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의 탄생 - 중국이 만들어 낸 변방의 역사
니콜라 디코스모 지음, 이재정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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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같은 거짓말 하나.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나갔을 때 유일하게 보이는 지상의 건축물은 만리장성이다.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 말은 거짓이라고 한다. 우주에서 보는 지구는 그져 아름다운 푸른 덩어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왜 만리장성의 이야기를 서두에 꺼냈는가 하면, 이 책의 주제인 오랑캐의 문제와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萬里長城과 天高馬肥라는 단어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하나의 댓구처럼 이해되어 왔다. 가을이 되어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농경민과 겨울을 나기 위해 약탈품이 필요한 유목민의 침입이라는 그림이 두 단어를 연결시켜주고 있다. 만리장성은 외형적인 것으로 볼 때 중국문화의 울타리로 이해되어 왔다. 즉 장성 안은 중화이고 그 바깥은 北狄, 南蠻, 西戎, 東夷로 구분하였다. 이런 구분의 겉모습은 중국이 이들 사방의 야만인으로부터 문명을 지켰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은 바로 이런 의문점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풀어헤쳐주고 있다.

저자는 만리장성의 개념부터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저자의 만리장성에 대한 해석은 마치 미식축구의 경기처럼 해석하고 있다. 중국민족은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확보해 나가면서 자신이 확보한 땅을 보호하기 위해 장성을 구축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즉 만리장성은 자신의 문화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밖으로 뻗어가기 위한 식민지 건설의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흉노 문제 역시 중국인들은 그들의 강력한 공격력과 힘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쉽게 말해 중국의 팽창주의를 호도하기 위한 엄살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나 역시 저자에게 동의하지만-흉노는 한번도 중국의 존망을 위협할 정도로 강성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중국은 흉노를 분열시키는 정책-以夷制夷-을 사용하여 약화시켰을 뿐 아니라 중국 스스로 선공정책을 유지함으로서 흉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글은 이 책의 후반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자신을 약자의 편에 흉노를 강자의 편에 위치시키고 그 위협을 과장하였던 것일까?

이것은 중국의 秦제국 이래 유지해온 중국이라는 거대한 지형학에서 찾아봐야만 할 것이다. 즉 중국은 자신들이 획득한 영토를 보존하고 확장하기 위해 '문명의 위기'라는 주제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즉 자신들은 문명을 전파하는 전도자로서의 선진문명을 가진 고귀한 민족으로, 塞外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문명이 확장-영토의 확장 혹은 식민지의 확장-하는데 있어서 방해물로 고정시켰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이 선택한 '명백한 운명'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이런 중국적인 과장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오랑캐를 창조해 낸 것이다.

만리장성이 축조되던 시기에 북방의 민족은 중국인들과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견제하는 북방민족이란 어떤 사람들인지를 연구하고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 때무에 중국 최초의 역사서인 사기에는 '흉노열전'이 첨부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마천 자신의 직접정보와 간접정보가 뒤섞여 있지만 분명한 것은 북방의 민족들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사마천의 인식은 후한시대로 접어 들면서 중국은 자신들의 제국적 역량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학문인 유학으로 무장하고 북방민족의 문제를 재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이들은 더 이상 북방민족의 존재를 인정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 북방민족은 여전히 제국의 변방을 침범하기는 하였지만 위협적인 요인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 결과 사마천에 의해 객관적으로 기술되었던 북방민족은 주관적인 기술로 바뀌게 되었다. 후한시대에 편찬된 지리서인 '山海經'을 보면 당시 중국인들의 세계관이 어떠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중화 이외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중세 유럽에서 풍미하였던 '맨드빌의 이야기'에 나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중세 유럽의 '맨드빌 이야기'는 유럽인들의 무지에 의한 것이라면, '山海經'은 고의성이 짙다는 점이다. 즉 이방인에 대한 중국인의 지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란 점이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은 역사의 기술 방식에 하나의 변화를 추구한다. 즉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이 통치자의 도덕적 문제점을 지적하였다는 점이다. 즉 윤리적인 모범을 보이는 한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옹호하였던 것이다. 이는 공자의 춘추필법에 따른 것이었지만 이는 중국이 주변 민족들에 비해 문화적, 도덕적으로 우월함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것이 되었다.

이 결과 오랑캐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용의 자손'이라고 하는 '중화민족'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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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사(神社) 살림지식총서 193
박규태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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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민족의 심성을 알기 위해서는 종교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듯 싶다. 왜냐하면 종교는 그 민족의 영혼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인들의 심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종교인 신토神道를 알아야만 한다. 신토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종교와도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 우선 가장 먼저 구별되는 것이 신의 특성이다. 일본인들은 신을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절대 타자로서의 창조신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 말은 신토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죽어서 혹은 살아있는 동안에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번째로 신토에서는 절대 초월적이며 추상적인 신이 숭배되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의 신토가 숭배하는 신은 인간에게 친숙하고 현실적인 신이란 사실이다. 세번째로 신토의 신은 인간과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숭배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고 받는 관계가 수월하지 못할 때 인간은 과감하게 신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네번째는 신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숭배되는 신은 조상신이란 점이다. 

이상이 신토가 그리스도교나 유교와 다른 점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일본인들의 신에 대한 관념은 매우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 예로 일본에 가톨릭이 처음 전래되었을 때 많은 일본인들이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녀 선교사들을 놀라게 하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도쿠가와 체제하에서 박해가 심해지자 그들은 아무런 미련 없이 종교를 포기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본인들이 믿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종교관의 자유로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종교인 신토는 매우 유연성이 강한 종교이기도 하다. 불교가 들어왔을 때 신토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불교의 좋은 점을 흡수하여 몸집을 불린 다음-이론적 토대를 강화한다는 의미-대등하게 되었을 때 불교를 공격한 것이 좋은 예라 하겠다. 즉 신토는 관용성과 함께 변신의 종교라 할 수 있다. 이런 신토를 수행하는 곳이 바로 신사神社라는 장소이다. 신사는 숲과 오도리鳥居에 둘러싸인 신성한 공간이다. 이 공간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인 것이다. 이런 신사가 일본에 대략 8만곳이 있다고 하니 일본인들은 적어도 8만 이상의 신들과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이 통계는 분사分社의 수자까지 합치면 14만개소로 늘어난다. 이런 의미에서 얼마 전에 한 정치인이 '일본의 신의 나라'라고 한 것은 결코 거짓은 아닌듯 싶다.   

일본의 신사에 모셔진 신의 종류는 다양하다. 신토가 일본의 고래로부터 전해저온 고유의 종교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일본 고대에 선진문물을 전래해준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의 신들과 메이지 유신 이래 군국주의시대에 첨가된 새로운 신들까지 합해지면 일본의 신사에 있는 신들의 다양성은 엄청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많은 신들이 메이지 유신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반도로부터 전래된 백제, 신라, 고구려, 가야계 신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군국주의시대의 인물들이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때 세워진 신사 가운데 야스쿠니 신사도 포함되는데 이곳에는 주로 메이지 이후 천황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을 모시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신사는 일본 고래의 신들이 아니라 근대의 신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일본 근대는 침략의 역사였고 그 침략의 선봉에 선 사람들이 신으로 모셔져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신사는 일본인들의 종교관을 신사라는 것과 연결시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이해를 통해서 일본인들이 이해하는 세계의 모습과 우리들이 이해하는 세계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일본인을 가장 많이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가장 모르고 있는 것이 일본과 일본인이란 점이다. 바로 그것은 그 각각의 다른 세계관을 제대로 꾀뚫어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신사를 통해서 일본인들이 이해하는 세계의 한 면을 바라보는 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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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그림형제 동화전집 - 완역합본
그림 형제 지음, 김열규 옮김 / 현대지성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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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 '아라비안 나이트'를 통해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나 신드밧드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책의 전체 모습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버튼의 아라비안 나이트 전집을 읽었을 때 놀라움은 엄청났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계는 정말로 천 하루 동안의 이야기 가운데 100일도 안되는 분량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전집 속에는 알리바바나 신드밧드보다 더 재미있고 이색적이며 에로틱한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에게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알려진 이야기가 많이 있다.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도 섬의 모험이 끝난 뒤에 피레네를 넘는 여행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걸리버 여행기에서 브롭딕냉이나 야후의 나라가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백경으로 알려진 모비 딕은 더욱더 놀라움을 줄지도 모른다. 단순히 고래잡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4대 희극을 소설체가 아니라 대본체로 읽어본 적은 있을까?

그림 동화의 세계는 위에서 언급한 책들과 같은 세계였는지 모른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그림 동화의 세계는 헨델과 그레텔의 세계로 한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단순히 그림 동화를 童話 이상의 세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림 동화의 세계는 '금자씨의 세계'와 유사하다. 영화 금자씨에서 우리는 남자 주인공이 해외로 입양된 금자씨 딸의 말을 번역해 주는 장면이 있다. 잔인하고 비참한 이야기가 번역되어 들려질 때 얼마나 건조해 질 수 있는가를 경험했다. 사실 그림 동화의 세계는 아동을 대상으로 이런 과정이 세계 각국에서 반복되었던 것이다. 화덕의 아궁이 속으로 마녀를 밀어 넣거나-아우슈비츠의 화덕이라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입식구를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아이들을 산 속에 유기하거나-세3세계의 아동 착취는?-하는 이야기를 자는 아이에게 귀에 익숙한 부모의 목소리로 재생한 세계는 금자씨의 세계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동화의 세계는 원초적인 세계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동화의 세계를 깊이 연구하였다. 그래서 동화는 단순히 어린이들의 이야기에서 심리학이 되고, 사회학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 그림 동화의 전체를 동해 인간 심성의 원형을 확인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사실 그림 동화의 세계는 인간적인 것의 기원과 문명의 시작이 어떻했는가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인간의 모든 모습이 총체적으로 삽입되어 있는 것이다. 그 다양한 내용과 세계는 전체를 조망하면서 하나의 윤곽을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완역본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이해할 때 한권의 역사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과 다양한 책을 수십권 읽고 이해하는 역사의 깊이나 이해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것처럼 그림 동화 역시 발췌된 몇 편의 동화를 읽고 이해하는 세계와 전체를 읽고 이해하는 세상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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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의 상징성
뽈 디엘 지음 / 현대미학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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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인간의 욕망과 그 변형'이라고 되어 있는 이 책은 신화라는 장르를 통해 그 속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감추어진 모습을 탐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신화의 세계는 사람들이 그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는 한에서 진실인 것이다. 만약 신화에 의심이 개입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신화가 될 수 없다. 즉 어린아이가 '개울이 눈살을 찌푸린다'라는 말을 했을 때, 이 말을 글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바로 신화가 되지만 개울과 문장을 분리하고 단어를 분석하고 해석하면 그것은 더 이상 신화로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신화의 세계가 우리의 의식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알고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니 엘렉트라 콤플렉스니 하는 프로이드적 용어들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신화의 세계는 더욱 밀접하게 다가왔다. 이로 인해 우리들은 정신적인 세계와 신화적인 세계를 동일시하게끔 되었다. 그만큼 신화의 세계와 심리학의 세계는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신화는 진실과 허구의 혼합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신화를 바라보면서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신화에는 역사와 허구가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신화의 이중성은 우리가 그 세계를 상징의 알레고리로 바라볼 때 이미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허구적인 상징성과 말을 탄 인간의 역사성이  혼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외부의 침입자들에 대한 묘사로 보는 반면, 상징주의자들은 인간의 힘과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두 입장의 차이는 결코 융합될 수 없는듯이 보이지만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이 두 가지 이론을 절충하여 받아들인다. 그것은 아마도 그 논리의 믿음 때문이 아닐까.

초세기 그리스도교 신학자였던 에우세비우스는 성서를 이해하는데 있어 이런 고민에 봉착했었다. 그는 성서를 신화적인 것으로 볼 수도 없었지만 반대로 성서를 완전한 역사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에게 이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은 신앙이었다. 그는 성서를 온전한 것-신의 말씀을 기록했다는 의미에서-으로 믿은 다음 그 문맥 속에 숨어있는 것을 찾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결과 에우세비우스는 구약 속에서 신약의 징조를 발견할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신약 속에서는 구약의 말씀이 완성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신화에 대한 복잡한 심리적 해석을 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신화를 통한 인류의 발전-여기에는 정신적, 물질적인 의미가 다 포함된다-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들은 신화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고있다. 단 그 신화는 비유적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신화가 거짓이 섞인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즉 신화를 우리는 어떤 철학적 교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뽈 디엘의 신화속에 드러난 인류의 발전적 모습은 신화의 유사성과 함께 인류의 행동 양식에 어떤 공통적인 핵이 있음을 수긍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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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 박한제 교수의 중국역사기행 3
박한제 지음 / 사계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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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인 '胡漢體制論'은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쾌한 학설일 수도 있다. 중화사상 혹은 중국인 중심의 사고에 젖어 있는 그들에게 오랑캐라고 비하하는 민족과의 융합에 의한 체제란 언어도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중화사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이며, 자국 중심적인 역사인식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중국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위진남북조시대이다. 이 시기는 중국의 정체성을 확립한 漢제국과 중국 역사상 가장 진취적인 唐제국 사이에 끼어있는 시기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의 중국의 모태가 형성된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들은 한족의 입장에서 서술된 중국의 사서를 보면서 중국사를 이해해 왔다. 이 결과 중국의 장구한 역사는 한족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를 보면 한족이 대륙을 장악한 왕조는 7개 왕조 가운데 漢. 宋. 明 세 왕조 뿐이다. 나머지 隋. 唐. 元. 淸 은 중국인들이 볼 때는 오랑캐의 왕조였다. 원은 몽골, 청은 여진, 당과 수의 경우 왕조의 족보를 살펴볼 때 초원지대에서 장성 이남으로 넘어와 중국적 삶을 살았던 이민족에게로 조상이 연결되는 것을 볼 때 엄밀히 말한다면 한족화한 이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중국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민족을 중국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이민족으로부터 오염된 문명을 정화하고 다시 탈환하는 역사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한족의 문화는 항상 이민족 오랑캐의 침입과 정복으로 수그러들었다가 한족이 왕조를 다시 탈환하면서 문명이 개화된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에게 수. 당. 원. 청은 자국의 순수성이 훼손된 시기일 뿐이라는 점이다. 반면 송. 명은 중국인의 순수성이 회복된 시기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중국인들의 편견과 무지를 오래 전에 백양白楊은 '추악한 중국인'에서 중국의 역사를 고이고 썩은 된장 항아리 문화라고 통박한바도 있다. 사실 백양의 이런 이론은 이 책의 주제인 호한체제론과 결합시키면 절묘하게 중국사를 재해석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즉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회복하였다는 한. 송. 명 시대가 오히려 중국사의 후퇴기이고 이민족 왕조가 그 역사의 쇠락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 되는 것이다. 즉 이민족 왕조는 된장독이란 중국문명에 숨결을 불어 넣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사의 지리적 경계는 언제나 長江과 黃河이다. 이 강 사이를 중국인들은 中原이라 부른다. 황하 이북은 강북-塞外지역-이고, 장강 이남은 강남이 된다. 당연히 중국사의 무대는 중원이지만 위진남북조시대를 기점으로 강남으로까지 확장되기에 이른다. 이 결과 중국에서는 장강을 중심으로 중원에서는 새외이북에서 침입한 오랑캐와 한족이 강남에서는 오랑캐를 피해 내려온 한족과 원주민들이 갈등과 통합을 통해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게 된다. 즉 강북에서는 '호한체제'가 강남에서는 '橋舊체제'가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결실이 위대한 唐제국이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당의 전성기는 중국사의 정점이었다. 이후 왕조들은 당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 원동력은 바로 혼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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