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코드 - 전2권 세트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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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시원은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예수가 부활했을 때 그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들이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신약성서에는 이 여자들의 이름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가 부활했을 때 가장 처음 그를 본 사람들은 여자라는 것이다. 이 여자들의 이름은 마태오의 글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마르코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요한에는 막달라 마리아라고 나와 있다. 다만 루가에는 여자들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여자들은 성서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예수의 제자들이었던 남자들-베드로, 요한-이 차지하게 된다.


여성론자들은 이러한 사정이 역사History라는 남성 위주의 기록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이들은 만약 역사가 여성 주도의 여성에 의한 여성이 기록한 여성의 역사Herstory였다면 이러한 불합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말의 함축성은 충분히 고려되어야만 한다. 


신화속에 나타난 여성성은 현재의 여성론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막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여성은 대지였고, 달이었으며, 생명의 시원으로서 가정의 중심이었다. 실제로 유전학에서도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은 모계를 통해서 전달되는데 이 말은 전 세계 모든 인간들의 미토콘드리아를 추적하여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의 시원에는 몇 명의 여자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몇 명의 여성들로부터 인류는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남성에 의한 정복의 역사 속에서 여성성이 소유권적인 개념으로 바뀌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다빈치 코드의 핵심은 바로 이 사실을 복원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 복원의 과정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성서속의 한 인물을 통해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이 세상의 정신사적 문명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건방을 떨고 있다. 다빈치 코드에서는 인간중심의 헬레니즘적인 사고방식이 어떻게 남성중심의 헤브라이즘에 의해 침식당해가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저자에게 있어서 종교는 남성과 여성의 평등성을 어긋나게하는 가장 위험한 요소로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교에 의해  어그러진 여성성의 회복을 어떻게 복원하느냐에 대해서는 아직 답이 제시되어있지 않다. 그 길은 엄청 멀고 험난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세상은 남성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기 때문일까? 남성의 주도권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해체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복잡하고 우울한 몽상이지만 우리는 이 책에서 움베르토 에코를 만나기도 하고, 제임스 프레이져, 조셉 켐벨, 에스더 하딩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만남은 즐거운 것이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문화적 우위에 있다고 자부하는 유럽의 정신세계를 한번 섭렵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즐거운 생각의 유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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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정권 - 중국학총서 9
진지양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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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사를 읽어 나갈 때 부딪치는 문제는 난해한 군벌인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군벌들은 신해혁명 이후 하나의 세력으로 중국 각처에서 독립된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장개석의 북벌로 해체되기까지 중국역사에 큰 흔적을 남겨놓았다. 이들 군벌들은 장개석에게 해체 당한 후에는 국민당군의 한 부분이 되어 항일전에 투입되고 나중에는 중국 공산당과 싸우게 된다. 하지만 이들 군벌들의 군대는 부패하여 국민당군이 대륙에서 대만으로 옮겨가는 한 원인이 된다. 이 책은 이런 군벌들의 전체적인 윤곽을 기술하고 있다. 물론 전체적인 부분에서 세세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군벌의 윤곽을 이해하는 일차적인 자료로 이용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는 신사계급(지주계급)-이 계급은 영국의 젠틀맨, 프랑스의 장티홈과 유사한 단어로 표현되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이 어떻게 격변기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뭉쳐 하나의 세력으로 형성되는가를 기술하고 있다. 즉 군벌은 국가가 위기를 당해 일어난 집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뭉쳤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바로 이런 성격 때문에 군벌에 대한 이미지는 반근대적이며 반국가적인 모습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해의 폭은 실제에 있어서도 그리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이들 이익집단들이 거대한 중국을 동서남북에서 분할하여 서구 열강과 타협을 하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였다. 이 결과 중국은 외세의 침략에 일관적으로 통일된 전선을 형성할 수 없었다. 이런 부작용은 일본이 만주를 침공하였을 때 잘 드러나고 있다. 장개석은 만주가 군벌 장작림의 세력권에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의 침공을 자신의 정책을 펴는데 이익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 결과 장작림의 아들 장학량이 서안사변을 일으켜 괴멸직전의 공산당을 구해주는 엉뚱한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는 군벌의 집단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 책은 주제에 비해 부피가 작은데 그것은 방대한 군벌이 형성되는 전체적인 모습을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국의 군벌의 계보도는  복잡하고 방대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군벌에 대한 좀더 전문적인 책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우선적으로 이것에 만족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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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봉사 고려도경
김종윤 / 움직이는책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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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국사시간에 말로만 들어왔던 고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송 나라 사신이었던 서긍이 고려에 와서 보고 들은것을 그림과 설명을 곁들여 지은 책이 고려도경이지만 여기에는 그림은 없다. 그점이 아쉬울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간 느껴왔던 이 책에 대한  지적인 궁금증은 해소되지만 중국인 특유의 거드럭거림이 눈에 거슬린다.  당시 송은 거란과 서하의 협공으로 고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중심의 중화적 표현을 사용하면서 거들먹거리는 중국인들의 무례는 백양의 추악한 중국인에 나오는 장쾌문화의 유습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심정일까?


이런 거슬리는 점만을 제외한다면 한국의 중세에 해당하는 고려시대의 모습을 살펴보는데 아주 귀중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국력은 정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그만큼 정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도 그러하지만 당시 한.중.일 동북아 삼국은 서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사신으로 파견된 자들은 귀국하여 자국의 왕에게 보고 들은 것을 보고서 형식으로 제출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다. 이런 보고서는 정책을 입안하는데 참고가 되고 당시의 국제정세를 이해하는데 지표로 활용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통해 자신과 상대의 형편을 가늠해 보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형태였다. 그러므로 고려는 중국이란 거대한 이웃을 두고도 자주성을 함양할 수 있었다. 반대로 조선은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대교린이란 외교정책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당시 세계 속의 고려라는 모습이 중국인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하고 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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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
엔닌 지음, 김문경 옮김 / 중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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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중엽의 중국을 일본인의 눈으로 본 세계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은 이슬람, 유럽과 함께 세계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국가였다. 이 책에는 중국의 일반 풍물 뿐 아니라 신라원과 신라소라고 역사에서만 배워왔던 신랑인들의 해외 조차지의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실제로 미국의 사학자 라이샤워는 신라소를 Colony로 번역하여 외국에 소개하였다.


일본이라는 당시 동북아의 변방에 거주하던 수도승이 이국의 낮선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신라인들이 운영하던 신라원과 신라소였다. 엔닌은 이때 받았던 도움을 잊지 않고 자신의 여행기 속에 감사의 마음을 기록해 놓았다. 이 여행기를 읽다보면 일본인들이 좁은 섬에서 벗어나 점차로 역사속의 일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의 문물에 대한 부러움과 이것을 의식적으로 하찮게 폄훼하는 글의 행간을 읽으며 일본이 왜 그 수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견당사를 파견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의 곳곳에 남아있는 거대문화의 흔적은 일본이 얼마나 당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려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신라는 당이란 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거대문화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민족간의 기질 차이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으며 해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포용할 수 있다는 고전적인 담론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신생국 일본에게는 황해라는 조그만 내해 조차도 자신들을 고립시키는 거대한 자연의 장애물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라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는 그 사실이 역사의 반전을 생각하게 한다.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여러모로 생각의 회전을 요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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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철 - 일본제국의 싱크탱크
고바야시 히데오 지음, 임성모 옮김 / 산처럼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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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경영하는데는 하나의 시스템이 필요하고  이것을 배우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배움의 과정이 바로 근대화인 것이다. 서구적 기준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이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인프라를 망라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후진국가들은 선진국의 이러한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자신들의 상황에 적합한 하나의 모델을 찾게된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를 거치면서 하나의 시스템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일본 제국주의의 시스템인 것이다.  특히 5.16으로 대표되는 지도계층은 태생적으로 선택한 시스템이 크게는 일본, 작게는 만철에 국가 경영체계의 기본을 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재벌과 합작하여 만든 기관이 만철, 정확하게 말하면 남만주 철도주식회사인 것이다. 이 거대한 재벌기관은 근대화과정의 일본이 미래의 자신들의 모델을 삼기 위해 시험적으로 운영한 현실에 입각한 비주얼 시스템이었다. 여기에는 근대 일본의 모든 국가적 역량이 스며들어 있다.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란 거대한 국가 아닌 국가에는 일본의 정치,경제,문화,사회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 일본은 산업혁명의 상징인 철도를 통해 막 배태한 일본식 제국주의적 군산복합체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는가를 만주라는 거대한 땅에서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은 미래를 결정한다는 후천적인 학습이론이다. 일본은 만주를 경영하기 위해 자신들이 구미 제국주의자들에게 배운 모든 방법을 실험하는 하나의 실습장으로 만들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젊은 일본 인텔리들의 이름은 전후 우리의 근대화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만주 경영에 식민지 치하의 조선의  젊은이 들이 일본 경영자들의 하수인으로 실습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부정적인 의미가 큼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의 젊은이들이 받을 수 있었던 가장 고급적인 교육이었다는점이 비극인 것이다.


이 결과 대한민국은 해방 후 일본에 의해 교육받은 지도층에 의해 국가의 미래가 설계되었다. 이것은 국가가 재벌과 손을 잡고 발전을 주도하는 형태로 나타났는데 이는 만철에서 시종일관 유지되었던 시스템이었다. 왜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일본식 모델을 채택해야만 했는가는 당시의 상황과 연결되어 설명될 수 밖에는 없다. 7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은 북쪽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비해 모든 것이 열세인 국가였다. 제3세계는 남한이 아니라 북한을 개발의 모델로 삼을 정도였다. 이러한 국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위정자들은 자신들이 익숙하게 배워왔던 일본식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선택하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만철의 경영방식은 우리의 근대사를 이해하는데에도 적지않은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 만철의 경우 의욕적이고 젊은 인재들이 이상을 가지고 시작하였을 때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었지만 시스템이 활력을 상실하면 부패되고 만다는 약점이 우리의 현대사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지만 초기의 활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결과  성과를 위한 전시행정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만철이란 책은 아주 부피도 작은 책이지만 여기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담겨져 있는 책이다. 다만 미래는 이 책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시절 조회시간에 기회가 닿을 때 마다 교장선생님이 일본의 이러한 점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고 하는 훈화를 들으며 자란 세대이다. 그러나 그러한 훈화가 100% 타당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판단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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