개념이 생겨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그 전에는 민족이라는 단어 보다는 웨일즈인이나 플랑드르인이나 카탈루니아인 처럼 지역적인 단위의 명칭으로 불리웠다. 이런 분권적인 지역성이 하나의 국가라는 체제로 강제편입되면서 민족이란 개념이 싹트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상징으로 국기와 국가와 같은 것을 만듦으로서 다양한 지역적 특성을 하나의 체제 속에 억지로 꿰맞추려하였던 것이다. 이런 인위적인 강제는 필연적으로 저항을 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민족이 뒤섞이게 되면서 하나의 국가를 이룩한 다민족국가들은 심각한 정치적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이루고 있을 때는 민족적 분규가 사회의 이슈에서 멀어지는 반면에 이런 요인들 가운데 하나라도 불안정하게 변할 경우 즉각 외부로 발산된다. 이런 대표적인 곳이 소련이 붕괴된 이후 소련의 블록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동구와 구 러시아 공화국들이다. 이들의 문제는 공산주의적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민족적 고유함을 인위적으로 부정하고 혼합을 강제적으로 실시한데서 기인하고 있다. 이 결과 이들 지역은 민족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항상 민족적 감정의 폭발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나 첵코와 슬로바키아의 경우 처럼 평화적으로 타협에 의해 합쳐졌던 국가를 분리할 수 있기도 하다.
아프리카의 경우는 동유럽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사실 아프리카는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뭉쳐본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단위는 언제나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아프리카를 부족을 기본으로 지역을 분할한다면 적어도 이 거대한 대륙에 1백여개의 국가는 족히 건설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프리카는 서구 식민주의자들이 착취의 효율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지역을 분할하면서 생겨났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서 니제르Niger란 나라와 나이지리아Nigeria란 나라를 볼 수 있다. 이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존재해 있지만 사실 이 두 나라의 다수 종족은 하우사족이다. 하우사족의 일부가 나이지리아에서 니제르로 이동하여 그곳에 정착하였던 것이다. 즉 서구의 관념에서 보자면 니제르와 나이지리아는 한 나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이 지역은 두 나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두 지역에 진출한 식민지 지배 국가가 프랑스와 영국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경우 50년대 이후부터 남동부와 남서부지역으로 밀입국하기 시작한 히스패닉계가 수를 급속히 확대하기 시작함으로서 백인과 흑인이 주류로 구성된 사회에 일대 변화를 주기 시작하였다. 히스패닉계의 급성장은 2번째 다수인종인 흑인의 지위를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다가오고 있다. 현재 히스패닉계의 인구성장률을 감안할 때 미국에서 2030년 이후에는 흑인을 제치고 히스패닉계가 인종구성상 2번째로 올라설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히스패닉계들은 밀입국이란 수단으로 멕시코와 쿠바에서 진출했기 때문에 정식적으로 미국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배타적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배타적 공동체에서는 영어 대신 스페인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온 다른 인종들이 영어를 적극적으로 배워 미국 사회에 편입하려는 반면 히스패닉계는 이런 욕망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미국을 영어권과 스페인어권으로 분할하는 시발점이 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각 나라의 정치가 민주화되면 될수록 민족간의 갈등이 터져나온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익을 가장 많이 받는 집단이 가해자로 돌변하여 민족의 분할을 강제적으로 막는 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유혈을 통한 분풀이 과정이 끝나야만 민족간의 분할이 완성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유혈의 과정을 회피해보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국가들이 있기는 하지만 분리주의자들에 대항하는 통합주의자들의 원칙은 가장 손쉬운 '민족말살'이라는 카드에 쉽게 굴복한다는 점이다. 이런 유형은 아프리카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정치.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경우에는 민족분할이라는 결정이 항상 유보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하나의 국가라는 브랜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기 때문에 민족분할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보다는 융합되지 않은 통합을 지속한다는 점이다. 이런 유형은 선진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국가는 자신들이 속해있는 국가가 이등국으로 전락할 경우 아마도 민족분열이 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을 볼 때 민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알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