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뉴스나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지한파니 혐한파니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당연히 지한파는 우리를 좋게 보는 사람이고 혐한파는 우리를 나쁘게 보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느낀다. 정말 그럴까? 범위를 축소시켜 일본에 한정시켜 보자. 일본의 지식인 가운데 지한파가 있고, 혐한파가 있을 것이다. 물론 정치, 연예, 경제계에도 이런 비유가 그대로 성립될 것이다. 일본의 지한파와 혐한파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한파는 정말로 한국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부류이고, 혐한파는 한국을 반대하고 사사건건 염장을 지르는 부류일까.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있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고자하는 征韓論이 정계의 화두로 등장하게 된다. 당장 조선을 치자는 쪽과 익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파가 대립하게 된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파의 대표가 伊藤博文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중근의사가 하얼빈에서 그를 저격함으로써 조선의 식민지화가 앞당겨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伊藤博文은 지한파일까? 아닐 것이다. 전두환 정권이 집권했을 때 일본은 中曾根康弘이 수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측이 협력자금을 요청하자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는 지금 일본의 보수화를 완성시킨 장본인이란 점이다. 일본열도의 不沈航母說을 강조하며 神國日本이란 망언을 낳게한 근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재임기간 내내 한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냈고 우리의 요구조건을 수용하는 척 하였다. 정말로 中曾根康弘가 친한파였을까?
일본의 친한과 혐한은 유감스럽게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색깔이 다른 꽃일 뿐이다. 그 꽃의 근원을 추적해 보면 동일한 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뿌리의 시작은 麗蒙연합군의 일본침공부터 시작되었다. 이 침공은 일본 역사에서 처음으로 당하는 재앙이었다. 그리고 실재로 일본 본토에 침공군이 실질적으로 상륙한 첫번째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한국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 즉 한국은 이후 자신들이 마음대로 침략하는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지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인 적으로 상정한 것이다. 이후 일본의 지배자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자신들의 방어를 위해 반드시 자신들의 땅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나라로 인식하였다. 이것은 일본의 방어적인 입장에서 본 것이다. 즉 조선중기까지 역사는 대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은 대륙의 세력이 일본을 침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반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한반도가 다른 세력의 영향권에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 세계사는 해양중심으로 변하게 되는데 일본은 자신들의 영토팽창을 위해 한반도는 반드시 자신들의 영향권에 포함되어야만 하는 전략적 목표로 바뀌게 되었다. 이런 야심이 임진왜란을 통해 실험되었고, 명치유신 이후 본격적으로 실행되게 된다.
즉 일본의 목표는 한반도의 실질적인 지배 혹은 영향권 아래 두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지한파와 혐한파의 구분이 필요할까? 우리가 일본의 여론을 지한파와 혐한파로 구분하는 것은 고통없이 죽을래, 고통스럽게 죽을래라고 묻는 악당의 질문에 순진하게 선택하는 것이 될 뿐이다. 일본은 지금도 우리들을 조롱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맞고 내놓을래, 그냥 내놓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