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진사 - 까치시각예술 1
장클로드 르마니 지음, 정진국 옮김 / 까치 / 1993년 12월
평점 :
절판


사진의 위력은 얼마나 강력할까? 


작가들의 눈과 손에 의해 한 시대의 한 순간이 찍힘으로서 역사의 나이테에 하나의 눈금이 첨가되는 것이다 그 기록의 순간은 역사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냉동시키는 작업과 같다. 이 냉동된 역사를 수십년이 지난 뒤에 해동시켜 현실로 다가오게 하여도 사진의 현실감은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 물론 재생이라는 의미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때 왜곡의 소지는 있지만 말이다.


비례와 사실이 지배하는 사진은 순간의 고정점을 확대 재생산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사진의 고정점은 상상력의 시작이며 현실의 가장 끄트머리에 위치한다. 여기에 오성과 감정이 겹쳐지면서 상상의 산물이 역사의 힘을 갖게되는 수학적이며 논리의 세계로 변모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진은 점점 현대인들의 눈 에서 멀어지고 있다. 상상력과 감각이 결합된 형태로 다가오는 사진의 세계는 이탈리아의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확대Blow-Up'과 유사한 세계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뚱뚱해진 데이비드 헤밍스와 언제나 아름다운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스가 주연한 이 영화는 20세기의 걸리버 여행기를 연상시킨다.


1930년대 독일의 아우구스트 잔더는 '우리 시대의 초상'이란 사집집을 통해 그가 숨쉬고 살았던 30년대의 온갖 모습을 객관적인 눈으로 기록하였다. 잔더는 냉철하게 자신이 가질수 있는 주관적인 감정을 엄격하게 배제시킨 채  자신의 모델들을 '이미지'로 고정시켰다. 이 결과 그의 사진은 우리들의 눈에 친숙한 것과 친숙하지 않은 대상들까지도 새롭게 보이는 힘을 발휘하였다.  그의 사진 속에 나타난 여러 직업군의 인물상은 그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그 시대를 보려고 했는지 알려주는 증표인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벤 샨, 도로시어 랭 워커, 에반스 아서 로스스타인, 러셀 리와 같은 일군의 작가들은 미국의 30년대를 의도적으로 냉철하게 바라봄으로서 대공황의 비참함을 확대하였다. 그들은 무려 27만장의 사진을 찍어 대공황이 휩쓸고 지나간 미국의 중서부지대를 보여줌으로서 루즈벨트의 '뉴딜'이 나오게 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사진이 정말 내 주변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처음 느낀 것은 대학시절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 한 장이었다. 말이 마차를 끌면서 허연 입김을 내뿜고 있는 단순한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서울역 앞 광장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60년대만 하더라도 이 역 앞 광장은 마부와 지게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마부들의 겨울철 모습은 언제나 내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커다란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장작불을 피우고 그 주위에 모여있던 마부들. 허리춤에는 짧달막한 말채찍을 감아 넣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담배연기인지 입김인지 모를 허연 김과  마대자루를 등에 덮고 푸 푸 거리는 조랑말의 등에서 피어오르더 아스라한 아지랑이.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서울역 앞 광장은 항상 무엇인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던 그 광경이 떠올랐다. 그 추운 겨울철에 왜  서울역 광장만은 활기가 넘쳤는지. 그때 사진이란 사진관의 통속한 전시물이나 작가연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예술의 어려움도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시간의 공간이 너무 넓었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