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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엘리 위젤 지음 / 가톨릭출판사 / 1993년 4월
평점 :
절판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18살도 안된 소년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강제 수용소의 기억은 언제나 그 소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년은 다짐한다. 자신은 왜 인간이 이렇게 흉폭하게 변하였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소년은 철학자가 되었다면 인간의 삶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년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 독립하고자 몸부림을 치는 팔레스티나로의 밀항을 선택한다. 그가 철학을 포기하고 팔레스티나를 선택한 것은 거기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소년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그 소년은 나치에 의해 자행된 폭력의 희생자였다. 그럼 그는 폭력을 혐오할까? 그 소년은 팔레스티나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무자비한 테러조직에 가담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증오하던 폭력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영국군을 죽이는 과정에서 그가 꿈꿔왔던 미래가 이런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지를 못한다. 이런 그의 주저함을 근절시키기 위한 과업이 그에게 주어진다. 영국군에게 사로잡혀 교수형을 선고받은 자신의 동료가 처형되는 그 시간에 자신들이 납치해온 영국군 하사관을 처형하는 임무가 그 소년에게 주어진다.
그 소년은 어린 시절 트란실바니아의 조그만 읍내에서 살던 시절을 생각한다. 어느 초저녁 회당에서 만난 거지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거지는 유대의 밀교에서는 예언자 엘리야가 변장하고 이 지상에 내려와 자신을 잘 대접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보상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기에 소년은 거지를 잘 대해주려 한다. 그때 거지는 소년에게 이런 말을 한다. "밤은 낮보다 순수해. 생각하고 사랑하고 꿈을 꾸는 데는 밤이 더 좋아. 밤에는 모든 것이 더 강렬하고 더 진실해. 낮동안 얘기된 말들이 밤이 되면 새삼스레 더 깊은 의미로 메아리치게 되지. 인간의 비극은 낮과 밤을 구별할 줄 모르는 데 있어. 인간은 낮에 얘기해야만 할 것을 밤에 말하기 때문이지." 그 소년은 순수한 밤의 세계를 지나 혼탁함의 세계인 낮으로 향하고 있다. 그 순수함과 혼탁함의 경계선에 새벽이 존재한다. 그 소년은 인질을 죽이기 전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그에게서 아무런 적대감을 느낄 수 없다. 그는 솔직히 존 도슨이란 영국군 인질에게 그를 증오하려 애쓰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왜?"라는 물음 뿐이다. 소년은 자신의 행동에 그 행동을 초월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그의 이런 대답은 어쩌면 전범 재판에서 나치의 학살자들이 자기 변명을 위해 내 뱉었던 말과 의미가 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존 도슨은 "네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라고 답해준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 소년-이름이 엘리사이다-은 존 도슨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다. 그리고 엘리사는 지하실을 올라온다. 그리고 창에서 새벽이 밝아오는것을 본다. 엘리사는 오래전 회당에서 거지가 한 말을 떠올린다. "낮과 밤을 구별하는 기술을 가르쳐 줄게. 항상 창문을 봐.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아라. 거기서 어떤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때가 낮과 밤이 바뀐 시점이야. 밤은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엘리사는 어둠의 찌꺼기에 얼굴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엘리사는 이제 두번 다시 평화로운 밤을 맞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밤이 평화로운 안식을 주지 못한다면 엘리사에게 있어서 삶은 어쩌면 새로운 강제 수용소일지도 모른 것이다. 이제 그는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뀜으로서 낮이 그의 세계가 되었지만 안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여기에 새벽의 아이러니가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