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 우리시대의 신학총서 9
마틴 헹엘 지음, 임진수 옮김 / 살림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고고학에서 즐겨 쓰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미씽 링크missing link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진화과정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잃어버린 고리를 찾기 위한 고고학의 열정... 하지만 역사 속에서도 잃어버린 고리는 존재하고 있다. 그 부분이 헬레니즘 시대로 알려진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헬레니즘 시대는 기원전 333년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으로 촉발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제국의 분할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잠수해 버리고 만다. 이 시대는 그리스 문명이 정복된 지역의 문화와 접합되어 토착화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역사는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 속에 포함되어 설명되어질 뿐이다. 우리는 그리스 문명이 로마로 전달되었다는 하나의 일반화된 개념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사실 이 개념은 맞는 말이면서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리스 문명은 로마로 전달되기 전에 이미 오랫동안 광범위한 지역-알렉산드로스의 정복지-에서 토착화와 변형을 거치고 있었다. 로마 역시 그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역사적으로 로마가 지중해 세계의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그리스 문화가 로마 문화로 전달 통합되었다는 일반화 과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서양사의 커다란 두 개의 줄기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적인 히브리인들의 사유와 공간적인 그리스인들의 사유가 어떻게 유럽적인 사유로 재탄생할 수 있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두 문화가 직접적으로 충돌하면서 혼합되어 있던 이집트, 중동지역의 헬레니즘 왕조를 알아야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조그만 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목이 의미하듯 신구약 중간사라고 하여 너무 종교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완전히 종교를 무시하는 것도 이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성경을 펼쳐볼 때 두꺼운 성경의 3분의 2가 조금 넘는 지점에서 구약과 신약이 갈라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 구분은 얇은 인디언 페이퍼 한 장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대략 400여년의 공간이 그 얇은 종이 한 장속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얼마나 경이로운 세계인가? 그 얇은 종이 한 장에 400여년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다니... 바로 이 상징적인 점이 이 시대의 정확한 실체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헬레니즘을 배우면서 그리스 문명의 동진, 간다라 미술로 압축하여 이해하였다. 사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나 종이 한 장으로 시대를 구분한 것이나 조금도 다른 것은 없다. 오히려 정형화된 암기식 패턴보다는 한 장의 여백으로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바로 이 공간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시대의 지역적 배경이 지금의 이집트와 중동지역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양사의 입장에서 볼 때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우리들이 그동안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그리스계 안티오쿠스 왕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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