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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피터 홉커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8년 8월
평점 :
이 책은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제1차 앵글로-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전말이 담겨 있어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다. 사실 인도 식민지에 근무했던 영국의 지식인들에게 제1차 앵글로-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잊고 싶은 기억이었다. 카불에 주둔해 있던 1만6천명의 군인과 군속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생존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성-생존자가 1명은 아니었다. 다만 역사에 조명된 유일한 백인이 한 사람 뿐이었다는 점이다-은 나에게 키플링의 소설 "왕이 되고싶은 사나이"의 모습과 겹쳐져서 쉽게 잊지 않고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 자세한 역사적 사실을 인터넷에서 대략 알고 있었지만 그 자세한 전후의 시말이 궁금했는데 이 책은 나의 이런 갈증을 해결해 주었다. 대영제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엄청난 패배를 당했음에도 이 지역에 확실한 군사적 교훈을 남겨주지 못한 것은 수단에서 고든 장군이 마흐디의 반란에 고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영제국에게 이곳은 아프리카의 수단과 이집트만큼 중요한 지역이 아니었다는 점 또한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남진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대영제국 식민지의 핵심인 인도 방어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지역으로 인식되면서 사정이 복잡해 지기 시작한다.
대영제국과 러시아가 '그레이트 게임'을 벌인 이 지역은 우리가 흔히 西域으로 지칭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길은 혜초가 西天竺으로 들어간 길이며,고선지가 중앙아시아로 진겨한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슬람이 흥기하여 이 지역을 장악하고, 유럽이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바다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이 위대한 문명의 길에 위치한 이곳은 잊혀진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대영제국과 러시아의 힘겨루기가 본겨화되면서 이 지역은 다시 주목을 받게된다. 그러나 이 지역에대한 지식은 전무하였기 때문에 러시아와 대영제국은 야심에 찬 젊은 장교들을 이용하여 본격적인 지리탐사에 나서게 된다.
러시아는 페테르 대제 이후 부동항을 얻기 위하여 적극적인 팽창정책을 채택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발트해에서 막혀버리고 지중해에서는 흑해에 갇혀버리게 된다. 러시아의 선택은 남쪽과 동쪽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 극동으로의 진출은 성공적-러시아의 동방정책에 겁을 먹은 대영제국은 조선의 거문도를 점령한다-으로 완수되었다. 아니 알래스카까지 진출한 러시아의 동방정책은 너무 멀리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남진정책은 대영제국의 견제를 받게된다. 그 이유는 러시아는 남진정책의 확고한 장소를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코카사스 지역으로 확정하였기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이 지역으로 밀고 내려와 페르시아를 점령한 다음 인도양으로 진출한다는 구상이었다. 러시아의 이런 구상은 대영제국의 카이로, 케이프타운, 켈커타를 연결하는 식민지 정책을 위협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페르시아의 점령은 잉글랜드에서 인도를 연결하는 해상로를 중간에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영제국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러시아와 대영제국은 코카사스 지역에서는 이란을 경계로 서로의 세력권을 인정하였다. 러시아가 코카사스 지역의 지배권을 확보하는 대신 대영제국은 페르시아에 대한 암묵적인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이 결과 영국은 아프리카에서처럼 러시아에게 고달픈 인종적 종교적 문제를 선심쓰듯 주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던 것이다. 반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문제가 간단하지 않았다. 이곳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淸제국의 이익도 첨예하게 걸린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곳에 오래전부터 정주하고 있는 민족은 가장 호전적인 우즈벡인 키르키즈인, 타직크인들이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지역영주의 지배하에 험준한 지형-사막-을 방패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지형적인 막연함 때문에 대영제국은 러시아의 남진이 인도에 크게 위험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와 대영제국의 젊은 장교들이 지리탐사를 거듭하면서 이 지역이 의외로 취약한 곳임을 알게되었다. 사실 역사적 지식만 조금 있다면 이 지역은 알렉산드로스의 東進에서부터 징기스칸의 西進, 고선지의 서역進出이란 역사적 사실을 통해 대규모 군사 이동이 가능한 지역임을 쉽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서 아프가니스탄은 전략적으로 러시아와 대영제국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요충지로 선택되었다. 대영제국은 인도를 방어할 수 있는 지역이었고, 러시아는 인도를 침공할 수 있는 전초지였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제국들의 전장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영제국과 러시아는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선택하기 보다는 서로의 영향력을 유지하며 아무도 갖지 못하게하는데 동의하였다. 하지만 여기에 청제국이 끼어들면서 아프가니스탄 동쪽의 취약점이 드러나게 되자 러시아, 청, 대영제국은 지도상으로 자신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게 된다. 그래서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지도를 보면 동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가느다란 와칸 회랑을 볼 수 있다. 이 회랑을 통해 러시아, 대영제국, 청이 자신들의 세력확장을 멈출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