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의 발굴! 로빈슨 크루소의 그림일기
요엘 퀴노 지음, 정창호 옮김 / 삼우반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로빈슨 크루소나 15소년 표류기와 같은 모험 소설을 읽다보면 하나의 세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상상의 세계는 순전히 자신의 머릿속에서 설계되지만 그 소설의 이야기가 골격이 된다. 사실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한 동안 책상밑에 나만의 동굴을 만들어 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 동굴속의 삶은 원시적인 생활이 아니라 원시를 이기기 위한 문명의 몸짓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어서도 로빈슨 크루소의 자연속에서의 문명을 갈구하는 삶은 하나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느 싯점에 이르자 로빈슨 크루소의 삶에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그것은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가 모험소설이 아니라 어떤 정당성 혹은 명백한 운명과 같은 서구제국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에게 낭만적인 세계관은 종언을 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다시 글을 쓰게된 것은 종언을 고한 세계관은 나의 기억 속에서 완전하게 포멧되지 않았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요엘 키노의 글과 그림은 로빈슨 크루소의 상상은 인간의 내부에 자리잡은 원초적인 피를 항상 솟구치게 하기 때문이다. 다니엘 디포는 당시에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가 추구했던 것은 제국의 문명적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부에 도사리고 있던 인간의 원시적 충동성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덤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이라고 할 수있다. 이 그림과 글이 어울어진 책은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을 읽고 자신의 머릿속에 상상의 세계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그 히미한 기억이 다시 솟아나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자신의 상상과 합치되는 부분을 만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원시로의 회귀와 그곳에서 살아가려 노력하는 인간의 사고에는 흑인, 황인, 백인의  색과 관계없이 대동소이함을 느낄 것이다.

이 책에 그려진 세밀한 그림들을 보노라면 중세 이후 유럽 출판에서 선호하였던 자세한 그림과 해설이 덧붙여진 책의 전통을 보는듯 하다. 그리고 이 전통의 효과에 잠시 빠져들게 된다. 그것은 그 가상의 현실이 언제 어디선가 역사적 사실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던가하는...

바로 이것이 이 책이 노리는 효과인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존재했던 이야기...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생각하는 사고의 보편성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지.  그림과 짧은 글로 이루어진 로빈슨 크루소의 미발굴 기록이라는 이 책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는 역사의 데쟈뷰 현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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