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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의 상징성
뽈 디엘 지음 / 현대미학사 / 1997년 8월
평점 :
품절
부제가 '인간의 욕망과 그 변형'이라고 되어 있는 이 책은 신화라는 장르를 통해 그 속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감추어진 모습을 탐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신화의 세계는 사람들이 그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는 한에서 진실인 것이다. 만약 신화에 의심이 개입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신화가 될 수 없다. 즉 어린아이가 '개울이 눈살을 찌푸린다'라는 말을 했을 때, 이 말을 글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바로 신화가 되지만 개울과 문장을 분리하고 단어를 분석하고 해석하면 그것은 더 이상 신화로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신화의 세계가 우리의 의식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알고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니 엘렉트라 콤플렉스니 하는 프로이드적 용어들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신화의 세계는 더욱 밀접하게 다가왔다. 이로 인해 우리들은 정신적인 세계와 신화적인 세계를 동일시하게끔 되었다. 그만큼 신화의 세계와 심리학의 세계는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신화는 진실과 허구의 혼합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신화를 바라보면서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신화에는 역사와 허구가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신화의 이중성은 우리가 그 세계를 상징의 알레고리로 바라볼 때 이미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허구적인 상징성과 말을 탄 인간의 역사성이 혼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외부의 침입자들에 대한 묘사로 보는 반면, 상징주의자들은 인간의 힘과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두 입장의 차이는 결코 융합될 수 없는듯이 보이지만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이 두 가지 이론을 절충하여 받아들인다. 그것은 아마도 그 논리의 믿음 때문이 아닐까.
초세기 그리스도교 신학자였던 에우세비우스는 성서를 이해하는데 있어 이런 고민에 봉착했었다. 그는 성서를 신화적인 것으로 볼 수도 없었지만 반대로 성서를 완전한 역사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에게 이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은 신앙이었다. 그는 성서를 온전한 것-신의 말씀을 기록했다는 의미에서-으로 믿은 다음 그 문맥 속에 숨어있는 것을 찾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결과 에우세비우스는 구약 속에서 신약의 징조를 발견할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신약 속에서는 구약의 말씀이 완성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신화에 대한 복잡한 심리적 해석을 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신화를 통한 인류의 발전-여기에는 정신적, 물질적인 의미가 다 포함된다-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들은 신화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고있다. 단 그 신화는 비유적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신화가 거짓이 섞인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즉 신화를 우리는 어떤 철학적 교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뽈 디엘의 신화속에 드러난 인류의 발전적 모습은 신화의 유사성과 함께 인류의 행동 양식에 어떤 공통적인 핵이 있음을 수긍하게 한다.