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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즘
임지현.권혁범 외 지음 / 삼인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모건 프리만이 조연을 맡은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의 후반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거의 인생의 황혼기에 가석방되어 잡화점 점원으로 취직한 뒤 생기없는 삶을 살아가는 '레드(모건 프리만 분)'가 '나는 허락이 없다면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존재'라고 읊조리는 장면이 나온다. 규율화된 집단 속에서 일생을 보낸 사람의 넋두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끔찍한 이야기라고 생각되는가? 천만에 군대 체험을 한 사람들이 제대한 후에도 얼마동안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부모나 친구에게 보고하고 있는 자신의 행위에 놀란적이 없는가? 있다면 당신은 파시즘이란 커다란 강에 세례를 받은 것이다.
파시즘은 제도가 아니라 초정치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파시즘은 독단과 맹종만을 강요할뿐 자신을 규제하는 어떤 이론이나 규범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오직 폭력에 의거한 공포정치를 통치수단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파시즘은 이런 폭력적 성향 때문에 끊임없이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확산시키려 노력한다. 파시즘은 끊임없이 전통과 단절을 외치면서도 빈약한 권위를 보충하기 위해 속으로는 전통과 야합한다. 스페인의 독재자였던 프랑코는 자신이 정권을 잡은 순간 쫒겨난 왕의 손자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 사실은 파시즘과 전통과의 유대관계가 어떤 속성을 갖고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파시즘은 기회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자본주의자들의 착취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공약하고, 중소기업가들과 만나서는 대기업을 공격한다. 농민들에게는 도시의 거대화와 타락을 이야기하며 모든 계층에게 자신이 진정한 친구라고 읊어댄다.
우리 안으 파시즘은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키워진 마음속의 파시즘을 고발하고 있다. 지연, 혈연, 학연이라는 우리 사회의 절대 무너질 수 없는 체제는 바로 심적 파시즘의 원천이며 고향인 것이다. 이는 패거리 문화를 양산하고 이 문화는 거대한 획일주의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졸업식장에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라는 노래를 부르며 한단계씩 진화한다. 그러나 그 진화는 집단주의와 획일화로의 퇴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믈다. 그것은 파시즘이 하나의 일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파시즘 사회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미미하게 드러난다. 이 사실은 우리나라가 OECD 32개국 가운데 여성의 취업률이라든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같은 부분에서 하위에 속해있음이 증명하고 있다. 나치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의 파시즘 체제에서 여성은 아이를 낳고 양육하고 자식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어머니의 역할만을 강요받았다. 여성이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반쪽의 지위에 머무는 사회, 그 사회도 역시 파시즘의 사회인 것이다.
허락을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는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선배는 후배에게 상관은 졸병에게 남자는 여자에게 가진 자는 없는 자에게 명령하는 사회는 인간적 존엄성이 무시되는 사회이다. 명령을 내리는 자는 명령을 받는 자에게 인격적 모욕을 다반사로 내뱉으며 그것을 자신의 지위에 오를 사람에게 전수한다. 이는 남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여성들도 자신들의 폭력성을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수하고, 아들을 일방적으로 감싸는 가정을 구성하면서 파시즘이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곳에까지 미치도록 협조한 조력자들이다.
우리 사회가 히드라의 머리와 같은 파시즘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혁이 아니라 의식의 개혁이 우선되어야만 한다. 인간성이 변하지 않는 제도의 변화는 몸통은 그대로 있고 머리만이 새로 돋아난 히드라일 뿐이다. 히드라의 몸통을 눌러 놓기 위한 커다란 바위는 우리 의식의 몫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파시즘은 인간의 존엄성, 자유, 민주주의, 이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