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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 피귀르 미틱 총서 13
장 마리니 지음, 이병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드라큘라! 아마도 메시아 혹은 예수 그리스도 만큼이나 서구문화에서는 강렬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nomen, 그 매혹과 불경의 이중성.
드라큘라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신성과 대비가 된다. 마굿간에서 태어남. 숲 저 너머라는 의미인 트란실바니아-Transilvania-의 귀족. 영원한 생명. 영원한 죽음. 내 몸과 내 피를 먹고 받아 마시라. 영원한 생명의 입구. 흡혈과 저주받은 삶. 태양과 어둠.
드라큘라의 탄생은 대영제국의 전성기였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라는 점이다. 이 시대는 모순의 시대였다. 대영제국은 전 세계에 자신들의 깃발이 올라가고 해가 지지 않는 왕국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 시대 만큼 二重規範이 지배했던 시대도 없었다. 프로테스탄트적인 윤리가 전 왕국을 지배했지만, 식민지에서는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이 결코 실천되지 않았다. 윈저의 과부-알버트공이 사망한 뒤 신민들은 여왕을 그렇게 불렀다-는 윤리적 엄격함을 원했지만 런던의 뒷골목은 혼탁함 그 자체였다. 잭더리퍼는 매춘부들의 배를 갈랐고, 홈즈는 아편을 흡입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혼란이 진보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사고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촉발한 하나의 새로운 조류였다.
이런 시대에 드라큘라는 등장하였다. 그의 등장은 기독교적 신화에 대한 은근한 패러디였다. 빛의 그리스도와 어둠의 드라큘라는 아주 잘 어울리는 異音同意語가 아닐까? 사람들은 신성모독의 아슬함 속에서 드라큘라의 진가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시대를 통하여 끊임없이 변형시킬 수 있는 다양성이었다. 그리스도의 다양성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절대자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 사랑의 메신저... 그 다양한 변신은 드라큘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빅토리아 시대의 불안함. 그 불안함은 산업혁명으로 야기된 사회구조의 격변이었다. 이 격변속에서 종교가 채워주지 못한 인간의 잠재적 불안이 드라큘라를 통해 투영되었다. 이렇게 등장한 드라큘라는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다시 한번 조명된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인간의 심성 속에 드라큘라는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그것은 흡혈귀의 이미지가 아니라 공포와 전율, 그리고 죄책감이 혼합된 드라큘라였다. 그리고 냉전 시대를 거쳐 월남전에 이르기까지 드라큘라는 이전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해석되었다. 이제 드라큘라는 무자비한 살인자, 흡혈귀에서 자기 나름대로 변명을 하는 자기 방어적 드라큘라로 변형되었다.
이렇게 시대를 통해 변형되고 변조될 수 있는 장점이 바로 드라큘라의 매력이며 그에게 빠질 수 밖에 없는 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변함없는 상징성도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이다. 그리스도는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부활함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었다. 마찬가지로 드라큘라는 나무로 만든 말뚝에 자신의 심장을 찔림으로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즉 나무말뚝에 의해 드라큘라는 저주의 반복적인 삶을 마감하고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기본적인 종교적 상징성을 허물지 않는한 드라큘라의 변주는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이다. 바로 이 은폐된 종교적 상징성으로 인해 드라큘라는 신화로 인식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