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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의 역사적 기원 ㅣ 현대의 문학 이론 17
V.Y.프로프 지음, 최애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6월
평점 :
솔직히 고백하자면 모두 9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3장까지만 읽고-1장 전제, 2장 이야기 시작, 3장 신비한 숲-서평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서평은 전체적인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3장까지만 읽어야만 했는가? 4장에 들어서 읽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민담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민담집하면 흔히 그림 동화집을 손꼽지만 이에 못지않게 러시아 민담 또한 민담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된 것은 민담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나라가 독일과 러시아였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민담에 대한 연구는 역사가 오랜 만큼 그 축적된 지식의 양 또한 만만치 않음을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각설하고...
프로프는 민담의 일반적 유형을 언급하면서 사회주의적 경제하부구조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전개한다. 물론 공산주의가 붕괴된 오늘날 이런 주장은 공허한 이론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민담의 모티브가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한에서 민담의 주제 또한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시대의 산물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맑스와 엥겔스의 말처럼 "경제적 하부구조의 변모는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과거의 사회제도에 대조하여 거기에서 기원을 찾아야 한다는 어떤 전제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 프로프의 견해이다. 그리고 프로프는 종교도 엄격한 의미에서 하나의 제도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적 제의와 관습은 같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관습은 제의로서 구성된다고 보기 때문에 종교적 제의와 관습을 분리하여 연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민담의 주제는 현실에 모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본다. 즉 민담이 취급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역사의 합리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이면서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 기원을 둔 것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민담은 어쩌면 원시적인 살아있는 싱싱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원시적인 사고는 추상을 모르기 때문이다. 원시적인 사고는 행위로 혹은 사회구성의 형식으로 민속문학과 언어로 나타난다. 즉 삶의 직설적인 이야기 속에 철학적 현상을 뽑아내려 하는 것은 원시인들이 아니라 현대인들이라는 점을 프로프는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프로프는 사고의 사실인 것을 실제로 있었던 사실로 혹은 그 역으로 오인할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담을 연구할 때 학자들은 민담 자체를 한 가지 주제, 한 문명 또는 인위적으로 설정된 다른 어떤 경계 내에 한정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지적한다.
민담은 언제나 정형화된 말로 시작한다. "옛날 옛날 어떤 나라에..."로 시작되는 이 첫 문장은 "...가 있었다"로 끝을 맺는다. 즉 이야기의 요소들이 워낙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성격은 사건의 진행과 함께 조금씩 밝혀질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구조는 주일날 성당에서 사제가 봉독하는 복음서의 형식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그때 예수께서..."로 시작되는 복음의 이야기에서 항상 반복되는 그때in illo tempore라는 단어는 과거의 어느 시점이 아니라 그 사건이 지금 재현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단어인 것이다. 그러나 민담에 있어서 동일한 반복은 역사적 시간과 공간속에서 재현되는 어떤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2장에서 프로프는 왜 민담 속에서 아이들은 가두어지는 가에 대해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의 네미 호수의 사제, 라푼첼, 그리스 신화의 다나에의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프레이저의 이야기 속에서는 복잡한 금기 체계를 언급하고, 라푼첼에서는 월경과 관련된 소녀들의 감금을, 다나에의 예에서는 결혼의 준비나 특별한 결혼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의 최종 결론은 인간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들 앞에서의 공포로 귀결되고 있다.
그리고 3장에서는 왜 아이들이 숲으로 들어가야만 하는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숲이란 은밀한 장소이면서 시련과 단련의 장소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숲은 현실의 세계와 새로운 세계를 갈라 놓는 중간지대인 셈이다. 이 숲을 통과하는 과정은 마치 엘리아데의 "성과 속"에서처럼 경계선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로프는 이 세계를 숲과 통나무집-이즈바-의 문지방을 동일한 세계로 놓고 러시아의 민담 이야기를 시작한다. 러시아 민담에서 자주 등장하는 통나무집은 숲의 변형으로 보고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 프로프의 혜안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의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는 러시아 민담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통나무 집의 문지방 앞에서 앞으로 가느냐 마느냐의 갈등 속에서 주저 앉고 말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