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시간 -상
슈테판 아우스트 / 이웃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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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세계는 미국의 월남전 개입으로 인해 일어난 반전.반핵 운동이 68년 프랑스 5월혁명으로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결과 학생운동이 기성세대를 반대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학생운동의 지도자들은 신세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기성체제에 대하여 반대하였다.  이 결과 기존사회를 유지하고 있던 윤리, 도덕, 관습을 파괴하는 극단적인 운동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신세대의 이러한 일탈적행위는 기성세대에게 충격과 함게 위기감을 촉발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감은 기성세대의 일대 반격으로 소수의 학생운동 세대들은 단순한 시위에 머물지 않고 체 게바라식의 도시 게릴라 운동으로 자신들의 운동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이 결과 독일에서는 적군파-이 이름은 일본의 적군파와 구별하기 위해 바더 마인호프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가 결성되고, 이탈리아에서는 붉은 여단이, 일본에서는 가장 극단적인 무장단체로 꼽히는 적군파가 형성되었다.


이 책은 서독 적군파인 바더-마인호프단의 탄생과 몰락을 서술한 책이다. 이들 학생운동세대들이 왜 평화적인 방식을 버리고 무장투쟁에 나선 이유는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풍요에 기인한 것이었다. 모택동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고기가 놀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듯 학생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동조자인 노동계급의 협조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경제성장으로 노동자계급은 혁명의 동지가 아니라 기성세대의 협조자로 변모하였던 것이다. 이 결과 좌절한 신세대는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총을 들게 되면서 그들의 심적인 동조자들이었던 일반 시민들 마저 등을 돌림으로서 도시 게릴라 운동은 고립될 수 밖에 없었다. 고립으로 인한 좌절과 분노는 투쟁의 질을 더욱 과격하게 만들고 이는 대중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결국 서독 적군파의 초창기 맴버들은 감옥에서 자살-안드레아스 바더, 구드룬 엔슬린, 얀-카알라스페, 이름가르트 뮐러-함으로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 책은 대중운동이 어떻게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추적하고 있으며, 그 결말 또한 차분하게 기록하고 있다. 서독에서 히드라와 같은 도시 게릴라가 소멸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인 풍요와 함께 고기가 놀 수 있는 물을 철저하게 말림으로서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물이 없는 게릴라 활동은 소멸되고 이들의 후계자들 일부는 총 대신 녹색을 전면에 내세우고 현실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대중운동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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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자살 범우 세계 문예 신서 24
조로만 / 범우사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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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 로만1917-1979은 62년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 마감한 여성이다. 이 책은 왜 자신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하였는가를 담담하게 서술한 책이다. 암에 시달리며 더 이상 가족과 자신의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죽을 권리를 선택한 조 로만. 조 로만이 자신의 표현대로 <이성적인 자살>을 선택하였을 때 미국은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떠들썩하였다. 이른바 퀸란 사건이다. 여대생 퀸란은 1975년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식물인간이 되었다. 이에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가족들은 그녀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는 청원을 재판소에 제출하였다. 이 사건은 미국을 안락사 논쟁에 빠져들게 하였다. 법원에서는 이듬해 퀸란의 호흡기를 제거하도록 판결했지만 그녀는 89년 폐렴으로 사망할 때까지 식물인간으로 생존하였다.


조 로만의 자살은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생명의 존엄성이란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조 로만은 퀸란의 예에서와 같이 법이 억지로 인간의 삶을 강요하는 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귀중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조 로만도 이 점에서는 동의 하고 있지만 이렇게 고귀한 인간이 법이란 체제에 의해 비인간적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약 치매에 걸려 배설물을 먹고 그것을 벽에 바르는 사람이 잠시 정신이 들었다면 그는 지금 자신이 살아있는 그 상황을 고귀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조 로만은 이 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이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조 로만은 삶의 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삶의 질을 인간답게 유지하지 못할 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할 수 있는 <이성적 자살>을 선택하며 친지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의 확신은 요지부동입니다. 세상의 의식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도 여기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해요...왜냐하면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행위를 몰래 함으로써 자기의 품위에 상처를 주기가 싫기 때문입니다...>


추신:


1998년 자살을 도와주는 기계를 발명한 케보키언이란 의사가 체포되어 15-25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케보키언이 고안한 이 기계의 주사바늘을 혈관에 꽃고 스위치만 누르면 독약이 혼합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장치인데 이것을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였다. 이를 과신한 케보키언은 98년 자신이 직접 환자의 팔뚝에 약물을 주사하는 필름을 <60분>이란 시사프로에 방영하여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2000년 11월 네덜란드 의회는 안락사 합법법안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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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심리분석관
로버트 K. 레슬러 & 톰 샤흐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미래사 / 199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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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수사하는데 있어서 현장을 직접 뛰는 수사관들이 있는 반면,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여 범인을 검거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일종의 범죄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범죄 심리학이란 우리가 많이 접하는 추리소설의 한 형태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미키 스필레인>이 창조한 <마이크 해머>와 같은 하드보일드한 탐정이 아니라 홈즈와 포와르와 같은  고도의 추리를 요하는 수사관인 것이다.


이 책에는 미국을 떠들석하게 하였던 연쇄살인범들이 등장한다. 사람을 살해한 뒤 자신의 피가 가루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살해자의  피와 장기들을 먹으려한 <리처드 체이스>, 자신의 살인을 억제할 수 없어 살인 현장에 자신을 제발 체포해 달라고 적어 놓은 <윌리엄 하이랜스>, 여배우 샤론 테이트를 잔인하게 살해한 샘의 아들 <찰스 맨슨>, 살인 대상자를 미행하며 사진을 찍어 놓고 살인의 환상을 극대하화한 <제롬 브르도스>,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에 겁에 질린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하비 글래트먼>...


란 말이 있다. 이 라틴어 경구는 인간은 인간에 대한 늑대다란 뜻이다. 이 말은 인간의 적은 인간 자신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떠나지 않은 생각이 바로 이 경구였다. 왜 인간은 인간 자신에게 잔인한가? 쉬바이쳐 박사가 아프리카 람바랄레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유럽에서 일차세계대전이 터져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이때 그를 도와주던 원주민 하나가 조심스럽게 쉬바이쳐 박사에게 물었다고 한다. <유럽인들은 죽은 그 많은 사람을 다 먹습니까?> 아프리카 식인종에게도 자신들 나름대로의 살인의 법칙은 있다.


아프리카의 식인풍습은 자신과 싸운 상대 전사의 용감한 영혼을 승자가 흡수하는 의식인 것이다. 여기에는 적어도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다. 그러나 연쇄살인범들에게는 우리가 야만인이라고 경멸하는 아프리카 식인 부족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신상태만이 존재한다. 맹목적으로 죽이기 위한 살인만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아무런 조건도 없다. 무조건이란 단어외에는 이를 설명할 만한 어떤 근거도 없다. 우리는 이를 사회부적응이니 다중인격이니 하는 단어로 부르고 있지만 이들은 질이 낮은 저급한 살인자일 뿐이다.


이 책은 <살인자들의 인터뷰>란 이름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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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의 역사
쟝 뤽 엔니그 지음 / 동심원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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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도 역사가 있었나? 이 책의 제목을 보며 맨 처음 떠오른 단어였다. 앞표지에는 들라크루와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이란 그림에서 따온 질감이 풍성한 엉덩이가 그려져 있는 이 책은 제목처럼 둔중한 느낌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저자는 성의 역사를 엉덩이라는 질물을 통해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엉덩이의 역사>에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의 포르노물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사고를 일정하게 지배하는 성적관념에 대해 자세하게 고찰하고 있다. 그 고찰과정에서 엉덩이는 신체의 한 부분, 즉 허리와 다리 사이에 위치한 구조학적 위치에서 성의 왜곡과 성의 본질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변모한다.  그 과정은 에로티시즘의 변질의 역사라고 해도 될 것이다.

에로티시즘은 문학적 낭만성과 결합할 때 긍정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것이 문학적 상상력과 결합할 때는 엄청난 파괴적인 실체로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예로 포르노소설을 들 수가 있다. 포르노 소설은 문학의 한 부분으로 정식적인 대접을 받은 적은 없다. 몇 몇의 작가-아나니스 닌, 오스카 와일드, 헨리 밀러, 존 파울즈, 블라디미르 나브코프-가 성을 주제로 글을 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학적인 것이란 인증을 받아야만 했다. 그 외의 포르노는 언제나 비주류로서 지하세계를 통해 유통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장르의 소설이 사라진 적은 없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바라보는 엉덩이가 전자의 경우라면 남성들이 상상하는 엉덩이는 언제나 후자의 개념이 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주류가 누구냐에 따라 그 대상의 정의가 확립된다는 점에서 엉덩이는 여전히 신체의 일부로서보다는 성적 대상으로서의 즉물로 기능하고 있다.

내가 <장 뤽 엔니그>라는 작가의 엉덩이의 역사를 서슴없이 집어들었던 것은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라는 작가의 <궁둥이:새엄마에 대한 찬가>라는 책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었다.  요사는 이 책에서 <말하고, 또 말하거늘 그것은 궁둥이다. 둔부도, 엉덩이도, 히프도, 뒷부분도 아닌 궁둥이다. 왜냐하면 그녀 위에 올라탈 때 내게 전해지는 감동이 온순하면서도 예민하고, 기골이 장대하면서도 부드러운 암말 위에 있을 때의 짜릿함과 똑같으니 말이다.> 라고 리디아의 왕 깐다울레스가 신하들에게 자신의 왕비 루끄레시아의 궁둥이를 자랑하는 것처럼 궁둥이를 찬미한다. 이때 느꼈던 남아메리카 페루의 상상력은 지금도 유쾌하게 다가온다. 그 궁둥이의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은 자연히 <궁둥이의 역사>로 이어졌고 <에로스와 가스테리아>란 책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궁둥이와 성, 음식과 성이란 주제를 재미있게 섭렵했다. 궁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거리가 창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궁둥이는 위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궁둥이다. 둔부도, 엉덩이도, 히프도, 뒷부분도 아닌 궁둥이다. 각각의 반구체는 육체의 낙원이다. 팔 한아름만한 크기의 그것은 추운 밤에는 따뜻하게 몸을 녹여주며, 머리를 휴식하기 위한 편안한 베개이며, 사랑의 행위를 할 때는 기쁨의 샘이다>  바르가스 요사의 <궁둥이: 새엄마에 대한 찬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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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액션영화 살림지식총서 44
오승욱 지음 / 살림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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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텔레비전이란 바보상자가 등장하기 전 영화의 위력은 대단했다. 영화라는 단어는 어린 나에게는 이중의 의미가 있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른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면서 지금 나는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의 대용품이 담벼락이나 나무에 콜타르를 입힌 전봇대에 붙여 놓은 영화 포스터였다. 고백하지만 나의 한문 선생은 영화 포스터였다. 그 당시 영화 포스터는 조사 정도를 빼놓고는 거의다 한문으로 적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 포스터 속에서 李藝春, 李鄕, 金七星, 崔奉,黃海,許長江,張東輝,張赫,金錫薰,朴巖,朴魯植,崔南鉉 등등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있었고, 이들의 이름을 한문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여기 나온 남자배우들은 모두 내노라하는 액션배우였고 멋있는 주.조연이었다. 이들 남자 주.조연들의 액션 연기는 나름대로 특색이 있었다. 제임스 케그니와 같은 분위기를 내는데는 황해의 연기가 적격이었다. 자신을 희생하는 하인의 역으로 기억되는 김칠성의 토속적인 연기, 허무한 악당 최봉, 피도 눈물도 없는 이예춘, 미워할 수 없는 악당 허장강, 한국의 콰지모도 장혁, 군복이 멋지게 어울리던 김석훈, 북북서로 돌려라의 제임스 메이슨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박암, 미워할 수 없던 전라도 용팔이 박노식, 장동휘의 살벌한 눈동자와 목소리가 토속연기로 돌아서면 얼마나 근사하던가.


이 시대의 액션영화를 논한다는 것은 우리 한국 영화의 80%를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 시대의 배우들은 정말로 초인적인 스타들이었다. 아마 당시를 풍미했던 배우들에게 자신의 출연작이 몇 편쯤 되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 대답을 하지 못하거나 어림짐작으로 주워댈 것이다. 그만큼 영화가 양산되던 시대였다.


그 당시 보았던 申榮均 주연의 <살윈강에 노을이 질 때>라는 영화는 나중에 에리히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라는 소설을 읽으며 독일군의 러시아가 일본군의 버마로 바뀐 영화였음을 알게되었다. 얼마나 많은 영화작품들이 이런 식으로 각색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당시 한국영화에 대한 농담 몇가지:


1.여자가 앞서 달려가고 남자가 그 뒤를 쫓지만 여자는 결코 잡히지 않는다.


2.잘 달려가던 여자는 나무만 보면 꼭 그것을 잡고 한바퀴 돌다 꼭 풀밭에 넘어진다.


3.현대물에선 모닥불이 타오르고, 사극에서는 물레방아가 돌거나 신발이 포개져 있으면 여자 주인공이 꼭 아기를 밴다.


4.액션영화에서 주먹이 동으로 뻗으면 남쪽의 액스트라가 쓰러진다.


5.전쟁 영화에서 M1 반자동 소총은 항상 자동으로 발사된다.


6.인민군은 철모가 없는지 항상 작업모만 쓰고 나온다.


P.S)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영화는 꾸준히 성장하였다. 그리고 2000년대의 한국영화는 헐리우드, 볼리우드와 함께 김치우드란 별칭과 함께 우뚝서게 되었다.  영화인들의 건투를 빌며....(젊은 배우들은 이런 열기에 찬물을 끼얻는 병역기피를 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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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8-20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한명 빠질 수 없는 배우가 냉혹한 터프가이역의 오지명입니다.
당시 상당히 날카롭고 냉혈한 이미지였다고 하더군요.

dohyosae 2004-09-30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지명씨가 액션배우로 뜨기 시작한 것은 KBS의 드라마 <태양은 지지 않는다>에서 열연한 이후 입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여자 연기자 조영일씨-당시 엄청 인기있던 여자 탈랜트였습니다-와 짝을 이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오지명씨의 상대역인 악역으로는 지금은 돌아가신 이우평씨가 열연했습니다. 이우평씨는 MBC초창기에 루씨쑈-아마도 왈가닥 루시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것으로 압니다-에서 루시의 직장상사인 무니의 목소리로 유명했던 분입니다. 당시 텔레비전에서 유명한 악역으로는 지금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주상현씨-이분은 송재호씨의 히트작 현해탄은 알고있다에서 주인공 아로운을 괴롭히는 일본군 모리 역으로 출연했습니다-와 얼마전에 작고한 김순철씨-이분은 TBC의 거북이에서 정말 리얼한 연기를 펼쳤습니다-와 역시 작고하신 박재성씨-이분은 KBS의 실화극장이란 시리즈 물에서 악당역 전문이었습니다-등이 생각납니다. 여자 연기자로는 천선녀씨-이민을 가셨다고 합니다-가 생각납니다. 그녀의 섬뜩한 연기 계보는 최선자씨와 박정자씨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천선녀씨가 어떤 연기를 펼쳤는지 짐작이 가시죠? 그때 텔레비전을 휘어잡았던 많은 분들은 연극과 라디오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라 동작과 목소리 연기가 무척 실감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