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결혼 - 기사, 여성, 성직자
조르주 뒤비 지음, 최애리 옮김 / 새물결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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즁세 유럽에서는 처와 동거녀란 단어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이는 사회적 규범과 교회의 윤리규범이 상충하기 때문에 발생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교회의 성사Sacramentum에 의해 치뤄진 결혼만이 합법적인 것이며 그 결혼의 당사자인 남자와 여자는 정식 부부로 인정되었다. 반면 일반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채 사실혼의 관계로 살고 있었다. 이런 것은 교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결혼이 아니었다. 하지만 교회도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다만 교회는 귀족들의 축첩문제에 대해서만  '귀족이 동거녀를 버리고 합법적인 결혼을 하는 것은 중혼이 아니다'라는 애매모호한 해석을 내리며 핵심을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동거녀 제도는 귀족들이 가문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내에서 젊은이들의 성적방종을 규제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이가 생겼을 경우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은 적자들 보다 유산을 청구할 권리가 제한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즉 한 귀족이 동거녀와 관계를 청산하고 다른 여자와 합법적인 결혼을 했을 경우 태어난 아이들의 유산상속 우선순위는 합법적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우선 순위를 차지하였다. 프랑스의 샤를마뉴도 네 명의 합법적인 아내-한 명은 소박맞고 다른 세 명은 일찍 죽었다-를 맞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홀아비 시절에는 여섯 명의 여자들과 동거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동거녀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은 806년 샤를마뉴의 왕국을 분배할 때 참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관행으로 태어난 자식들을 비난하거나 불신하지는 않았다. 당시 대다수의 귀족들은 합법적인 결혼보다 동거에 의해 태어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동거형식을 10-11세기 프랑스 북부에서는 '데인식 결혼'이라고 불렀다. 이는 바이킹의 침입에 의해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이었다. 교회의 노력에도 이런 비공식적인 결혼관행이 쉽게 없어지지 않았던 것은 귀족들의 이익에 따른 것이었다. 젊은 귀족들이 여행이나 모험을 통해 타지역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규수를 데려오면 가문의 연장자들은 일단 동거를 시켜놓고 이 여자가 자신의 가문에 얼마나 많은 이익을 줄것인지를 면밀히 관찰한 다음 여자측과 협상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여기서 여자가 남자의 가문에 이익을 줄 수있다고 판명되면 그 여자는 합법적인 처의 위치로 승격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면 동거녀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므로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여자가 한 남자의 처가 된다는 것은 남자의 가문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 중세 유럽에서 왜 이렇게 교회는 합법적인 결혼에 관심을 보였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세속의 권력과 敎權의 투쟁의 결과였다. 즉 세속의 법과 교회의 법 가운데 어느쪽을 상위에 두느냐에 따라 사회지배의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교회는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전통적으로 교회가 사회를 주도해 왔다는 점을 제시하며 교회법의 우위를 주장한 반면, 세속의 권력자들은 실제적인 권력의 행사라는 점을 들어 세속의 법이 우위에 있음을 강조했다. 결국 이들의 대립은 평행선을 그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와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의 대립으로 정점에 다다랐다. 그리고 교회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세속권력은 여전히 교회의 맞은편에 강력한 경쟁자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의 권력을 향한 싸움의 결과는 어찌되었건 간에 중요한 것은  교회는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고, 세속권력 또한 자신들이 교회를 언제든지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은 잉글랜드의 헨리 8세가 이혼을 거부당하자 로마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자신만의 국교회를 만든 것만 봐도 당시의 세속권력이 교회의 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교회 또한 파문만이 능사가 아님을 잉글랜드가 로마에서 떨어져 나감으로서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유럽의 역사에서 세속권력은 <실정법>을 교회는 <양심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사이의 경계에는 세속의 신민들과 하느님의 자녀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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