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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표서 ㅣ 까치동양학 23
사마천 지음 / 까치 / 1996년 10월
평점 :
사마천은 “자고 이래로 천명을 받아 제왕이 된 자가 어찌 봉선을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늘의 감응과 길조가 없으면 서둘러 봉선대전을 행하였으며, 하늘의 감응과 길조가 나타났음을 보고도 태산에 가지 않는 천자는 여지껏 없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차지하는 봉선이란 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중국 역사에서 봉선의식은 아주 중요한 개념이었다.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단순한 이 의식은 천자天子로 표현되는 제왕의 명칭과 함께 제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천자가 봉선이라는 상징적 제의를 통해 하늘과 땅의 실제적인 지배자이며 또한 하늘과 땅의 명을 받아 제국을 다스린다는 천명사상을 부각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왕조에서 이 봉선의식은 마치 서양의 도유塗油개념과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만이 왕의 자격을 합법적으로 얻은 것처럼, 봉선을 행하는 자만이 천자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천자는 자신에게 권위를 부여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냄으로서 진정으로 하늘과 땅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음을 고하는 의식을 통해 자신의 왕조의 정통성과 제왕의 권위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세 유럽의 경우에 있어서도 왕의 일정한 조건이 구비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축복을 통한 대관식과 이에 따른 도유가 병행되었다. 여기서 도유는 왕이 다른 인간들과는 구분되는 거룩한 신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절차였다. 이 도유를 통해 왕은 신의 대리인으로서 지상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세 유럽에서 왕이 되고자 하는 자는 교회에서 대관식을 거행함과 동시에 도유 의식을 받아야만 했다. 여기서도 신에 의해 권위를 받았다는 천명사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봉선서에 기록된 제사 의식이 역대 중국 왕조에서 철저하게 수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속적이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천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하나의 의식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무능하거나 폭군적인 기질이 다분한 제왕이라 하더라도 봉선의식은 한번은 꼭 거행하였다. 이는 봉선 의식의 효과 면에서 아주 재미있는 변화인데 처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번의 봉선 의식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러나고 있어 흥미롭다. 하지만 신하들과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천자의 봉선 의식이 규칙적으로 거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왜냐하면 고대의 정치질서는 자연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홍수나 한발과 같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가 덮쳤을 때 백성들은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통치자의 “덕”이었다. 통치자가 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은 그 은혜를 베풀거나 거두어 간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경우 통치자는 하늘과 땅에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하늘과 땅은 노여움을 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풍요로움을 지상에 베푼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봉선 의식은 하늘과 땅의 노여움을 풀어주는 가장 확실할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봉선 의식의 역사가 한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마천은 봉선의 역사에 대해 길게 서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마천은 하. 은. 주를 거쳐 진과 한으로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봉선의식이 어떻게 중단 없이 거행되어 왔는가를 보여주며 그 의식이야 말로 진정한 천명을 받은 왕조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방식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마천은 봉선의식을 게을리 한 군주들의 예를 들어가며 제왕의 직무로서의 봉선 의식을 정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봉선서에는 봉선의식 뿐만 아니라 무제의 통치 시에 성행했던 황로술도 같이 언급되고 있다. 이 황로술은 봉선의식과는 다른 관점에서 사마천이 바라보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봉선의식과 제사의식이 왕조의 정통성과 번영으로 연결된다면 황로술은 제왕의 심기를 흐리게하는 사술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봉선 의식을 거행하는 황제와 황제가 머무는 땅은 당연히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이 봉선의식을 통해 고대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적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중국中國이라고 하고 그 주변의 국가를 교화되어야만할 대상으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이런 이들의 자국 중심적 세계관은 이웃에 대한 침범을 정당화시켰을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역사적 왜곡을 통해서까지 그들의 우월적 지위를 분명하게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런 그들의 의식은 역대 왕조의 사서를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들의 역사서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자신들 중심의 역사로 왜곡함으로서 모든 국가가 중국의 위엄에 자발적으로 굴복하여 조공을 받쳤다는 이야기로까지 확대되었다. 이런 중화적 세계관의 시작이 봉선 의식이라는 점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 하겠다.
여기에는 이외에도 제위기록에 관한 표(표는 생략하고 대신 표의 서문만 있다)와 藝.樂.律.曆.天官.河渠. 平準書등이 있다. 이들 모두 그 당시대의 기록과 연관되는 중요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봉선서를 중심으로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